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어찌 보면 죽음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에 이르게 된다. 전례의 핵심, 우리 삶의 핵심이기도 하다. 성삼일에서도 금요일이 없이는 빠스카도 없다.
필립비서 2장에 보면 그리스도의 비하, 겸허함과 현양은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육화 자체가 이미 그리스도의 이런 케노시스(표징)하에 있다. 그러나 케노시스에서부터 거양, 현양에로, 죽음에서부터 삶에로 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은 1고린 15,14-19에서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활 없이는 우리의 신앙이 헛되다는 것, 우리도 아직 죄중에 있을 것이라는 것, 현재 삶 안에서만 희망을 갖고 있다면 헛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보다 더 비참할 것이라는 것,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성부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이러한 확인들이 설명되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은 죽은이들로부터 부활이라는 확인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신약성서 Text에 따른 여러가지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수의 원인이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다. 하느님이 그를 죽은이들로부터 부활시키셨다는 것은 분명한 자료들로 나타나고 있다. 부활을 전하는 Text들은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 케리스마 형식
케리스마적이고 선포적이고 전례적인 형식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1고린 15,3-이하이다. 여기에서 바오로는 이미 자기 자신이 이어받은 전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바오로 서간을 선행하는 오래된 자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로부터 찬미가 형태 안에 표현된 빠스카 신앙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여기에서 발현의 증거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Text들이고 또한 발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도 10,40-이하 또는 1디모 3,16에서도 언급한다. 그러나 다른 신앙고백문이나 찬미가들은 발현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들도 있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로마 1,3-이하, 필립 2,6.11 혹은 로마 10,9 등 여러가지가 있다.
2. 이야기 형식
마르 16,1-8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복음이 서로 수난에 대한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면서 제시하고 있고 발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들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고 역사비판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단순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발현에 대한 문제에서 볼 때 케리그마 형식 안에서 드러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야기 형식에서는 발현과 함께 빈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자료로 고찰할 수는 있다. 신앙에 대한 면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 신약성서가 그리스도 부활에 대한 신앙을 전제한다. 빠스카 신앙의 기본적 자료가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문제가 된다. 신앙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지만 어문론적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에게 스켄들을 자극해 줄 수 있다.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에게 스켄들이 되는 많은 신앙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 십자가, 하느님의 아들, 살아있는 죽은 사람 등-. 순수 역사비판학적 입장에서 접근할 수 없는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어려움을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만나고 있다. 아레오파고에서 바오로가 설교할 때 아테네의 희랍사상과 맞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가르침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사도 17,31) 부동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분은 정하신 사람을 시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고 또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32절에 “그러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듣고 어떤이들은 비웃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이에 관해 당신의 말을 다시 한번 들어보겠소’하고 말하였다.” 호교적인 논쟁은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도인 신앙이 확인되기 시작할 때 이런 논쟁이 어느정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시 이런 것이 새롭게 되돌아오고 있다. 따라서 빈무덤과 발현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부정적인 시각들이 나타나게 된다. 첫째 우리가 살펴볼 때 제자들이 무덤을 비워놓고 발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석학에서 처음에 나타나는 주장이 이런 것이다. 두번째 이론은, 부활은 하나의 신화, 신비의 예식으로서 구약 안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상의 교의에 불과하다. 또다른 사람들은 제자들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슈트라우스).
그러나 오늘날 역사 비판학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라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의미와 현실이 보다 긍정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문제에 우리가 봉착한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는 Marxen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확인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일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확인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예수’라고 할 때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나자렛 사람 예수인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가 라는 것이 모두 밝혀져야 한다. ‘예수가 일으킴을 받으셨다.’ 일으킴을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가지 이에 대한 해석을 제시할 때 Marxen에 의하면 육체적으로 다시 일으킴을 받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육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제자들의 마음과 교회의 케리그마 안에 부활하셨다고 이야기하면서 영신적인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문제는 부활에 대한 신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확인된 삶에 대한 문제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도 부활하셨다고 했을 때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 죽음 전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은 무엇인가, 영원한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런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
최근에 드러나는 부활에 대한 해석학적 문제는 먼저 ‘접경문제’로서의 부활을 살펴볼 수가 있다. 일부 자료들은 분명히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역사비판학적 방법에 의해서 접근될 수 있는 자료들이다. 일부 Text를 분석하고 그들의 역사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거기에 따라서 빈무덤과 발현의 역사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비판학적 연구가 더 발전된 결론에 이르게 될 때는 문제가 복잡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신학적 가르침, 숙고가 이런 역사비판학적 차원에서 확인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역사비판학적 확인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초월적 현실에 개방되어 있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 예수의 여정, Exousia 이런 것을 볼 때 역사 안에 사신 예수의 행위, 메시지, 죽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라는 것을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의 자료는 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의 기적, 가르침, 최후만찬, 십자가의 죽음처럼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첫 공동체의 신앙은 역사적이다. 발현과 빈무덤은 역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부활의 자료는 그 자체로 체험을 초월하는 자료이다. 부활을 십자가의 역사적 자료에 환원시키는 것이 합당한가 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즉 십자가의 사건에 대한 해석의 의미에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십가가의 자료와 구별되면서 -비록 관계를 갖고 있지만- 부활의 신앙과 일치될 수 없는 것으로, 혹은 일치될 수 있는 것으로 고려될 수 있겠는가? 십자가의 경우와 부활의 경우에 있어서 역사의 자료와 신학적 해석 사이의 관계는 서로 다르다. 십자가의 경우에 있어서는 체험적 자료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고, 부활의 경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발현이라는 역사적 자료의 초월적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접경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질문과 교회적 질문 사이에 서로 교차점이 나타나고 있다. 상반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상반관계를 나타낼 때 신앙은 무의미한 것으로 되고 말 것이다.
역사적 질문은 종교론적인 문제, 교의적인 문제에 신학적인 해석이 개방되어 있어야 하고 신학적 해석은 역사적 질문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일반적으로 역사의 과제를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 부활에 대해서 말하는 원천들을 비판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삶의 자리를 규정하는 것이다. 특정한 사건들의 역사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 다음에 확인의 의도를 탐구하는 것이다. 마지막 의도가 나타나는 자료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세번째로 현재의 맥락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방법과 대화 안에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교의적인 과제는 우리의 신앙고백으로서의 부활을 신앙의 여러 확인들, 신약성서의 전승, 신앙의 체험에 비추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무엇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에 말한대로 역사적 과제가 신학적 해석에 열려져 있는가, 아니면 열려져 있어야만 하는가의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