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관계는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에 상호주체적 관계 안에서 사유되고 있다. 은총은 성령의 선물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인격적인 체험과 하느님 말씀이다. 아우구스티노의 체험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그를 자유롭게하고 끌어 당김으로서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는 체험이다. ‘주님 명령하신 것을 주십시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명령하십시오’라는 그의 표현으로서 종합되고 있다.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선물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준수할 능력을 지니게 한다. 아우구스티노의 체험은 고백록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당신을 너무나 늦게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옛적의 아름다움, 그렇게 새로운 아름다움. 당신을 너무나 늦게 사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계셨습니다. 나는 밖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당신을 찾았습니다. 괴이한 일이었습니다. 나를 당신의 피조물의 아름다운 형상 위에 던졌습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당신으로부터 멀리 두었습니다. 당신의 피조물들과 마치 당신 안에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당신의 피조물들. 당신은 부르셨고 고함을 지르셔서 나의 귀먹음을 뚫으셨습니다. 나의 눈멈을 밝아지게 하시고 찬란하게 하시고 눈멈을 쫓아내셨습니다. 향기를 널리 뿌리시어 숨쉬게 하시고 이제 당신을 갈망하게 하셨습니다. 당신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을 배고파하고 목말라합니다. 나를 어루 만지셨고 당신의 걸음을 따라갈 욕망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이 고백은 하느님께서 자연적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느낌을 준다. 은총은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인간을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느님의 행위는 영혼의 귀먹음을 부수는 부르심-외침, 눈멈을 종식시키는 섬광과 광채로 표현된다. 그것이 하느님의 현존, 그리고 그분과의 일치를 여는 회개의 시작이 되고 있다.
사랑의 상호주체적 관계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서 자유를 체험하였다. 그분 안에서 자신의 충만한 실현과 일치라는 유일한 목적을 향한 방향을 찾았다. 아무것으로부터도 끌림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