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론에서의 중요 쟁점

 

11장 의화론에서의 중요 쟁점


동방교회에서는 생명에 대한 요한 복음의 표현 양식이 우선적으로 취급되었다. 그에 비해서 서방신학에서는 사도 바울로의 법률적 개념이 지배적으로 통용되었다. 서방 세계의 가장 중요한 교부 아우구스티노는 바울로의 의화관을 체계화하였다. 인간의 윤리적 업적을 전면에 내세우려던 모든 시도에 대해서 그는 의화에서 만사가 은총에 의해서 결정되며,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동의나 신앙 안에서의 머뭄도 하느님의 힘에 귀속된다고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노의 이러한 인식이 그 후 신학에 영향을 미쳐왔지만, 중세 후기에 이르러 인간의 힘을 좀더 강력하게 내세우려는 신학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바를 행할 때 하느님은 당신의 은총을 선사한다고 가르쳤다. 이 견해는 일반 백성들의 신심 속에 더욱 확장되어 외적 선행들이 강조되고, 신자들은 스스로 행하는 선행들에 점점 더 큰 신뢰를 두게 되었다. 교회는 공식적으로 그리스도 생활을 하나의 자연 윤리로 만들려던 모든 시도에 대해, 은총의 절대적 필요성과 무상성과 비공로성을 가르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죄악성에도 불구하고 머물러 있는 인간 안의 선성과 자유 안에서 선을 지향하는 인간적 능력을 정당하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중세 후기의 일반 민중 속에는 선행들, 구체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계명을 준수함으로 의화, 또는 구원된다는 믿음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조 속에서 인간이 오직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서만 구원된다고 외치며 그리스도의 신앙을 핵심으로부터 개혁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이다. 루터의 반발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자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하여 입장을 재천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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