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론-예수 그리스도-그의 사제직

 

3. 예수 그리스도 – 그의 사제직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대사제’라고 부르는 예수가 유대인으로서의 의무를 준수하고 회당과 경신례에도 참여하며 기도했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통상적이고 유대적 의미에서의 ‘경건한 사람’은 아니었다. 예수는 당시의 종교 경신례적 의식에 대하여 자유주의적인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마르 2, 13-17; 7, 1-23; 마태 11, 19). 그리고 그 자신은 인습적인 경신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호세 6, 6; 이사 1, 11; 시편 40, 7 참조). 이에서 더 나아가 예수는 종교적 전통에 따라 경신례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던,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구원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세리와 창녀 등 죄인들과 어울려 친교를 맺음으로써 종교적 규범들을 상대화하여 의인과 죄인들 사이에 개재하는 장벽들을 철폐하셨고 이 때문에 예수는 질서의 수호자들로부터 비난과 배척을 받았었다. 그는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는 신성한 하느님의 율법과 성전을 모독한 독성 죄인으로, 로마 점령 세력으로부터는 사회 질서를 교란한 정치적 국사범으로 단죄되고 마침내 처형되기에 이른다.1)


더우기 예수는 사제가 아니었다. 그는 유다 부족 출신으로서 구약의 관점에서 볼 때 평신도에 해당했다(히브 8, 4). 예수 자신도 이러한 구약적 의미의 사제로 자처하지 않았었고, 신약 성서도 그를 구약의 종교적 사제 명칭으로 지칭하지 않고 있다.2) 그는 항상 사제 계급과 거리를 두었으며, 제자들이 거기에 가담하기는 것도 원치 않으셨다. 따라서 유대교의 사제 계급에 속하지 않으려 하셨던 것이 그의 분명한 의도였다.3)


그런데 초대 교회 안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에 대한 숙고가 밀도 짙게 이루어지면서 예수를 경신례적 사제로 대하려는 관점이 형성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에페 5, 2). 특히 히브리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사건을 새로운 희생 제사로 파악하면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질서에 따른 ‘대사제’로 지칭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사제직을 실현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중재를 이룩한 분으로서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화해를 궁극적으로 실현한 유일한 대사제로 파악되고 있다(히브 9, 26 이하).4)


속죄의 희생제사 때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사제처럼 예수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 천상 지성소에 들어가셨으며 “멜키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대사제로 임명받으셨다”(히브 5, 10). 그는 천상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시면서 이 사제직을 수행하신다. 이렇게 멜키세덱을 잇는다는 것은 레위족이나 온갖 인간적 전통과는 거리가 먼 천상적 사제직을 뜻하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사제직을 히브리 사제직 보다 월등한 것으로 보면서 유대교에서 바라보던 가장 완전한 예배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전부는 아니다.5)


예수에게 주어진 어떠한 칭호도 하나만으로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아버지와 떼어놓을 수 없는 ‘아들’이고, 전 인류를 당신 안에 모으는 ‘사람의 아들’인 예수는 동시에 신약의 대사제이고, 왕적 사제이고, 하느님의 말씀이다. 구약은 지상 사물의 중재자인 왕과 영신적 사물의 중재자인 사제를 구분하였고, 제도 안에서 존재하는 사제와 어떤 특정한 일을 완수하기 위한 예언자를 구분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여러 인물을 통해 전달되는 계시의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역사에 유례가 없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의 인격 안에 이 모든 종류의 중재를 다 갖추고 있다. ‘아들’인 그는 예언자들이 가르침을 완성하고 초월하는 영원한 ‘말씀’이며, ‘사람의 아들’인 그는 모든 인간 조건을 자신이 짊어짐과 동시에 그 이전에는 아무도 갚지 못한 그러한 권위와 사랑으로 전 인류의 왕이 되었으며,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인 그는 모든 인간을 성화하는 완전한 사제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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