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3. 2. 2. 2. 여러 성사와 성체의 교역자
직무 사제직의 또 하나의 주요한 직무는 ‘성사에의 직무’이다. 하느님의 신비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다. 사람들은 이 세계 안에서 그분의 흔적을 어렴풋하게 밖에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앙은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 신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시되어 인간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측량할 수 없는 비가시적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측정 가능하게 가시적이 되었으며, 하느님의 소리가 역사 안에서 청취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성사이다”라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사제에 의해 선포되는 복음의 말씀 역시 구체적인 표징 행위로서 구체화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일은 곧 ‘성사에의 직무’이기도 하다.1) 사제는 “성세로써 인간들을 하느님의 백성 안에 이끌어들이고, 고백성사로써 죄인을 하느님과 교회에 화해시키며, 병자의 도유로써 앓는이에게 힘을 주고, 특히 미사거행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사를 성사적으로 봉헌한다.”2) 그런데 “성사들은 신앙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말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하고 또한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불린다. 성사들은 은총을 베풀지만, 그 집전(執典)은 신자들로 하여금 이 은총을 보람있게 받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사람을 실천하게 하는 충분한 능력을 준다.”3)
사제가 수행하는 성사들은 어떤 마술적 표징들이 아니라 구체화한 은총의 말씀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구원의 사회화(社會化)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성사들은 인간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현시된다. 사제가 수행해야 하는 성사에의 직무는 단순한 예배 기능과는 달리 인간에게 행해지는 고도의 봉사이다. 그 중에서 특히 성체 성사 전례(성찬례)는 사제 직무의 중심이고 절정이라 할 수 있다.4) 왜냐하면 성체성사 그 자체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몸 마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봉사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무와 마찬가지로 여러 성사와 사도직의 일은 모두 성체성사와 맺어지고 성찬식으로 질서 지워져 있다.”5) 그러므로 신약의 백성이 제단 주위에 집합하여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의 손을 통하여 하느님께 그리스도를 봉헌하는 미사 성제 이상으로 교회를 단적으로 현실화하는 순간은 달리 있을 수 없다. 이 순간이야말로 교회가 진실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나타나는 순간이다.6) 전례헌장의 표현대로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맺음이며……장래 영광의 보증이다.”7)
다른 모든 성사들은 이 성체성사에로 지향되고 있거나 이 성사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의 분여 현상이다. 세례성사로써 인간은 죄에서 해방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합일되어 그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견진성사로써 성령의 은총과 은사로 이 예배자의 자격이 더욱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의 참된 병사가 되어 그리스도의 길을 증거한다. 고백성사는 죄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소원해진 신자를 사죄함으로써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범죄로 손상 입힌 신비체와 다시 화해시키는 성사이다. 이로써 인간은 다시 은총 가운데 성화의 길로 나아간다. 병자 도유성사로써 병자의 영육을 위로하고 치료하며, 병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에 자기 고통을 동참시킴으로써 자기의 속죄와 신비체의 지체들의 정화에 기여하게 한다. 혼인성사는 부부의 결합을 축복하여 거룩한 가정을 이루게 하고, 자녀들을 하느님의 의자(義子)로 양육할 은총을 주며 또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상징한다. 신품성사는 신자에게 다른 신자를 사목할 권한과 책임을 주는 신품권을 부여함으로써 성직자가 되게 하여, 그로 하여금 여러 가지 성사를 집행하고 교회를 대표하여 미사 성제를 봉헌하며, 신자들을 성화의 길로 인도할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제직의 중요한 요소인 신품권을 면밀히 계속시킨다. 신품성사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교역자로서 참여한다.8)
그럼 무엇 때문에 성찬례가 그리스도교 전체의 중심, 정점, 원천이 되는가?
그것은 성찬례 안에서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또한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노동과 모든 피조물을 당신과 함께 봉헌하도록 인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례 지원자는 성찬례에의 참여로 인도되고, 세례와 견진을 바든 신자는 영성체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완전히 들어가게 된다. 그리스도가 아버지께 자신을 바친 그 희생에 우리의 모든 것을 일치시키고 동화시킨다. 여기에 성찬례의 참 의미가 있다.9)
중심이 되는 성찬례를 말하면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찬례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인간의 용해, 융합, 일치라는 점이다. 그리고 성찬례는 단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와 관계된 것이라는 점이다.10) 곧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 인간 상호간의 일치가 성찬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영성체 자체가 각자 개인 위주가 외면 ‘주님과 나’의 관계밖에 없다. 미사도 ‘나 혼자 사제와’ 바치는 느낌이다. 이런 경우 성당 안의 회중은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없을 것이다.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