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론

 

6. 결   론




교회는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그 기능을 달리할 뿐 결코 상․하 개념이 아니다. 성서도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인간이 동등하며 평등하다고 제시한다. 하지만 초대 교회에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전까지 평신도는 성직자나 수도자보다는 낮은 신분으로 이해되었고, 성직자의 사목대상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평신도에 의해서 세워진 한국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성직자가 평신도를 아랫사람으로 보고,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평신도들 역시도 깨어있지 못했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교계 제도에도 끼지 못했던 평신도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신도의 위치를 급부상시켰으며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들의 고유한 역할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성직자는 평신도가 더 이상 자신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같은 형제임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평신도들 또한 자신들이 바로 교회의 주체임을 깨닫고 교회사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성직자와 평신도가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서로 협력할 때 진정한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다.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인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참여한다. 사제직, 왕직, 예언직이 그것이다. 여기서 예언직은 바로 하느님 말씀의 선포, 즉 선교사명을 말한다. 선교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요,  그 말씀을 직접 몸으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한다. 하지만 평신도의 예언직 참여가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과학주의로 인해 현대인들은 갈수록 종교에 대해,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고 있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의 힘으로 안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하느님의 사랑은 교회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만 한다. 인간은 신앙 안에서 살아갈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가 그 주역이 되어야 한다.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이러한 현대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고 그 속에서 더 효과적으로 하느님을 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론(反論)이 제기된다. “나는 직장과 가정이 있고 내가 해야할 의무가 있다. 나의 종교적인 의무는 더 이상 떠맡을 수 없다. 결국, 사도직이란 사제들이나 할 일인 것이다.”1) 이것은 사도적 직무를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사도적 직무는 일상 생활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상 생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신도들을 끊임없이 부르고 계신다.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마태 20, 6-7). 따라서 평신도들은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그 고유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