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그리스도교 신앙의 교회성

 

4.그리스도교 신앙의 교회성


    원래 교회란 종교적 목적때문에 형성된 사회적 조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적인 의도에서 형성되고 그리스도교적인 성격을 지닌 종교조직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교회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이 교회적인 공동체는 인간의 구원의 물음에 속하고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요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과 관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에 대한 물음은 본래의 의미에서 신앙의 물음이기도 하다.  교회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즉,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자기양여가 초자연적이면서 또한 역사적으로 현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궁극적이고 역사적인 정점에 달한다는 그러한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교회는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적인 신앙의 결단과 희망과 사랑이 존재하는 곳에만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것, 권위적인 것, 제도적인 것은 결코 이 개인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주체성이라는 것은 자기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이해하고, 그 때문에 자기가 자신이 설치한 것이 아닌 객관적인 것에 의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주체성은 종교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교회란 내가 나의 독자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종교적이 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책임 전가를 할 수 없는 인간의 주체성이 그 독자적인 본질에서 이 주체성에 규범을 주는 하나의 객관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객관성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인격적인 주체의 가능성 속에서 그 주체성에 대해서 규범을 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자신의 실존 감정의 해명이 아니라, 권위를 가지고 행위할 수 있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종교라야 한다.  그리스도교로 인간에 대해서 권위적인 형태의 교회성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호소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말하자면 자기의 껍질에서 불러내는 하느님의 종교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나의 바람이나 종교적 욕구가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정말로 구원의 현실을 현존하게 하는 파견, 사명, 선교로서 직면하게 되는 것이라야 한다.


    오늘날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아무리 세속적인 힘을 수단으로하여 유지되는 사회도 이념이나 세계관의 기반을 없이 할 수는 없고, 이 기반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내어 방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잘 조직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그리스도와 동일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반 그리스도적이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궁극적인 관계에서도 어디까지나 교회적 존재라고 말할 때, 그것은 결코 낡고 이미 지나간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최근의 시대 흐름에 입각한 현대인에게 점점 명확하게 되는 내용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역사성과 사회성은 구원의 중개에 귀속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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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그리스도교 신앙의 교회성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그리스도교 신앙의 교회성

        원래 교회란 종교적 목적때문에 형성된 사회적 조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적인 의도에서 형성되고 그리스도교적인 성격을 지닌 종교조직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교회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이 교회적인 공동체는 인간의 구원의 물음에 속하고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요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과 관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에 대한 물음은 본래의 의미에서 신앙의 물음이기도 하다.  교회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즉,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자기양여가 초자연적이면서 또한 역사적으로 현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궁극적이고 역사적인 정점에 달한다는 그러한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교회는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적인 신앙의 결단과 희망과 사랑이 존재하는 곳에만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것, 권위적인 것, 제도적인 것은 결코 이 개인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주체성이라는 것은 자기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이해하고, 그 때문에 자기가 자신이 설치한 것이 아닌 객관적인 것에 의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주체성은 종교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교회란 내가 나의 독자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종교적이 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책임 전가를 할 수 없는 인간의 주체성이 그 독자적인 본질에서 이 주체성에 규범을 주는 하나의 객관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객관성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인격적인 주체의 가능성 속에서 그 주체성에 대해서 규범을 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자신의 실존 감정의 해명이 아니라, 권위를 가지고 행위할 수 있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종교라야 한다.  그리스도교로 인간에 대해서 권위적인 형태의 교회성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호소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말하자면 자기의 껍질에서 불러내는 하느님의 종교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나의 바람이나 종교적 욕구가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정말로 구원의 현실을 현존하게 하는 파견, 사명, 선교로서 직면하게 되는 것이라야 한다.

        오늘날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아무리 세속적인 힘을 수단으로하여 유지되는 사회도 이념이나 세계관의 기반을 없이 할 수는 없고, 이 기반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내어 방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잘 조직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그리스도와 동일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반 그리스도적이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궁극적인 관계에서도 어디까지나 교회적 존재라고 말할 때, 그것은 결코 낡고 이미 지나간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최근의 시대 흐름에 입각한 현대인에게 점점 명확하게 되는 내용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역사성과 사회성은 구원의 중개에 귀속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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