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전형인 마리아-마리아론 발전(근대)

 

3.4 근대


가톨릭과의 대립 과정에서 마리아에 대한 종교 개혁가들의 거부감이 점점 반마리아적 태도로 경직되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에서는 마리아 신심의 확대되었다.(특히 종교개혁의 직접적 영향밖에 있던 나라에서)


신학 영역에서는 특히 마리아의 무원죄성이 논의되었다. 이와 함께 마리아를 여신 또는 삼위일체에서 비롯된 넷째 위격으로 보는 입장까지 등장했다.


1854년 비오 9세(1846-1878)는 무염시태를 교의로 선포했다


20세기초 가톨릭 개혁 운동의 하나로 마리아에 대한 재조명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주로 ① 구원 사업에서의 마리아의 중재성, ② 마리아의 모성, ③ 공동 구속자성 등 세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 유일한 중재자와 함께 일했다는 의미에서 마리아가 중재자요 공동의 구속자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류를 위한 대표라는 의미에서 마리아를 인류의 모친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오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구속자, 중재자라는 말은 완전한 의미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세우려는 시도는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교황 비오 12세는 열렬한 마리아 신심 소유자. 이때 마리아 연구가 교황의 주도하에 폭발적으로 증가. 1950년 성모 승천 교의를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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