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은총 이해-바울로: 은총과 죄(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구성원)

 

4.3.7.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구성원




        이러한 사회적 관점은 옥중서간에서 특히 부각되고 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시기를 위한 계시(골로 1, 26-27; 에페 1,9; 3,3)는 세상의 보편 구원에 관한 이론이다(에페 3, 6-12). 이스라엘은 더 이상 특권을 지니지 못한다. 모든 인간들, 유다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모두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구성원이 되도록 불리움을 받고 있다(에페 4, 16; 골로 2, 19; 1 코린 12, 12-30; 로마 12, 5). 살아 있는 건물의 초석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다. 모퉁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게 해서 성령의 성전을 이루고 있다(에페 2, 19-20).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분리하는 장애물들을 걷어치우셨다(에페 2, 14). 우리를 아버지 하느님과 화해시키면서 그분은 두 백성을 한 백성으로, 한 몸으로, 새 민족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분은 두 백성 모두를 죽음으로부터 구하셔서 그들이 사랑이 가져다 주는 평화 안에 살도록 하셨다(골로 2, 13; 3, 14-15). 신비체의 머리와 건물의 모퉁이 돌이신 그분은 그분 자신이 우리의 평화이시다(에페 2, 14). 사도 바울로는 영혼 안에 살아계시며 자신을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관한 이론에 성실성을 보이고 있다(에페 1, 14; 3, 17; 골로 2, 6).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자유의 윤리적 요구들(에페 4, 17; 5, 9; 골로 3, 5 – 4, 6)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바울로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슬프게 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에페 4, 30). 세례로 빛을 받은 우리들은 빛의 자녀답게, 하느님의 선택된 자, 친구들로서 성인답게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에페 5, 8; 골로 3, 12).


        새로운 이론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의 이론이 새 이론으로 더욱 깊어지고 풍요롭게 되고 있다. 그것은 내적인간이라고 불리울 뿐만 아니라 주님의 성전(에페 2, 21-22)이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에페 4, 24)으로서  개별 그리스도인에 관한 관심이다(에페 3, 16). 그 새로운 인간 역시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에페 1, 11) 항상 현존하시는 성부와 살아 있는 일치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된다(에페 1, 4-5). 한 몸의 지체들은 사랑을 통하여 하나가 된다.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4, 11)에는 하나의 몸, 하나의 정신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나의 주님, 하나의 세례, 하나의 신앙,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 한분이 계실 뿐이다(4, 4-6). 성령의 생활한 선물을 통하여 이 몸은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여 마침내 그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에페 4, 7-16; 골로 2, 19).


        만일 우리가 예정, 선택, 의화, 영광 등의 사도 바울로의 개념들을 옥중 서간에 나타나는 것처럼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사회적 측면은 로마서보다 더욱 그렇다(로마 8, 30). 이 서간에서 그리스도는 창조물의 일치의 원리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예정된 분으로서, 그분의 구원을 위한 죽음을 통하여 생명에로 불리운 교회와 분리될 수 없다(골로 1, 15-20).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교회 안에서 성실한 사람은 처음부터 신앙에로 불리우도록 예정되어 있다(에페 1, 9-10).  세례 안에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으며 그분과 함께 일어나게 된다(골로 2, 12; 로마 6, 14).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게 되고(골로 2, 13; 에페 2,5), 그분의 넘치는 은총을 받으며(골로 1, 19), 각자가 고유하게 은사를 받으며(에페 4, 7),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거룩하게 되고 흠없게 되고(에페 5, 26), 그의 신부가 된다.


        이 마지막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 역사와 하느님의 약속의 성취를 요약하고 있다. 야훼 하느님의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신비적 상징은 예언자들에 의해서 그 시대에 따라 생동적인 용어로 표현되었다. ‘신부’라는 개념 안에 그 전체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호세 2,4-25; 에제 23, 1-49; 이사 5,4, 5-8). 후에 교부들은 이러한 개념을 교회에 적용한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낳아주는 어머니요 그들에게 영적 삶을 주는 어머니이시다. 포도나무의 상징적 비유는 우리 주님에 의해서 인용되면서 자신과 신자들의 친밀한 일치를 표현하고 있다. 사도 바울로에게 있어서 이러한 알레고리적 비유는 실제적으로 묘사하기 어려운 일을 근접시키는 시도로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비유는 살아있는 몸으로서 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에페 4, 16; 골로 2, 19). 결혼의 비유는 한가지 집합적 인격성 안에 두가지 인격성들이 녹아드는 것을 표현한다(에페 5, 25-30). 이러한 모든 상징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일치, 그리고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살아 있는 구성원 하나 하나와의 일치의 신비를 관통하려는 시도로 보여진다(골로 1, 18). 신비체의 이론으로 후에 불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바울로의 가르침과 상관된다. 그러한 실천적 주제도 역시 그의 이론으로부터 유래한다.


        골로사이서는 우리에게 새롭고 또 오래된 개념들을 우리에게 상기하도록 하는 놀라운 자료이다.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 24). 사도 바울로의 고행적 신학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인의 기도는 지체들의 기도이며, 그리스도교인의 성화는 그 지체들의 성화이다”. 여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그 지체들의 고통이다”. 바울로의 교회에 대한 노심초사와 관심은 땅에서 바다에서의 위험, 갖은 위험으로 표현되고 있다(2 코린 11, 24-29). 이러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비로운 연대성에 대한 이론을 따라 살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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