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안에서의 은총 개념(상)

 

2.1.2  신약 안에서의 은총 개념


총에 대한 구약성서적 단어들이 LXX과 같은 희랍어 번역본에서 신약성서 저자에 의해 구약성서적 색채를 지닌 채 번역되어 사용된다. 은총에 대한 구약성서적 개념의 희랍어 번역 역시 다양한 모양을 지니는데, 그것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규정하는 ‘형상적 틀’안에 포괄하여 표현해 준다. 예를 들면 공관복음에서는 ‘하느님의 통치’(Herrschaft Gottes : Gottesherrschaft –  δυναμις θεου), 혹은 요한 복음에 있어서의 생명(‘ζωη’= Leben in Fꋿlle = 구원, 충만한 삶)이라는 개념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표현해 준다. 물론 이런 관찰은 바오로적 개념인 χαρις를 아직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의 입을 통해서는 χαρις란 단어가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데 비해, 바오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신앙이해의 핵심적 단어로 이 단어가 등장한다. 즉   χαρις란 말은 구약의 은총 개념이었던 hen의 번역어이다. 이 말은 아직 신학적 비중을 지니는 말은 아니었으나, 바오로에 와서 이 단어는 ‘전문용어’(Terminus Technicus)가 된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100여번 이 말이 언급되고, 신약 전체를 통틀어서는(바오로 서간을 제외하고) 55번 사용된다. 신약에서는 이 단어가 사용되는 때마다 상이한 내용을 나타낸다. 그러기에 이러한 비중을 보더라도 우리가 은총론의 기초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는데 관심의 대상은 바로 바오로가 사용한 개념이다. 특히 여기서 은총개념의 형상적 측면을 고찰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은총개념의 내용들은 그후에 그리스도교적 은총이해를 위한 신약성서에서 중심을 이루는 다른 측면들과 함께 다시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여기서 괄호 안에 넣어 관찰을 보류해야 하는 이유는 χαρις란 단어가 바오로 서간 안에서 축복의 인사에서 나타나는 의미처럼 ‘감사’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고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χαρις και ειρηνη”라는 인사말은 미사성제의 거행시 흔히 사용됐던 단어의 개념이다. 이 말은 본래 고대 편지 서두의 인사말이었으나, 그리스도교화 된 형식이다.(사도 15,23 ; 23,26 등)  즉 희랍적 인사말의 또 다른 표현인 χαιρη와 히브리 인사말인 םולשׁ(shalom)이 바오로에 있어서 함께 조화를 이루어 합성된 것이다. 이런 형식의 의미는 매번 전체 본문 안에서 이해된다.




A.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오로에 와서 χαρις가 ‘의화’(義化) 혹은 ‘구원사건의  총체적 개념’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전적인 의미를 지니는 본문인 ‘로마 3,23 이하’에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고,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에 힘입어 그의 은총을 통해서만 ‘선물을 받듯이’(δωρεαν) 정의(正義)에 도달할 수 있다.”


의화 혹은 구원사건의 모든 요소들이 이 본문에 집약되어 있다. 모든 것의 원천인 하느님의 은총은 선물 받듯이, 선물처럼(δωρεαν)이라는 말을 통해서 형상적으로 특징 지워져 있다. 여기서 다른 단어들은 이 ‘선물처럼 받는 것’(δωρεαν)을 내용적으로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즉 하느님 은총의 이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은총은 인간을 지향하고 목표로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의 정의와 동질성을 지닌 잃어버린 하느님의 영광을 회복해 주는 은총으로 인간에게 선사되어져야 함을 나타낸다. 이 개념 안에서(특히 바오로 서간 안에서 변형된 개념 안에서) 핵심적인 것이요, 그 개념이 총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무엇을 하였는지’, 즉 ‘의화 혹은 구원’이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은총은 ‘인류의 새로운 상태’인 것이다. 즉 인류가 그 상태에 다가갈 수도 있고 또 그 안에 설 수도 있게 되었다.(로마 5,1 이하)  그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죄를 극복하는 것이고(로마 5,15.20 이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로마 6,23)  또 하느님의 은총은 율법의 지배를 종식시킨다.(로마 6,14)  그렇기에 율법에 새로이 종속된다면 그것은 다시 은총으로부터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갈라 1,6 ; 5,4)




B. 이로서 신약의 은총개념은 구약의 은총 개념과 이런 면에서 구별되고, 그런 구별과  함께 그리스도교적인 고유한 은총이해가 점점 명료해 진다.


은총은 우선 ‘모든 이제까지의 것으로부터 구별짓는’,더 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이제까지의 것에 반대되는 새로운 구원사적 시간(epoche)’이라 할 수 있다. 구약에서도 은총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총체적 개념의 내용이 시간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모세 오경의 가장 오래된 문헌에 속하는 야휘스트계 문헌 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자신의 당대에, 즉 다윗 시대에 체험한 ‘하느님의 축복’이 언급된다면 또는 신명기 안에 현재와 미래의 삶을 의미하는 ‘선택’이라는 말이 언급된다면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의 여러 부분에서 ‘미래의 메시야적 구원’에 관해 언급된다면, 또 예레미야가 ‘새로운 계약’을 선포하면, 이런 모든 언급들 안에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구원사적 시간을 의미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구원의 시간들은 구약과의 단절 후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이스라엘 신앙의 고유한 선상 위에 놓여 있다. 즉 구약과의 연관성을 지니는 것이다. 바오로가 말하는 이 은총의 시간은 이에 비해 새로운 면을 지닌다. 바오로에 있어서 이 새로움은 한편으로는 ‘충만’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시간이 충만하였을 때(때가 찼을 때) 하느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냈다.”(갈라 4,4)  이 충만은 동시에 그 이전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보낸 아들은 율법 아래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동시에 그 율법의 끝, 율법의 완성자이다. 즉 율법의 최종 목적점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은총 자체이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총의 선물을 의미한다.(로마 5,15)  아주 자주 사용되는 표현인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서간의 인사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그리스도의 은총을 동일시’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늘 그리스도와 관련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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