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신원과 영성-세속성을 고유한 특성으로 가지는 평신도(평신도들의 세속성)

 

3-2. 평신도들의 세속성


‘세속’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성취하는 자리가 되고 수단이 된다. 사실 세속성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관련된 공통점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15항에서도 “분명히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이 세속적 차원에 동참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참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속성이 평신도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교회헌장은 평신도의 세속성에 ‘고유하고’(propria) ‘특별한’(perculiaris)이라는 부사어를 첨부한 것이다. 세속성은 모든 이에게 원초적 조건이며 세례를 받는 것 이전에 갖추어진 선행조건이다. 성직자들은 신품성사를 통해서 세속성을 확장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변형시킨 축성생활을 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성직자와 달리 현세적 실재인 세상 안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외형적 측면뿐 아니라 본질적인 요소를 달리한다. 다양한 문화, 종교, 가치관, 가정 속에서 그것들을 성화하고 하느님의 질서로 복음화해야 하는 평신도들의 사명은 바로 세상이 그들이 복음전파의 場임을 말해 주고 있다.


  결국 복음전파와 인간의 성화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되 성직자에게 주도권을 부여하고, 현세질서의 쇄신에 대해서는 평신도가 그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평신도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에페 4,7) 각자의 능력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교회의 구원사업을 위해 힘쓰고 이는 곧 세상의 성화를 향한 걸음걸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현세 질서를 쇄신하는 것이 神政국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교회헌장 36항에서는 “어떠한 현세적인 일에 있어서나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따라야”하지만, “지상 국가가 고유한 원리로 통치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모든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교 정신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다. 이는 믿지 않는 이들을 교회에 데려와 세례를 주는 것이 복음 전파 사명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고백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 파견된 복음 선포의 증거자들이다. 현세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평신도만이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밝힐 수 있는 때가 있고, 바로 그 때에 평신도인 우리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직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평신도는 교회 일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평신도에게 있어서 세속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고유한 특징이 되듯 교회는 그들에게 세상 안에 살아가는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평신도는 교회 안에 속해 있으면서 세상 안에서는 교회를 대표하는 하나의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은 그 ‘세속성’의 고유하고 분명한 특징 때문에 “교회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포도나무의 비유에서처럼 평신도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역할을 하기 위해서 각자의 은총의 분량만큼 유기적인 지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로의 유기적인 지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질서에 대항하는 가장 확실하고 모범적인 공동체로 성장케 한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