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원천-성서에서의 교회(신약성서-예수와 교회)

 

2.3.2 신약성서


2.3.2.1 예수와 교회


예수의 선포 행위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첫째로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통치권은 이승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으로 저승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 종말론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또한 하느님 통치권은 세상적인 지평을 포함한다.


둘째 예수는 하느님의 통치권이 곧 실현될 것이라 선포한다. 예수는 미래의 하느님 통치권을 선포하지만 이것은 이미 신비 안에 현존한다.


셋째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통치권은 초월적이고도 내적인 실재인 동시에 예수는 이스라엘을 가시적이고도 최종적인 공동체로 모은다.


넷째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의 결단 즉 회개와 신앙을 촉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예수의 직접적인 설교 내용은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였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또한 역사를 통해 교회 안에서 하나의 실재로 존재하고 있다. 교회의 지평에서 보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 하나는 예수 선포의 중심 내용인 하느님 나라가 그것이다. 여기에 긴장이 놓여 있다. 이러한 전제를 가정하고 교회를 고찰해야 한다.


1)교회와 하느님 나라


교회와 하느님 나라라는 서로 다른 두 주제 사이에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다윗 왕조의 영속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이로부터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자리를 잡게 된다. 메시아에 대한 희망은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개입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것은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권을 뜻한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무엇보다도 구원을 위한 회개의 촉구를 포함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가 메시아 희망의 새로운 표상이 된 것이다. 이 하느님 나라는 불가피하게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표지를 지향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현존으로서의 예수 자신의 운명을 포함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까 17,21) 이에 대한 해석에는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 이성적인 입장 : 하느님 나라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즉 인간 내면이 하느님 나라의 공간으로 하느님 나라는 인간 내면에 도래. 이 입장은 예수나 바울로가 인간을 보다 현실적으로 대했던데 비해 인간을 너무나 이성적인 실재로 본다는 비판이 있다.


둘째, 종말론적인 입장 :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갑자기 도래한다는 시각.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갑작스런 도래를 의미했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하느님 나라를 외형적인 실재로 파악한다는 비판이 있다.


셋째, 그리스도론 안에서의 성령론적 입장 : 예수가 그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라는 시각으로 예수 안에 하느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즉 예수의 인격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 예수의 인격은 하느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계약 사상을 그 안에 서로서로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 번째 입장에 따르면 예수의 인격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 나라와 교회가 하나의 실재로 결합될 수 있다. 이 하느님 나라안에서 예수는 인간 안에 머무를 수 있고 인간이 예수와 결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통치권은 완전히 세상 안에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예수의 현존을 통해서이다. 이 그리스도론적, 성령론적인 종합이 교회의 실재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예수는 이스라엘에 하느님 나라를 제공했다. 예수 설교의 직접적인 내용은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였다.


둘째, 이러한 예수의 원 복음은 역사 안에서 교회라는 새로운 실재를 형성시켰다.


셋째, 교회는 직접적으로 부활 이전의 예수와 예수 복음을 통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는 성령의 힘이라는 토대 위에 사도들이 세상으로 향하는 도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 사상을 통하여 인간사회 전체와 관련된다. 즉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하느님 나라안에서 완성되는 사회의 전형(미리 세움)인 것이다.


2) 예수의 자의식과 교회


예수 복음은 구약의 계약과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 체결한 계약의 완성을 포함하고 있다 . 실제로 예수는 스스로를 새로운 모세(마태5,17-48),완전한 다윗(마르2,23-28),새로운 솔로몬(마태12,42)으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예수를 계약 사상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먼저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원했다. “예수께서는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당신 곁에 있게 하셨다. 이것은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다”(마르3,14-15) 예수 부활 이전의 12사람은 상징적이었다. 그들은 아직 사도가 아니었다. 12사람은 하나의 종말론적인 상징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구세사 안에서 완성될 이스라엘을 종말적으로 상징하는 사람들이었고 신앙과 하느님 나라에로 모인 현존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심이었다. 그들은 종말적인 하느님 백성과 새로운 계약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표지였다.


이러한 12사람의 상징은 이미 교회의 설립을 지향하고 있다. 마르3,14-15는 근본적으로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묘사한다.


교회는 첫째로 예수와 함께 있는 존재, 예수 곁에, 그와 함께 하는 존재이다. 둘째로 교회는 예수의 파견에 참여한다. 따라서 교회는 “파견된 자”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하는 존재’는 하느님 새백성의 특징을 규정한다.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은 예수와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형성되는 것이다. 예수의 운명은 예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자, 예수와 함께 있고 예수의 파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운명과 전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은 하느님 구원 의지를 세상에서 완성하는 표지이다. 빠스카축제의 밤이 이스라엘 백성의 탄생이 되었던 것처럼 최후의 만찬은 예수 스스로 희생 제물로서 예수의 인격 위에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교회는 바로 부활하신 분이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누고 이 식탁에 모여 있는 하느님 백성의 식탁 공동체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이 최후의 만찬이야말로 교회의 설립 행위요 교회 실재의 원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부활 이전 예수의 하느님 나라 복음과 예수의 죽음 안에서 형성된 교회라는 실재 사이에 내적이고도 실제적인 연속성이 있다. 여기에는 예수의 인격이 자리잡고 있다. 예수의 행적은 계약 사상을 바탕으로 그 최종적 표시가 최후의 만찬을 통해, 또 한편으로 12사람의 부르심을 통해 동시에 표현되었다. 이 모든 것이 최후의 만찬으로 집약되고 있고 교회는 부활하신 분과 빵을 나누는 공동체로서 바로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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