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인간학-신학적 인간학의 출발점(하)

 

D. 신학적 인간학의 장(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흐름인 ‘주체에로의 전환’을 참작하기 위한 신학적 인간학의 신학적 기점에 대한 요구는 이제 더 첨예하게 되었다. 즉 이 신학적 기점은 죄의 현주소, 즉 ‘하느님 앞에 상실된 인간됨(인간성,인간임)’을 나중에 첨가하는 형식으로 신학적 인간학에 덧붙여서는 안되고 오히려 그런 인간의 인간됨이 있는 그대로의 그런 모습으로서 그 출발점 안에 내포되고 주제화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창조론적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느님의 선의에 의한 창조 – 선의에 의한 선의의 창조  “보시니 좋더라” – 의 측면이 초월적 반문을 통해 인간의 인간됨을 다시금 새로이 얻고자 한다.


조직(교의)신학 안에서 이 문제를 어느 분야에서 다룰 것인가 하는 대답도 여기서 나타난다. 신학적 인간학이 하느님 앞에 실제 구체적 인간 실존을 다룬다는 것에 이론이 없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즉 그 신학적 인간학의 장과 기점은 다름 아닌 은총과 의화(義化)에 관한 학문 안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이런 우리 주장을 거스르는 여러 형태의 언표들이 발견된다.




1) 은총과 의화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스콜라의 사변적 논리 중심을 의미)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한 가톨릭 신자가 일반적인 교의신학 교과서에 나오는 은총론 부분을 읽는다면, 논리적, 사변적, 역사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는 가능할 것이나, 그것이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자적 실존과 자신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 지 파악하기 어렵다.




2) 의화론 역시 은총에 관한 가르침보다 조금은 나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실제 그리스도교적 실존과 관련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아직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진 이유가 ‘의화론’에 있다는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 개신교 신학자(H.J.Ivand)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의화에 대한 신앙조문이 신앙고백의 핵심에서 빠진다면 우리가  개신교 신자이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핵심의 상실이 벌써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의화론이 그런 전통적인 모양으로는 의문에 처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은총과 의화에 대한 전통적 진술들이 이제까지의 형태로는 호소력을 적게 지닌다면, 신앙핵심에 속하는 의화와 은총의 중심내용을 다른 성찰과 언어의 모습에 담아 표현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야 한다.(역사적 부하가 걸린 신학적 개념들을 금일화(今日化,Aggiornamento)하는 작업들이 요청된다.)




3) ‘주체에로의 전환’이라는 빛 안에서 은총과 의화에 대한 가르침을 새롭게 표현하려는 시도와 그 가르침을 인간의 실존적 관계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은총론과 의화론의 포기할 수 없는 언명들을 하느님 앞에선 인간에 대한 언사들로 꾸미려는 시도 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 시도 안에 은총론과 의화론의 개별적 주제들은 완전한 단어의 변화가 불가피하더라도 그런 시도 안에 수용될 수 있다.




4)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 속에서의 표현들이 벌써 이런 은총과 의화론의 인간학적 전환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사실은 벌써 중세 신학 안에 은총론의 구별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발전의 끝은 Thomas Aquinas의 「Summa Theologica」의 은총론에 관한 부분에서도 보여진다. Thomas Aquinas의 신학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에 관한 신학의 은총에 관한 부분이 ‘은총의 절대 필요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것과 그리고 인간의 죄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 안에 근거를 가지는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Thomas Aquinas의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이 놀라는 사실, 즉 Thomas Aquinas가 여기서 다른 곳과 달리 은총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함께 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이 Thomas Aquinas에게서도 발견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즉 Thomas Aquinas는 ‘신학적 인간학으로서의 은총론’의 발자취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현재의 신학적 이해 조건 가운데서 전통적인 은총과 의화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총체적 문제를 신학적 인간학으로 수용하는 시도와 이 시도를 통해 그 가르침들의 새로운 언어와 개념의 형태(모양새)를 부여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다.




***현대의 우상은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절대화’시키고, 그 외의 모든 가치를 상대화시키는 것이  다.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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