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 章 敎會의 構造-교황의수위권(역사적 이해-초대교회)

 

1.2.2.2 초대교회


수위좌(Primatus)라는 말은 주교좌의 기능과 결부되어 니체아 공의회 헌장 6장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니체아 공의회(325)는 세곳의 수위좌를 규정하고 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안티오키아.1)


268년 안티오키아의 주교 사모사타(Samosata)의 바오로가 안티오키아 시노드를 통해 파문되는 사건이 있었다. 시노드의 주교들은 새로운 주교를 선출하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주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서한을 보내게 된다. 안티오키아 시노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전체 교회와의 연대성을 보증하는 중심교회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세교회는 당시 전체 교회의 일치를 보증하는 주요한 지역이었다. 주교들은 교회의 전통과 일치를 보존하기 위해 시노드에 함께 모였다. 하지만 시노드는 특별한 회의였고 정상적인 주교의 위치는 자기 교구였다. 이러한 교회의 일치는 주요한 세 지역 교회 일치의 끈으로 확인되었는데 세 지역 교회의 역할은 시노드와 같은 특별한 소집때에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교회 일치의 기준지역은 고대 교회론의 근본토대로서 사도좌(Sedes apostolicae)로 인식되었다. 로마, 안티오키아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라는 사도좌 가운데 다시 점차 로마좌에 하나의 특별한 우위가 부여되게 되고 전체 교회 일치의 중심점으로 부각되게 된다. 이 과정은 초대교회부터 4C에 이르는 동안 점차 그러나 분명한 색채를 띠게 된다. 이러한 400여년 동안의 과정에서 로마가 가진 특별한 품위는 대체로 다음의 세가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첫째, 로마 교회는 처음부터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있었다는 사상,


둘째, 로마는 바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자리였고 그렇기에 로마는 직접적인 사도들의 계승이 확고한 자리로 바로 사도좌의 의미가 가장 확실한 지역으로서 교회 일치의 준거점이 된다는 사상.


셋째,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가지고 있던 위치가 실제로 로마로 계승되었다는 인식인데, 그리스도교가 점차 유대인의 범주로부터 이방인으로 확대되면서 예루살렘이 차지하던 위치도 로마로 이전되었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실제로 3-4C까지 로마 교회는 전체교회에 대하여 어떠한 행정적 법적 기능도 행사하지 않았다. 로마좌는 교회일치를 위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준거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로마의 총대주교는 다른 지역 총대주교에 비해 특별한 명예를 가지는 자리로 인식되었다. 총대주교 구조는 신학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본직적으로 ‘사도좌’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4세기에 들어서면서 변화된다. 콘스탄틴 대제의 종교자유는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켰는데 오랫동안 다만 순수한 영적인 차원에서 유지되던 교회는 이제 결정적으로 법적인 차원이 추가되었다. 다음의 세 가지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첫째. 로마의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사상이 자리를 잡게 되고 다른 주교들과는 다른 특별한 기능을 가지는 주교로 인식된다.


둘째. 총대주교좌는 하나의 법률적인 기능과 행정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아직까지 로마‧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가 총대주교좌로 인정된다.


셋째. 주교들의 주교단으로의 소속감과 일치는 시노드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실현되었는데 여기에서 주교들의 연대의식이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다음의 사실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즉 주교직은 교회내에 전체 주교단과의 연대성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 로마주교는 전체교회에 베드로의 후계자로, 수위권의 계승자로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4세기에는 여전히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안티오키아 세 지역교회는 총대주교좌 교회로서 수위권을 계승하는 교회로 인식되고 있다. 점차 로마교회는 가장 주요한 사도좌라는 인식, 특별히 베드로의 후계좌라는 인식이 증가되었다.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키아의 수위권이 공의회와 결부된 수위권이었던 반면, 로마의 수위권은 공의회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수위권 나아가 공의회 위에 있는 교황의 법적 권한이라는 인식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이러한 수위권은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교회로부터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 5세기에 접어들면서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가 퇴조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마로 양분되면서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간의 대결 국면이 된 것이다. 로마의 수위권은 이러한 교회 역사의 긴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아직까지 로마 가톨릭과 동방교회 사이의 결정적인 벽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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