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의사적 전개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참회의 형태는 상당히 다양하다. 거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공식적인 참회 예식 외에도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훈계와 경고, 갈라진 당파의 합치, 성찬례 전에 이루어지는 공동의 죄 고백, 개별적인 용서, 참회하는 이의 기도, 공동체의 중재 기도, 단식, 자선, “온갖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 (잠언 10,12; 1 베드 4,8; 2 클레 16,4)등이 있다.
교의사적 고찰에서는 참회에 대한 역사 중에서 단지 한 부문만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 즉 스콜라 신학이래로 “참회의 성사”라고 일컫는 교회 공식적인 참회 형식이다. 이에 대한 역사는 상당히 복잡한데, 여기서는 단지 중요한 단계만을 보고자 한다. 가장 큰 변화는 고대교회에서 실천하였던 일생에 단 한번만 가능한 참회에서 중세 초기에 반복할 수 있는 참회 형태로 옮아간 것이다.
3.1. 일회적이고 공개적인 파문 방식
3.1.1. 참회 절차
고대교회는 마태 18,18과 1고린 5에 근거한 참회 방식을 실천하였다: 살인, 간음 혹은 배교의 중대한 죄를 범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성찬의 공동체에서 제외되는데, 그는 엄격한 참회 실천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기간을 갖은 다음에 장엄한 예식을 통해서 다시 교회에 받아 들여졌다.
참회 방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1) 파문: 참회자가 죄를 고백한 다음 주교는 그에게 보속을 부여한다. 전체 공동체가 참석한 공개적인 참회 예식에서 안수, 참회복 착복 그리고 성찬의 공동체에서의 제외를 표시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참회자의 신분이 된다. 공동체는 큰 슬픔을 표시하면서 이런 과정을 함께 한다. (2) 참회 기간: 통상적으로 몇년씩 지속되는 참회 기간동안 참회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보속을 완수해야 한다. 보속에 속하는 것으로는 예를 들어서 단식, 자선, 사회적 활동에 참여, 특별한 기도 실천과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적인 직무, 결혼, 그리고 자주 부부 관계의 포기(이는 그 당시에 널리 퍼진 성에 대한 두려움, 즉 성을 악의 세력이 침입하려는 문으로 간주하는 생각과 관계가 있다)가 보속으로 요구되었다. 교회 공동체의 삶에 참회자는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사에 참석은 하지만 성찬 예식이 시작되면 자리를 떠나거나, 참회자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로 가야만 했다. 공동체는 그들의 참회 노력을 중재의 기도로서 지원하였다. (3) 화해: 참회의 기간 마지막에 참회자들은 장엄한 공동체 전례를 통해서 (보통은 성 목요일에) 다시 성찬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 화해의 예절은 영성체 예식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한번 참회자였던 사람에게 부여된 금령들은 일생동안 지속되는데,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진 다음에도 “이등급 신자”로 머물게 된다.
이런 방식 때문에 고대교회의 참회는 파문 방식의 참회라고 일컫는다. 이 참회는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후기의 참회 형태와 구분되는 가장 뚜렷한 표시는 일회성에 있다: 이런 방식의 참회는 일생에 단 한번만 허락된다. 누가 이런 참회 이후에 다시 중한 죄를 범하면, 그를 위해서는 단지 하느님의 자비에 그를 맡기는 공동체의 중재 기도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하면 보통 그에게 노자성체가 허락되었다.
3.1.2. 신학적인 요점들
고대교회의 참회신학은 참회 형태에서 잘 드러난다. 두가지 요소가 죄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한다. 즉 참회자 개인의 노력인 보속과 공동체와의 화해이다.
보속은 죄의 중대함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너무 가벼운 보속이나 참회 기간의 단축은 참회자를 도와주지 못하고, 그에게서 구원에 필요한 과정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방교회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주로 치유적인 관점에서 생각했는데, 즉 보속은 병자에게서 치유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처럼 참회자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서방교회의 신학은 법률적으로 생각했다. 즉 참회자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보속은 행해져야하고, 죄지은 것은 보상되야 한다.
두번째의 요소는 공동체이다. 3세기 초부터 교회 직무자, 즉 주교에서 사죄권이 유보되었으나(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 3장 참조), 공동체도 능동적으로 참회 예식에 참여하였다. 공동체는 참회자의 노력을 지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회자를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과의 화해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성사적 행동이다: 교회 공동체와 다시 화해함(pax cum ecclesia)으로써 참회자는 다시 하느님과의 평화(pax cum Deo)를 이룬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공동체와 일치를 이루고 계시고, 그래서 죄인의 용서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하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