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신원과 영성-평신도는 누구인가?(평신도와 성직자의 대립적 구도)

 

2. 2. 평신도와 성직자의 대립적 구도


교계제도가 형성되면서 교회 내에는 교회내 직무를 맡고 있지 않는 사람을 평신도라 명명하기 시작했고, 이 말은 단지 경신례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였다. 즉 전반적인 의미에서의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립적 관계를 지칭한 것도 아니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갖게 된 교회는 정치, 사회적인 미묘한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갔고 평신도와 성직자의 분리도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분리 현상이 극에 다다르면서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평신도라는 단어 laicus가 마치 비전문가, 교육받지 못한 사람, 교육에 필요한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처럼 부정적인 단어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의식은 성직자는 영적인 사람이요 평신도는 육적인 사람이라는 구분을 낳게 하면서 평신도는 마치 하등급의 사람이요 하등급의 삶을 살아가는 교화되어야 할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게 되었다. 이때의 교회에서는 청빈한 평신도의 삶을 강조하고 평신도의 교회,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평신도와 성직자 구분이 견고해지면서 성당은 평신도들에게 단지 세속의 힘든 고통을 위로받는 장소로 인식하게 되고, 신앙생활과 사회적 활동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한다. 성직자 계급의 위력이 더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의 자리는 비좁아졌고 오직 성직자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자책만 더해 갔고, 평신도의 삶은 마치 죄악에 물든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천한 삶인 것이 되었다.


  聖과 俗의 분리현상이 심화되어 가면서 현세는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으로만 생각되고 그로 인해 현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당에 와서 죄악에 물든 자신을 탓하는 데 그치고 다시 생활로 돌아가서는 그저 그전과 다름없는 생활에 젖어 사는 이중적인 모습이 반복되고 마는 것이다. 성직자들도 이런 평신도의 이중적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이 완덕에 가는 지름길이라는 그릇된 환상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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