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 론
1. 봉사란 무엇인가?
(1) 봉사하다(διακονέω: diakonew)
1) 그리스 세계에서의 ‘봉사하다’의 의미
가) ‘봉사하다’의 어원(語源)
그리스에서는 여러 단어들이 현재의 ‘봉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강조점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구분하기가 힘들게 표현되었다.
δουλεύω(douleuw)는 복종을 강조하는 노예로서의 봉사(섬김)을 뜻한다.
θεραπεύω(terapeuw)는 섬김과 존경 그리고 특별히 신(God)을 향하여 말해지던 것과 관련하여 자발성을 강조한다.
λατρεύω(latreuw)는 ‘댓가를 받기 위해 섬기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그것은 현저하게 종교나 예배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λειτουργέω(leitourgew)는 백성이나 국가에 대한 공적인 봉사에 사용된다. 70인역에서는 성전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의 봉사나 교회 안의 봉사에 사용되었다.
ύπηρετέω(hyperetew)는 근원에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하며 종이 주인에게 대하는 태도의 의미가 깊으며, 종종 부관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모든 용어들과 구별하여 διακονέω(diaconew)는 매우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보답하는 섬김을 가리키는 특별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ύπηρετέω에 아주 가까우나, διακονέω에는 어떤 사랑의 섬김에 대한 개념에 더 가까운 면이 있다.1)
나) 그리스 세계에서의 ‘봉사하다’ 용례
모든 용례들에서 διακονέω의 이해에 있어 근본적인 것은 그것이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이 단어가 ‘식탁에서 시중들다’ 특별하게 그것은 ‘맛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의미에서 그것은 종종 여성의 일에 사용된다. 이것들의 원래 의미들의 근원에서 그것은 포괄적으로 ‘섬기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섬기는 것은 매우 품위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남자에게는 지배하고 섬기지 않는 것이 적합한 것이다. 소피스트의 문구에 나타난 “어떻게 남자가 누군가를 섬겨야만 하는데도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기본적인 그리스인들의 태도이다.2) 봉사는 오직 국가에 대한 섬김일 때 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다. 상인, 무역업자 또는 대금업자조차 자기 나름대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더 직접적으로 봉사한다. 비록 이상주의적인 이해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리스인들에게 인간의 삶의 목표는 ‘개인적 인격의 완전한 발달’이다. 이것이 타인에 대한 봉사의 성격도 결정한다. 소피스트들은 현실의 남자는 대담하게 민첩하게 자신의 욕망에 봉사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사회생활을 위한 이 질서(κόσμος)의 형성이 국가(πολιτεία)이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백성들의 봉사자(σιάκονος της πόλεως)로서 통치한다. 그러나 이 봉사조차 소우주(인간)로서의 자아(개인)의 자기 이해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포기를 요구한다 해도 그것은 타인을 위한 어떤 진정한 자기 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봉사는 하늘과 땅을 제어하는 힘들 중의 하나가 아니고 그것은 희생을 수반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헬레니즘에서도 주장된다. 그러나 도시의 중요성은 점차로, 더 강한 세계에 대한 깨달음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신의 도구이고 증인으로서 신(神)의 종이 된다는 의미를 가져온다. 다른 한편 봉사의 표현이 신에 관하여 더 일반적이 되면서, 그것들은 이웃에 관하여서는 뒷전으로 움츠러들었다. 확실히 신에게 보답하는 봉사의 실제성은 그것과 함께 창조물 전체와 갖는 확실한 상호관계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책임은 거의 완전히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자유와 지혜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어떤 물음도 결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3)
2) 유다이즘에서의 ‘봉사하다’의 의미
유다이즘은 봉사의 의미에 대해 훨씬 더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동방의 사고는 봉사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주인에 대한 종의 관계에서는 특별히 위대한 주인을 섬길 때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신(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서 꼭 들어맞는다. 70인역은 σιακονείν(diakonein)을 사용하지 않고 히브리어에서 유래하는 같은 뜻을 지닌 δουλεύειν(douleuein) 또는 예배에서 사용되던 λειτουργείν(leitourgein)과 λατρεύειν(latreuein)을 사용한다.
필로(Philo)는 σιακονείν을 분명히 본래의 의미인 ‘식탁에서 시중들다’라는 뜻이 남아있는 ‘섬기다’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요세프스(Joseph)에서 σιακονείν은 ‘식탁에서 시중들다’, 여자가 밤에 봉사하는 것으로서 복종하다는 의미를 지닌 ‘섬기다’, ‘제사장으로서 봉사하다’의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나타난다.4)
이스라엘은 레위 19, 18의 “너는 너의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인 위대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실행하기 위한 완전한 준비를 포함하였다. 그러나 유다이즘에서 바리사이들은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들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과 봉사의 무조건적인 명령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그 태도를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
결과적으로 유다이즘에 이르러 봉사는 타인에 대한 섬김보다는 하느님 앞의 공로로 이해되었고, 마침내 식탁에서의 봉사는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