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느님 나라로서의 교회1)
4.1 하느님 나라의 성사, 교회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교회가 하느님 구원계획의 절정이요 그 완성인 하느님 나라에로 정향되어 있다고 한다면, 교회가 그 목표를 위하여 지니는 역할(혹은 봉사)이 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교회는 이 역할의 충실한 실행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물론 하느님 나라라는 것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요,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 나라의 실현을 좌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인간 측의 협조, 참여, 응답을 필요로 하듯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인간들의 노력,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믿는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역할과 노력이 요청된다.2) 즉,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하느님 백성의 자세에 의해서 좌우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의 실상(實相)은 이를 드러내는 백성들에 의해 수락됨으로써 전모를 세계에 현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3) 이런 견해를 레오나르도 보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하늘의 것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과 함께,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하는가에 달려 있다”4) 하느님 나라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서 ‘하느님 나라의 성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교회의 본성이기도 하다.
앞에서 성사로서의 교회를 살펴보면서 교회는 근원적으로 성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교회는 구원의 도구이며 표지요, 구원의 성사라고 이야기 했다(참조: 교회헌장 1,8,48). 구원을 위한 그리고 구원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하느님의 선물인 구원을 선취하여 살아가면서 그 구원을 세상에 선포하고 보여주는 또한 보여주어야만 하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인 것이다.
한편으로,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최종적 목표이며 “이 세계를 낙인찍고 있는 모든 악을 정복하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현실이 총체적으로 실현되는”5) 구원의 총괄 개념이다.
이렇게 ‘성사로서의 교회 – 구원 – 하느님 나라’라는 틀 안에서 바라다 볼 때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성사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어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선포하고 증거하는, ‘제2의(Alter) 하느님 나라’로서의 교회인 것이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충실히 하느님 나라의 성사로서 살아갈 때,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적 역할이며 동시에 그 자신의 본성이기도 한 것이 채워진다고 하겠다. 바로 이러한 점을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가 되는 12사도를 부르시고 파견하신 징표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겠다.6)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소식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복음 선포로써 자신의 활동을 시작한다. 이 선포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와 믿음의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아주 절박한 요구였다. 이런 부르심을 통해 예수는 흩어진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시 전체로 모으고 완전한 형체로 재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예수는 제자들을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부르심을 통해 자신을 ‘뒤따르도록’하며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운명 공동체’를 맺는다. 이 제자단은 그 숫자가 12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종말론적 이스라엘 백성의 완성을 징표적으로 표현해 준다. 예수의 의도는 또한 그 자신이 자신과의‘머무름’을 통해‘능력’을 부여한 제자들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한 사건(마르 6,7-13 참조)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제자들의 부르심, 모임(예수 곁에 머무름), 파견은 부활 이후 교회적 모임과 파견의 기본 모형이 된다. 부활 이후의 교회는 바로 예수를 통한 제자들의 이런 모임과 파견을 기초로 하여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그 자신의 현양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서 지속된다. 바꾸어 말하면 하느님 나라를 계속해서 선포하고 지상에 그것을 징표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어야할 과제가 교회에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제자단 형성과 파견이라는 징표적 행위들 안에 기초가 놓여진 교회는 이전의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예수의 제자단이 그랬듯이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에 징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성사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롬바르디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가견적 현현(可見的 顯現)이다. 그리고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철저히 생활에 옮김으로써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특별한 표지이자 그 나라의 도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분명히 광범한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된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를 조명해준다”7). 그리고 보프에 의하면 “교회는 그 나라에 봉사하는 위치에 있으며, 그 나라의 성사이며, 이 세계 안에서의 그 나라의 현시와 실현의 징표이며 도구”8)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