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1. 말씀읽기: 루카 11,1-4
주님의 기도 (마태 6,9-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어느날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여쭈었다.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 베드로의 목을 두 손으로 잡고서 가만히 계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숨이 막혀서 소리쳤다. “주..님! 숨 막혀…죽겠..습니다…”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목을 잡았던 손을 푸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이곳이 기도니라…”“그래 이번에는 식도를 가르쳐 줄까?”…(역시 대단한 유머입니다….썰렁)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그 기도를 바쳤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참 좋은 기도입니다. 대체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떨어져 산 위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가르쳐 주신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 하느님을 이렇게 부르셨으며, 제자들 또한 하느님을 이렇게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전입니다. 그리고 이 아버지라는 호칭은 구원의 때의 특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를 아들로 삼아 기름진 땅을 주고 싶었다. 뭇 민족 가운데서도 너에게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주고 싶었다. 나를 아비라 부르며 행여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예레미야3,19)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 직후에 제자들이 드린 청은, 아마도 베다니아 부근에서 있었던 일 인 것 같습니다. 어느 전승은 올리브산 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스승들은 흔히 제자들에게 기도의 어떤 예문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요한도 그런 가르침을 모방한 셈인데 어떤 예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이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기도의 첫째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시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그저 바람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착한 행실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하도록 이끌어 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셔야 합니다. 이 청원의 형태는 기도하는 사람의 신원보다 하느님의 활동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청원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이 영원무궁토록 거룩하게 여겨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친히 계시하신 것처럼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당신 구원 활동에서의 하느님,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계시하시고 당신이 완전히 다르신 분임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23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에제키엘 36,23)
그렇다면 내가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모욕을 드리지 않았는지도…
내가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표양을 보이고 있습니까? “저 사람은 참 멋진 신앙인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당 다니는 사람이 뭐 저래!”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신앙인은 신앙인 다워야 합니다. 조금 양보할 수 도 있고, 먼저 인사할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고, 남의 말 안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 행동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내 행동이 “가문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 달라는 청원의 준비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의 지고(至高)의 다스리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최고의 주권을 단언하시면 사탄이 쓰러지고 구원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언자들과 왕들이 간절하게 고대했던 일들을 제자들이 보았기에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0,23-24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시대는 구원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시대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였고, 아직도 도래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는 일들은 예수님의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구원사 과정의 특정한 순간에서 드러난 구원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에게서 계시된 영광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나라가 더욱 힘차게 도래하도록 기도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염원하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염원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마라나 타!”(주님! 어서 오소서)“(1코린 16,22)
이미 드러난 구원의 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제자들은 여전히 불행과 죄악과 유혹에 시달립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구원의 때가 종국적으로 시작되면 모든 재난은 끝나게될 것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주님의 기도 후반부의 청원 또한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휴대폰이 터지는 곳을 우리 나라 광고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미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당신은 하느님 나라의 시민입니까?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세 번째 청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입니다. 여기서 양식이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양식을 얻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청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의 최고왕권을 인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과 사랑과 자비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빵을 주십니다. 참된 제자든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에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이기적이거나 편협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양식은 매일 필요로 하는 양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필요한 것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큰 것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아주 작은,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은 해가 지면 시작되고 내일 해가 지면 마무리 되는 시간인데, 저녁에 이 기도를 바치는 것은 내일 아침도 오늘이니 “내일 아침 꺼리 때문에 잠 못 드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소박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마른 빵 한 조각을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나이 드신 수도자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엄청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 그 모습이 신앙인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네 번째 청은 죄의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이웃의 잘못을 용서한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내가 지은 죄를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즉 나의 용서가 먼저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는 용서 받기 원하면서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난 것을 늘 받고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받은 것은 모두 잊어 먹고, 필요한 것만 기억하고, 내 기분 상한 것만 기억합니다. 그래서는 용서가 안 되고, 그래서는 화해가 안 됩니다. 참으로 어리석음입니다. 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잘못”이란 구약 성서나 탈무드의 표현법에 따르면 “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을 상대로 하지 않는 루카는 “잘못”이라고 쓰지 않고 “죄”라고 바꿔 쓰고 있습니다.
죄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법률과 완전성에 대한 “결여”와 “부채-빚”을 의미합니다. 이 빚은 우리가 자본과 이자를 이용하여 얻어야 할 하느님이 영광의 “결여”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여러 번 나오듯이, 우리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불할 수 없으나 채권자에게 애걸하여 면제를 받는다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의 채권자는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떤가에 따라서 완전히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부채를 용서하였느냐, 용서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18,23-35)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드리는 신자는 형제의 부채가 많던 적던 상관없이 용서할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부채도 용서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이 기도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시다(야고1,13). 성서에 나오는 유혹이라는 말은 덕을 행하기 위하여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기회, 곧 시련을 뜻하지 악으로 유인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시련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이겨낸 공덕도 크게 됩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도 이런 의미를 지닌 유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하느님! 열심한 유다인들은 유혹을 당당히 이겨내서 공로를 쌓아 당신께 칭찬을 받게 되지만 저는 유혹이 다가오면 백발 백중 넘어집니다. 저에게는 공로 쌓을 기회를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입니다.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말은 악마가 나를 가지고 좌지우지 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악마와 싸워 당당히 승리할 힘이 없는 나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다가오면 나는 백발 백중 넘어갑니다. 잘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합니다. 그 유혹에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를 하게 되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기에 좀더 합당한 자 되고,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을 빛나게 할 수 있으며, 나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나는 감사하게 되고, 기도하는 나는 용서할 수 있고, 기도하는 나는 악의 유혹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이렇게 바쳤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면서 사람들을 편 가르지 말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기도하면서 네 행동으로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마라.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기도하면서 형제자매들의 평화를 깨지 말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너 자신과 네 가정만 생각하지 마라.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며 남에게 베풀기에 인색하지 말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기도하면서 네가 네 형제에게 해 준 것만을 생각하지 말고,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면서 너도 자비를 청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면서 형제 자매를 죄짓게 하지 말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악행을 되풀이 하지 말라.
“아멘”이라고 응답할 때는 네가 이 모든 것을 동의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3. 나눔 및 묵상
1. 그동안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바쳤습니까?
2. 앞으로는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바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