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공통사제직의 개념
1.2.1 배경
먼저 사제직의 범위를 규정하고 이어서 공통사제직이라는 표현의 기원을 살펴본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은 교도와 관련된 예언직, 성화와 관련된 사제직, 봉사와 관련된 왕직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이 구분은 칼빈파 신학에서 처음으로 체계화1)되었고, 가톨릭 신학의 조정을 거쳐 가톨릭 구원론의 통설로 받아들여졌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도권의 공식적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직능의 상호 관계와 종속이 상당히 불투명하게 남아있으므로 학자들마다 다양한 해석을 제시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의 업적이 지니는 단일한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전개한다는 것이다.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헌장에서 평신도를 축성된 자로 서술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존재의 존엄한 품위를 법적 구조보다 우위에 두고 강조하는데, 이는 위의 세가지 직무라는 체계에서 이루어진다.3) 따라서 본고에서는 성화와 관련된 의미를 중심으로 사제직을 언급하되,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예언직과 왕직이 필연적으로 함께 붙어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예언직과 왕직을 포함하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한편, 사제직과 왕직, 예언직을 포괄하는 또다른 개념으로 사도직이 있으므로 사제직과 사도직을 구별할 필요성도 있다. 사제직(sacerdotium)은 성화(sanctificatio)의 개념에, 사도직(apostolus)은 파견(missio)의 개념에 각각 대응하고 둘다 소명(vocatio)개념 안에 포함된다. 따라서 이 둘은 엄격히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교회의 직무가 부르심을 받아서 파견된다는 구조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두 개념의 공통점을 먼저 살펴보면, 둘다 세례와 견진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합체되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한다는 데 근거하고, 인간 구원과 하느님 영광의 성취라는 교회 존재의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므로,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해당되는 개념이다. 곧 사도직이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 왕국을 전세계에 확장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참여케 하며, 그들을 통해 전세계를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활동을 모두 지칭한다.4)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존엄한 사제적, 예언자적, 왕적 품위 때문에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누구에 의해서 보내어졌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이를 사제직과 비교할 때, 특히 구원을 위한 선교파견을 지향한다는 실천적 성격을 띤다.5) 따라서 사제직은 하느님 백성의 내적이고 신학존재론적 차원에서 존엄한 품위를 나타내고, 사도직은 이를 전제로 행하는 외적이고 실천적 차원에서의 활동을 주로 뜻한다. 그러나 행위와 상태가 항상 엄밀히 분리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더욱이 사도직이 파견된 자의 상태나 직위, 직책, 품위를 광범위하게 의미하므로,6) 본고에서는 사제직을 사제적 품위에 관해 언급하되 그에 수반하는 성화적 활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언급할 것이다.
이제 개념규정에 있어 마지막으로 공통사제직이라는 말의 기원을 살펴보고자 한다.7)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새미사 통상문에 따른 전례 용어 개정을 통해, 종전의 ‘일반’ 또는 ‘공통’ 사제직이라는 표현을 ‘보편’ 사제직으로 개정하고, 이것을 직무사제직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규정하였다.8) 그런데, 이 용어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쳐 교회공식문헌에 처음 등장할 때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공통사제직의 핵심적인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공의회는 잘못된 해석을 피하기 위해 공통사제직과 직무사제직 사이의 차이점을 처음부터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통사제직의 개념은 올바로 정의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들이 제안되었다. ‘부적당한’, ‘처음의’, ‘일정한’ 사제직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자체로는 유명무실하다- 공통사제직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거부되었고, 유비의 개념을 이용하여 차별성을 정의하고자 했던 제안도 모호하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직무사제직과의 유사성을 유지하면서 비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적인 사제직”(sacerdotium spirituale)도 두 사제직에 다 해당되므로 수용되지 않았다. 1963년 초안은 보편적 사제직(sacerdotium universale)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보편적이라는 말이 모든 것들(universa)을 다 의미하기에 공격받았고, 신학위원회가 이를 고려했으나 결국 부당하다고 평가하고 공통사제직(sacerdotium commune)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모든 세례받은 이들이 공유하므로 직무에 축성된 사제들을 배제하지 않으며,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공통된-그래서 또한 보편적인- 사제직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공통사제직과 정교한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축성된 사제직은 하느님 앞에서 백성의 대표가 되는 것이므로 성사적인 혹은 대행의 사제직(sacerdotium repraesentans)으로 지시되어야만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공통사제직 또한 성사적인 기초를 가졌고, 대표성은 공통사제직과 교계적 직무사제직을 구별하는 유일한 특성이 아니다. 위원회는 결정적인 구별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된 관심은 직무사제직과의 차별성을 유지하면서 신자들의 공통사제직에 대해 긍정적으로 진술하려는 데 있다. 그래서 교회헌장 10항은 구조적으로 공통사제직을 교계적 직무사제직과 대조시키고 그 둘은 단순히 등급뿐만 아니라 본질에서도 구별된다고 확인하고 있다. 이 차별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4장에서 고찰할 것이며, 본고에서는 공의회의 의도를 살려서 공통사제직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