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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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교회는 그 동안 복음을 전해 준 수많은 선교사들과 특히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아시아 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해 모든 이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공동참여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스스로 지난날의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의 잘못과 분열을 회개하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아시아 민족들과 갖는 종교와 문화의 교류를 요구할 것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봉사, 죄와 불의, 온갖 압제와 착취에 맞서 치유자셨던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고자 한다.


교회는 과거를 기억하며 아시아의 가톨릭 선교역사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곧 타종교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태도, 새로운 방법, 새로운 선교의 길이 될 수 있다. 경쟁심이나 이기심이 아닌 아시아 모든 민족과 이루는 친교와 화합의 정신에서 복음선교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교회를 통해 아시아 민족들이 그분을 보고 믿을 수 있게 되며 그분의 사랑, 용서, 은총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1. 의식의 전환 – 희망의 표지에 관심을 갖자.


아시아 교회가 유럽교회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자.


아시아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 복음을 선포하고 고통받고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 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신자공동체를 하나로 모으신 곳이다. 복음화의 역사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것이다.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루살렘에서 형성되어 안티오키아로 퍼져 나갔다. 그때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서양과 동양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초기 공의회 중 몇 번은 아시아에서 열렸다.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 중 몇 분은 아시아인이다. 초기의 전례 전통과 그갈래, 총대주교좌의 대부분은 아시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아시아 교회는 사도직이 시작된 곳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아시아 지역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아직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의 표지들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아시아 대륙은 오래되었지만 인구의 60% 이상이 젊은이들로 구성된 젊은 대륙이다. 신세대 숙련 노동자들, 과학자들, 기술자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오랜 역사전 전통에서 일반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공통유산들 식민지 체험이나 공자와 같은 성현들의 가르침, 경제적 상호관심의 증가는 ‘아시아 인’이라는 연대의식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남아시아 지역회의(SARC) 같은 협력단체들이 생겨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려는 민중의 자각이 증가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 일수록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희망적인 표지들을 찾아내고 격려하여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항상 유럽교회, 로마교회가 최고고  아시아 지역교회는 상대적으로 약한 교회라는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선교대상 교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교회라는 약자의 입장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사도직이 시작된 지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사적 전통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결코 아사아 교회가 유럽교회에 뒤지지 않는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2. 선교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목자들은 평신도들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고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여러 가지 급변하는 사회 안에서 좀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평신도 선교사 양성을 위한프로그램과 제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평신도사도직 협의회의 고유한 위치와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평신도들이 스스로 선교의 주역임을 인식하도록 사목자들이 배려해야 한다.




3. 올바른 마리아 신심을 통해 어머니의 모성을 갖자.


구원을 베푸는 자로서의 교회의 권위적인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교회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는 마리아의 따뜻한 모성애를 가지고 신자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중에도 마리아 신심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학문적으로 따지고 들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마리아의 모성애를 느끼는 올바른 신심을 갖는 것은 선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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