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를 위한 활동-북한선교의 전망 및 가능성

 

Ⅲ. 북한선교의 전망 및 가능성




북한선교의 전망에 대해서 논의할때 우리는 먼저 숙고해야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북한의 종교정책의 변화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의 종교정책의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북한선교의 방침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는 북한 종교정책의 변화를 대체로 두가지 측면에서 보고있다. 하나는 북한의 「기독교연맹」을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어용기구로 생각하며 박해로 교회가 지하로 점적하였기 때문에 북한에는 교회란 존재하지 않고 표면상 교인들은 당의 조직원이거나 임의로 모아놓은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은 현재의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얼마간의 의구심이 있어나 제한적이나마 「기독교연맹」이 있으므로 북한지하에서 신앙의 자유와 권익을 보호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1) 이같은 견해는 「조선천주교인협회」를 보는 우리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북한선교위원회의 위원장인 이동호 아빠스는 “조선천주교인협회라는 기구가 북한 당국의 필요성을 대변하는 도구적 역할에 불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북한교회가 이처럼 북한사회의 역사적 현실에 제약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모습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적 진실이며, 200년 역사의 1/5이상을 차지할만큼 커다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잆다.


뿐만 아니라 설령 북한의 신앙공동체가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절대적 집단주의적 지배체제속에 매몰되는 왜곡된 진실 위에 서있다 하더라도 거짓을 참으로 돌려 놓으시는 섭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 자체마저 저버릴 수는 없을것이다.2) 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처럼 교회안에도 북한선교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서로 충돌하고 있어 북한선교에 대해 통일된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의 기본 밑바탕에는 북녁땅에 있는 동족에게 하루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염원은 같다고 보여지지만 그 인식에 있어서의 차이이므로 이것은 공동보조와 대화를 통해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실제적인 접근 방법론에 있다.


1984년 3월에 북한을 최초로 방문하였던 고 마태오 신부는 방북결과와 함께 북한선교에 대한 가능성 여부와 전망에 관해 북한선교위원장인 이동호 아빠스에게  보고한 바 있다. 1985년 10월 5일자로 작성된 이 보고서에서 그는 북한선교의 방법에 있어 북한 당국자의 승인 아래 시행되는 합법적인 전교가 불가피하다는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제3국을 통한 전교활동이나 비밀 수단 등의 복음전도가 북한선교에 대한 전망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재 북한 사회의 현실을 볼 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북한 교회내 공식적 기관인 「조선천주교인협회」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북한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가의 반론이 제기된다. 또한 이러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북한에 대한 비밀 선교활동과 같은 우회적 접근이 오히려 치명적인 문제 상황을 유발시킬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답변해야만 한다. 이처럼 북한선교의 방법론은 접근하는 시각과 자세에 따라 심각한 견해의 차이와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3)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선교의 어려움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북한선교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하지만 북한선교의 전망과 그 가능성의 타진은 항상 현재를 기점으로 하기보다는 미래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성급한 낙관은 물론 조급한 비관도 금물이다.


91년 평화통일 기원미사에서 이동호 아빠스는 대북교류 5개항(①남북한 신자들의 만남과 공동참회예절, ②북한교회의 성소개발 적극지원, ③대축일 합동미사 공동 봉헌, ④고령신자 고향방문 실현, ⑤남북한 성지순례 실시) 을 제의한 바 있다.


이 제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아직 없지만 최근 북한은 종교정책에 있어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1992년 개정된 북한 헌법은 종교 자유에 관한 조항을 대폭 손질하여 종교건물을 세우거나 종교 예식을 거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자세히 알아보면 1992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제5장 「공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편 제66조에서 17세 이상 공민은 성별이나 민족, 직업, 지식 등을 비롯하여 “신앙에 관계없이” 선거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68조에서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 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한다.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 사회 질서를 해치는 데 이용할 수 없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수반하여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삭제하는 대신에 사회 질서 혼란 및 외세의 침입에 종교를 이용할 수 없음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1992년의 개정 헌법은 종교 자유에 관해서 그 이전의 헌법 단계에서 보다는 더욱 폭넓은 이해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4)


종교에 관한 사전적 정의도 판이하게 달라져서 그 이전과 달리 이념적 색채를 멀리하고 종교에 관련된 항목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때문에 설사 이같은 변화가 단지 부분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대변하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5)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직접 선교적 측면에서 대두된 대북교류 5개항 제의는 점차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그 가능성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대북교류 5개항 제의의 실현을 위해 북한선교 역량을 총집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한의 종교세력도 그 속성이 어떠냐 하는것보다 우선 그 활용 가치가 어느 정도이냐를 따져보게 될것이므로 교회내 재계 인사들의 남북진출 등 보다 적극적인 대안의 모색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6)


또한 우리는 북한사회 안에 비밀 집단으로서 숨어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지하교회’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또 확인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북한선교의 당위성을 부여하며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북한선교를 멈추어서는 않된다는 책임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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