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설
우리는 “교회로서의 그리스도교”에 관한 설명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실을 생각해 봐야될 것이다.
첫째, “종교는 제도적 중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봐야될 것이다. 18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종교는 인간 개인의 내면에만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은 종교를 구체적인 역사와 사회의 각박함에서 피하는 자리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역사와 사회는 다르다. 인간이 자기의 인격과 독자성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회와 역사를 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사회에 대한 봉사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서로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사랑은 오직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관계에서 이차적으로 파생되는 도덕적 귀결이 아니다. 또한 이웃사랑은 다만 개개인으로서의 다른사람에 대한 사적인 관계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정치상의 문제도 포괄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담고 있다. 인간은 오늘날 자기가 사회적 존재임을 깨닫고 있다. 인간은 인간실존의 모든 차원을 가로질러서 다른 인간과의 상호친교안에서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친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실존의 전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 상호간의 친교는 단지 순수하고 정신적인 인격적인 관계의 문제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체화 되는 것이라야 한다. 이렇게 볼때 종교성이란 인간 실존의 한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실존의 전체가 모든 것을 지탱하고 포괄하며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당신 자신에게 향하는 하느님에 대해 가지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 상호간의 친교라는 것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본질을 구축하는 것이다. 종교는 그리스도교적 이해에서 필연적으로 교회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다시말해 그리스도교가 교회라는 형태를 취한 종교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회에 관한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伸象의 중심은 아니란 점이다. 즉 교회와 그 사회적 구조에 관한 교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궁극적 진리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역시 19세기의 개인주의에 대한 반동인 전투적인 교회 의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교회 의식을 바탕으로교회를 그리스도교의 가장 본래적이고 중심적인 것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에 대한 투쟁적 현실 참여야말로 가톨릭적이며 산상설교나 사랑이나 자유로운 정신의 그리스도교 신앙 따위는 의심스러운 것처럼 간주됐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교회 이해에 숨어있는 위험을 발견할 수 있다.
세째, 진정한 교회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된다. 우리는 과연 어떤 교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 왜 우리는 자기가 구체적으로 소속하고 있는 교회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지 말해야 한다. 즉 가톨릭의 그리스도인은 왜 자기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난다고 믿고, 또 확신하고 있는가? 왜 자기에게 실존적인 상황으로서 전승된 가톨릭 교회에의 소속을 포기하거나 의심하거나 하는 이유를 가지지 않는가? 라는 물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