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 章 敎會의 構造-교황의수위권(교황직과 주교직-서론)

 

1.2.3 교황직과 주교직




1.2.3.1. 서론


이미 살펴본 대로 초대교회는 함께 성체를 나누는 끈으로 이루어진 일치 안에서 출발하였다. 점차 로마라는 지역교회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되는데 애초부터 이것은 교회의 행정이나 관리체제의 상급기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언하고 진정한 일치를 이루는 하나의 준거점으로서였다. 점차 로마교황은 행정적 통제권을 강화하게 되고 신앙과 교회일치의 준거점이라는 영적 특성으로부터 모든 교회의 외적인 통일(Uniformitat)을 유지하는 기능의 재치권을 강화하게 된다. 고대말기부터 진행된 이러한 과정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로마교황과 황제간의 대결, 교황과 주교들간의 대결이라는 길다란 통로를 거치게 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종교자유를 선언한 것은 종교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제는 종교적인 일치를 통해 제국 전체의 일치를 보존하려 했다. 수많은 이민족과 이교도로 구성된 거대한 로마제국의 일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황제는 니체아 공의회(325)를 소집했고 니체아공의회는 Arius와 그 추종자들을 단죄하였다. 황제는 교회의 결정을 국가권력으로 옹호하고 집행하였다. 이렇게 콘스탄틴대제의 전환 이후로 1000년이 넘게 지속된 정교혼합은 원칙적으로 순수한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교황은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이단들과 이교종교를 분쇄하고 이를 통해 교회를 확장하고 그 일치를 보존하려 했다. 이러한 양대 권위의 상호간 협력과 혼합은 국가를 위해서나 종교를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었다. 국가적 종교적 통일은 이방인 종교와 문화를 전멸시켰다. 우리는 다음의 4가지를 잠깐 지적해 볼 수 있겠다.


① 로마시대때 혹독한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인은 이제 스스로 혹독한 박해자가 된다. 그리하여 이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제국내 식민지의 다른 종교들을 말살했다. 유대인들을 박해하여 박해받던 지난날과는 정반대가 되었고 십자군과 같은 종교전쟁으로 이슬람과 충돌하였고 마녀를 학살했으며 종교재판으로 수많은 양심수들을 죽였다. 또한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리스도교화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군대를 앞세워 잉카나 마야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총을 앞세워 강제로 그리스도교인이 되게 하기도 했다. 이와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또한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희생되었다.


② 1864년 교황 Pius Ⅸ의 오류에 관한 선언에서 가톨릭교회는 세계의 모든 종교들을 금지하는 종교자유금지를 선언하게 된다. 로마 가톨릭만이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이 입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포기되고 종교자유가 선언된다.


③ 예수는 우선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찾고 그들 편이 됨으로써 (죄인, 세리, 온갖 병자, 과부, 고아, 창녀 등등) 예수 스스로 이스라엘 기존의 기득권 세력, 지배세력으로부터 소외되는 길을 택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이러한 기존세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아이러니칼하게도 교회 스스로 기득권 세력, 지배세력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 소외시키고 파문시켜 기존의 국가, 교회세력에서 제외 시켰다. 이것으로 교회가 예수를 박해하고 죽음으로 몰았던 이스라엘 기존 지배층의 역할을 그대로 재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


④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교회가 선포하는 문서형식은 항상 정해진 틀이 있었다. ‘누가 이렇게 말하면‧‧‧ 누가 이렇게 믿으면‧‧‧ 그는 파문된다. 누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 누가 이렇게 믿지 않으면‧‧‧  그는 파문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이 정식을 포기하고 담담하게 교회의 입장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정 또한 사뭇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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