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2. 봉사자
목자의 사명에 대한 희생적 관점은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 20, 28; 마르 10, 45)라고 하신 말씀으로 확인된다. ‘목숨을 바쳐’라는 말은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의 운명을 표현하는 동시에 목자의 본질적 행동 자세를 묘사한다. 생명의 증여는 봉사의 최후 결과이다. 그러므로 목자가 자기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을 최고 목표로 놓고 살아간다면 그의 모든 행위는 항상 봉사를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예수는 권위를 특권과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을 용납치 않으신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 45)고 하는 정언에서 예수에게 있어 권위는 타인을 위한 봉사로 이해되었고, 이것은 단순히 겸손하고 현실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의하여 정해진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다”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의 아들의 신적 권한(특히 죄를 사하는 권한)은 사람들에 대한 봉사로 행사되었다. 예수의 말씀대로 봉사는 권위의 본질 자체이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 명령도 하고 봉사도 하기 위해 왔다고 하지 않고 다만 봉사하러 왔다고만 하셨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은 인류에 대한 봉사에 사용된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예수도 원치 않았고 용납될 수도 없는 결과들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양들의 목자, 주인 또는 소유자라는 의식에서 권력주의가 생겨날 수 있고, 양들이라는 의식에서 피동성과 서인의식(庶人意識)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제직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목자와 봉사자라는 한 가지 사명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재인식해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사제직의 관계는 권위의 관계이지만 그것은 사랑에 기초를 두어 봉사로 행사하는 권위의 관계이다.1)
봉사는 근본적으로 육화의 신비 안에 기초한다. 그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면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필립 2, 6). 육화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위치에서 인간의 신분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행위는 봉사하겠다는 지향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 행위는 사제직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즉, 그 행위를 목자의 특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봉사는 단순히 인간적 행위만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의 육화의지를 표현한 행동이다. 그리스도의 봉사는 봉사하시는 하느님을 계시하신다. 봉사에 있어서 육화가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즉, 육화를 통하여 인간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봉사하기를 원하셨다는 점, 봉사의 의미를 대단히 큰 차원으로 올려놓았다는 점,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신분으로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봉사할 수 있었다는 점등이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