교회의 전형인 마리아
1. 오늘 날 제기되는 문제점
우리는 마리아를 교호의 전형, 즉 인격 안에 있는 교회로 고찰할 수 있는데, 이러한 마리아에 관한 교의는 교회 이해를 위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선 마리아에 대한 과도하거나 무시에서 오는 그릇된 교리와 참된 교리가 구별되어야 하고 이와 함께 참된 신심과 거짓 신심을 구별해야 한다. 특별히 사목자들은 강론, 저술, 기타 표양을 통해 마리아의 덕행을 본받고 신자들에게 바르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오늘 날 제기되는 마리아에 관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짚어 볼 수 있다.
첫째, 현대 교회에 만연된 행동의 이데올로기라는 풍조이다. ‘적극성’, 어떤 경우에나 ‘생산적’이고, ‘중요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은 뭐니뭐니해도 남성에게는 끊임없는 유혹이다. 이러한 경향을 복음의 순수한 의미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행동 강령으로 바꾸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급속도로 남성화된 모델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말 ‘교회(Kirche)’의 문법적 성이 여성임은 우연이 아니다. 교회 안에는 모성, 감사, 명상, 위로, 따뜻함, 포근함, 침묵, 은둔, 기다림, 아름다움 등등 한마디로 생산적인 세상에서는 별 쓸모 없는 것으로 보이는 가치들의 신비가 살아 있다. 사실 남성 교회론은 신비적 체험의 여지라고는 더이상 있을 수 없는 교회의 기획이요 추상화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남성화, 교회의 이데올로기화는 오늘 날 세상의 풍조와 함께 알게 모르게 교회 전반에 만연되어 교구나 본당, 수도회, 평신도 단체를 불문하고 있다. 교회는 마리아를 바라봄으로써 어머니로서의 고유한 모습을 재발견하고 여성의 신비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한국적인 신심 풍토이다. 여전히 한 많은 우리 민족 심성 저변에는 포근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는 소망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 우리는 특별히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어한다. 이러한 현상은 레지오 마리에, 성모의 기사회 등등의 신심 운동, 무엇보다도 미사 중에도 열심히 바치는 묵주 기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은 다른 기도는 몰라도 성모송 하나는 신통하게도 줄줄 외운다. 묵주 기도는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 주의 기도를 제치고 가장 보편적인 기도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적인 신심 풍토는 올바른 마리아 교리와 신심의 당위성을 전제하고 있다.
셋째, 우리 나라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지나친 마리아 신심이다. 평신도, 특히 장년, 노년층에 퍼져 있는 마리아 신심이 때때로 지나쳐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치하고 있는 상황도 자주 있는 실정, 묵주 기도가 우리 나라에서 압도적인 기도가 되었고 어느 성당이든지 가장 두드러지는 중심 자리에 성모상을 모시고 공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모성월이 단연 돋보이고 있고, 어느 본당 할 것 없이 레지오 마리애가 가장 대표적인 신심 단체로 자리잡고 있다. 지나친 마리아 신심은 개신교 일부 교파로부터 가톨릭 교회를 ‘마리아교’로 오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우리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무시 태도도 문제이다. 앞으로 고찰하겠지만 마리아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에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신심에 대한 역반응으로 오히려 마리아에 대한 의식적인 무시나 무관심의 태도도 있을 수 있다. 특별히 마리아에 대한 전통적인 신심이 퇴조하고 있는 남미에서는 그로 인한 공백이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대치되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 신앙의 균형에 대한 이해와 가르침은 우리의 몫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