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평신도들의 모습-전례생활(하)

 

2) 공동체의 일치와 협력




그들은 일치중에 적극적인 전례의 참여와 상호간의  놀라운 애덕의 실천, 그리고 공동체 내외의 복음화에 힘썼다. 더나아가 이들은 공동체의 건설 뿐 아니라, 북경의 교회와 기회가 되는대로 연락을 취하여 자신들의 공동체의 정통성을 위해 지도를 청하고 사제의 파견을 간청하였다. 사제들의 입국 후에도 그들의 협동 작업은 놀라운 것이었다.1) 교회창립 초기부터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에게 애긍하는 것을 신앙의 중요한 실천 방법으로 간주하였다. 특히 이들은 박해와 자연적인 대재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 자체가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신앙의 증거자로서 살려고 노력했기에 그들의 애덕 실천은 더욱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천주교 신앙 내용에서 나타나는 평등사상과 사랑의 가르침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신분이나 사회적 계급 고하에 얽매이지 않고, 서울이나 지방에서 일정한 교우촌이라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서 경제적으로 불우한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돕는 삶을 살았다. 이들은 신앙적, 정신적 결합 뿐 아니라 경제적 생업 수단으로 연결되어 옹기장수나 박물장수로서 이 교우촌과 저 교우촌의 유대 관계를 형성해서 지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적 삶은 처음 교회 창설기에서 신유박해 전까지는 주로 지식인 층에 의해 영위되었으나 그 후로는 중인 출신이나 서민들을 중심으로 실천되었다.2) 




3) 초기의 교리교육


초기 교회 신자들은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공동체”(현대의 복음 선교 13항)를 이루면서 주께서 위탁하신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1) 초기 교회의 교리서(전례, 신심서적)


이들은 더욱 효과적으로 전교하기 위하여 교리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각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어떤이는 중국말 서적을 우리 말로, 또 다른이들은 복음적 메시지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토착화를 시도하며 한국적 교리서를 쓰기도 했다.3)


이미 신유박해 때 당국에서도 신도들로부터 압수한 교회 서적과 성물, 성화등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소화(燒火)되었지만 다행이 그 목차만은 남아 있어 이를 통해 당시의 활발했던 신앙 생활을 엿볼 수 있다.4)




가. 첨례용


압수된 서적 중에서 윤현(尹鉉)의 집의 것이 가장 많았고 한신애(韓信愛)의 것과 김희인(金喜仁)의 것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압수된 책들 중 첨례용으로서 첨례단(瞻禮單), 주년첨례(周年瞻禮), 성경광익(聖經廣益), 성경직해(聖經直解), 예수 성탄 첨례, 제성첨례 등등을 들 수 있다.


첨례단이란 다름 아닌 축일표로서 연중의 첨례일을 월,일,순으로 적은 소책자이다.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은 똑같이 주일과 첨례의 성경(聖經)와 함께 그것을 주석한 책이다. 성경광익직해(聖經絞廣益直解)란 책은 성경광익과 성경직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합쳐 편찬한 것으로 여겨지며 [예슈 셩탄 첨례],[예슈셩탄],[봉재후三],[제셩쳠례] 등은 특별히 이러한 첨례를 위해 만든 소책자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성경직해나 성경광익에서 낙장(落張)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도문은 비록 후대의 규정이기는 하나 첨례의 경문규정(經文規定)에 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당시의 신자들도 첨례 때 도문을 염했다는 사실도 있다. 그러므로 압수된 책들 가운데 나오는 성인열품도문(聖人列品禱文)5), 천신도문(天神禱文), 예수수난도문, 연옥도문(煉獄禱文), 청성호도문(淸聖號禱文), 천주성교도문(天主聖敎禱文)은 모두 첨례용이었을 것이다. 그밖에 신진일과(神珍日課)는 물론이요, 주년첨례주일공경, 주년첨례주일고경규정(周年瞻禮主日古經規定)등도 첨례와 관련된 경문책(經文冊)이었을 것이다.6)




나. 신공용, 개인 신심용


여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기도문, 즉 조만과를 필두로하여 기타 여러가지 기도문이 발견되는데 성교일과(聖敎日課)란 이러한 기도문을 수록한 책이고, 성호경, 오배례(五拜禮), 예수도문, 천주십계등은 조과에 들어 있는 경문이다. 그밖에 오상경(五傷經), 묵주신공때 바치는 매괴경(魅怪經) 등 여러 가지 경문이 있었다. 참고로 고해와 성체성사를 준비시키기 위한 저술로서 요리문답(要理問答), 삼문답(三問答), 고해요리(告解要理), 고해성찬(告解聖餐), 성사칠적(盛事七蹟), 척죄정규(滌罪正規)7) 등이 있었다. 호교서(護敎書)로는 교리서론(敎理序論), 쥬교요지8) 등이 있었고, 윤리서(倫理書)로는 널리 알려진 칠극(七克)외에 사말론(四末論), 진복직지(眞福直指)등이 있었다. 묵상서로는 묵상제의 묵상식량, 성모념주묵상, 수난시말과 같은 책이 있었는데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북경주교인 구베아가 친히 저술했다는 묵상지상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또한 성인들의 전기 역시 신자들이 애독한 신심서의 하나였다. 성경광익 하나만으로도 당신 신자들의 열성을(성인들의 덕행을 본받으려는) 알 수 있는데 성경광익 이라하면 교회가 일년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첨례를 정하여 공경하는 모든 성인들의 일생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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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평신도들의 모습-전례생활(하)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공동체의 일치와 협력


    그들은 일치중에 적극적인 전례의 참여와 상호간의  놀라운 애덕의 실천, 그리고 공동체 내외의 복음화에 힘썼다. 더나아가 이들은 공동체의 건설 뿐 아니라, 북경의 교회와 기회가 되는대로 연락을 취하여 자신들의 공동체의 정통성을 위해 지도를 청하고 사제의 파견을 간청하였다. 사제들의 입국 후에도 그들의 협동 작업은 놀라운 것이었다.1) 교회창립 초기부터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에게 애긍하는 것을 신앙의 중요한 실천 방법으로 간주하였다. 특히 이들은 박해와 자연적인 대재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 자체가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신앙의 증거자로서 살려고 노력했기에 그들의 애덕 실천은 더욱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천주교 신앙 내용에서 나타나는 평등사상과 사랑의 가르침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신분이나 사회적 계급 고하에 얽매이지 않고, 서울이나 지방에서 일정한 교우촌이라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서 경제적으로 불우한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돕는 삶을 살았다. 이들은 신앙적, 정신적 결합 뿐 아니라 경제적 생업 수단으로 연결되어 옹기장수나 박물장수로서 이 교우촌과 저 교우촌의 유대 관계를 형성해서 지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적 삶은 처음 교회 창설기에서 신유박해 전까지는 주로 지식인 층에 의해 영위되었으나 그 후로는 중인 출신이나 서민들을 중심으로 실천되었다.2) 


    3) 초기의 교리교육

    초기 교회 신자들은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공동체”(현대의 복음 선교 13항)를 이루면서 주께서 위탁하신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1) 초기 교회의 교리서(전례, 신심서적)

    이들은 더욱 효과적으로 전교하기 위하여 교리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각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어떤이는 중국말 서적을 우리 말로, 또 다른이들은 복음적 메시지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토착화를 시도하며 한국적 교리서를 쓰기도 했다.3)

    이미 신유박해 때 당국에서도 신도들로부터 압수한 교회 서적과 성물, 성화등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소화(燒火)되었지만 다행이 그 목차만은 남아 있어 이를 통해 당시의 활발했던 신앙 생활을 엿볼 수 있다.4)


    가. 첨례용

    압수된 서적 중에서 윤현(尹鉉)의 집의 것이 가장 많았고 한신애(韓信愛)의 것과 김희인(金喜仁)의 것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압수된 책들 중 첨례용으로서 첨례단(瞻禮單), 주년첨례(周年瞻禮), 성경광익(聖經廣益), 성경직해(聖經直解), 예수 성탄 첨례, 제성첨례 등등을 들 수 있다.

    첨례단이란 다름 아닌 축일표로서 연중의 첨례일을 월,일,순으로 적은 소책자이다.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은 똑같이 주일과 첨례의 성경(聖經)와 함께 그것을 주석한 책이다. 성경광익직해(聖經絞廣益直解)란 책은 성경광익과 성경직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합쳐 편찬한 것으로 여겨지며 [예슈 셩탄 첨례],[예슈셩탄],[봉재후三],[제셩쳠례] 등은 특별히 이러한 첨례를 위해 만든 소책자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성경직해나 성경광익에서 낙장(落張)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도문은 비록 후대의 규정이기는 하나 첨례의 경문규정(經文規定)에 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당시의 신자들도 첨례 때 도문을 염했다는 사실도 있다. 그러므로 압수된 책들 가운데 나오는 성인열품도문(聖人列品禱文)5), 천신도문(天神禱文), 예수수난도문, 연옥도문(煉獄禱文), 청성호도문(淸聖號禱文), 천주성교도문(天主聖敎禱文)은 모두 첨례용이었을 것이다. 그밖에 신진일과(神珍日課)는 물론이요, 주년첨례주일공경, 주년첨례주일고경규정(周年瞻禮主日古經規定)등도 첨례와 관련된 경문책(經文冊)이었을 것이다.6)


    나. 신공용, 개인 신심용

    여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기도문, 즉 조만과를 필두로하여 기타 여러가지 기도문이 발견되는데 성교일과(聖敎日課)란 이러한 기도문을 수록한 책이고, 성호경, 오배례(五拜禮), 예수도문, 천주십계등은 조과에 들어 있는 경문이다. 그밖에 오상경(五傷經), 묵주신공때 바치는 매괴경(魅怪經) 등 여러 가지 경문이 있었다. 참고로 고해와 성체성사를 준비시키기 위한 저술로서 요리문답(要理問答), 삼문답(三問答), 고해요리(告解要理), 고해성찬(告解聖餐), 성사칠적(盛事七蹟), 척죄정규(滌罪正規)7) 등이 있었다. 호교서(護敎書)로는 교리서론(敎理序論), 쥬교요지8) 등이 있었고, 윤리서(倫理書)로는 널리 알려진 칠극(七克)외에 사말론(四末論), 진복직지(眞福直指)등이 있었다. 묵상서로는 묵상제의 묵상식량, 성모념주묵상, 수난시말과 같은 책이 있었는데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북경주교인 구베아가 친히 저술했다는 묵상지상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또한 성인들의 전기 역시 신자들이 애독한 신심서의 하나였다. 성경광익 하나만으로도 당신 신자들의 열성을(성인들의 덕행을 본받으려는) 알 수 있는데 성경광익 이라하면 교회가 일년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첨례를 정하여 공경하는 모든 성인들의 일생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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