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제의 권위와 봉사
권위는 봉사이고 봉사는 권위이다. 봉사적일 때 권위는 저절로 드러난다. 권위와 봉사의 조화가 깨어진 곳에서 라너가 표현한 “겨울 바람”을 느끼게 된다.1) 따라서 사제에게 주어지는 권위가 어떻게 행하여져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사랑의 봉사로서 드러나는 권위
교회내의 봉사직은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항상 이 권위는 형제적 사랑과 배려를 특징으로 하는 권위였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로는 봉사하는 가운데 참으로 위대한 권위를 행사하는 모범을 남겼다. 예수님께 권위가 있었던 것은 그분의 말씀과 행동 일체가 자유와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이며, 창조하고 사랑하고 자유로와지는 능력을 당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그분의 봉사와 또한 교회를 향하여 겸손과 사랑에 가득 찬 마음으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것과 맥을 같이 한다.2) 바울로는 자기 사도적 봉사의 권위를 강압적인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는 요구하고 지도하고 권유하고 탄원하였다. 바울로가 자기의 특수한 권위를 행사한 것은 자기가 지도하는 공동체를 자유와 독립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지 예속과 의존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참조 1고린 3,21-23).3)
목자라는 말은 그 권위에 사랑의 요소를 이끌어 들인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사랑하고 특히 잃어버린 양과 상처받은 양에게 마음을 쏟는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권위, 하느님 자신의 권위라는 뜻에서 절대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목자로서만 즉 다른 이를 돌보아 주고 그의 생명을 최대한으로 성장시켜 주는데 헌신하는 사랑으로만 행사할 수 있다. 사제적 권위란 예수님에게서처럼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4) 사제의 권위와 근거는 사랑과 봉사이지 지배하고 억압하는 권력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제의 일은 섬기는 일이며 봉사직이다. 사제직은 사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넓게는 전체 교회를 위함이며, 좁게는 소속 공동체와 형제들을 위한 봉사인 것이다. 사제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모든 권위는 봉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신약성서의 일관된 증언이다. 이 직무는 교회의 일치와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5)
사제의 권위는 사랑을 겸해야 한다. 사제는 단순히 신자들의 우두머리가 아니고 자기가 맡은 신자들을 사랑하며 그 사랑의 표현으로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 “어진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습니다”(요한 10,11)는 말씀은 목자로서의 사제의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사랑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양들에게 생명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완전히 희생제물로 바친다는 뜻이다.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제에게 주어진 권한을 봉사하는 데 사용하라는 뜻이며, 모든 사제직의 행사에 있어서 인격적인 희생을 바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양들을 위한 목자의 생명의 증여는 봉사의 최후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목자가 자기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을 최고 목표로 놓고 살아간다면 그의 모든 행위는 항상 봉사를 위한 것이 될 것이다.6)
2)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사제의 권위
특히 현대의 전문화된 사회에서 사제에게 요구하는 권위는 좀더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욕구에 응할 수 있는 권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좀더 사목적이고 봉사적인 권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Deardon 추기경의 강연 중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교회에 있어 최선의 방책은 그 권위가 성질상 봉사적이고 사목적이라는 사실을 승인하는 데 있다. 이때 권위는 우리가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고 우리의 직무가 요구하는 봉사에 의미를 주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결의하는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절차의 조직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념은 바티칸 공의회에서 거듭 긍정된 것이고 교회의 본질과 그 역할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것은 권위를 희박하게 파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들과 함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서 권위는 더 현명하게 발휘될 것이다”7) 모든 사제들의 영성 생활은 바로 이런 유형의 권위를 통해서, 즉 교회에 봉사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얻어 활기차게 된다. 그것은 사제가 교회의 머리이시며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8)
예수께서는 권위를 특권과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을 용납치 않으신다(마태 20,20-23; 마르 10,35-40; 10,42-44). 이러한 권위의 개념은 결국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하는 그리스도의 태도에서 확실해진다. 이러한 봉사는 단순히 예수께서 겸손하고 헌신적인 감정에서 취하신 행동이 아니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의하여 정해진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다”고 하는 목적을 성취한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권력행사란 봉사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의 아들의 신적 권한(특히 죄를 사하는 권한)은 사람들에 대한 봉사로 행사되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봉사는 권위의 본질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단지 봉사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신다. 그분이 가지고 계신 모든 권한은 인류에 대한 봉사에 사용된다.9)
봉사의 개념은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억제하게 할 뿐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모든 이들보다 말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봉사란 권위를 가진 자가 자신을 높은 위치에 두지 않는 것이다. 목자는 진심으로 자기가 봉사하는 그 사람들의 수준에 있어야 한다. 사목적 권위에는 바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벗’이나 ‘형제’라고 불렀던 그러한 평등주의(orizontalismo)가 있는 것이다.10) 우리는 생명을 완전히 희생하기까지 사랑하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목자의 상을 바꿔 놓아야 한다. 봉사의 개념도 그분의 모습과 일치되어야 한다. 봉사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제직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목자와 봉사자라는 한 가지 사명 안에 존재한다. 공동체에 대한 사제직의 관계는 권위의 관계이지만 그것은 사랑에 기초를 두어 봉사로 행사하는 권위의 관계이다. 사제직의 올바른 모습을 회복한다는 것은 바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며, 사제의 권한이란 사랑과 연대성으로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