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라] Epistolae ad Corinthios [영] Epistles to the Corinthians

사도 바울로는 2차 전도여행(50~52년경)중에 그리스로 건너가서 적어도 네 교회를 설립하였다. 우선 그리스 북부지역 마케도니아에 필립비교회, 데살로니카교회, 베레아 교회를 차례로 설립한 다음 남부지역 아카이아로 옮겨가서 고린토 교회를 세웠다, 바울로는 1년 반동안 거기 머무르면서 매우 활발히 전도하였다(사도 18:11). 신도들 대부분은 이방인들로서 입교한 사람들이었고 일부는 유태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신도들 가운데 상류계층에 속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못배우고 못난 사람들이었다(1고린 1:26-28).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를 세워 놓고 떠난 다음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계 그리스도인 아폴로가 고린토 교회에 와서 활약하였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 수사학을 익힌 달변가였던 까닭에 개종한 다음에 당대 교회에서 설교 잘하기로 소문났다(사도 18:24-19).

바울로는 3차 전도여행(53~58년경)중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 에페소에 27개월 가까이 머무르면서(사도 19:8-10) 고린토 교회로 세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서간 ABC라 함] 그 가운데서 A와 C는 분실되고 오직 B(고린토인 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만 전해온다. 그리고 에페소를 떠나 그리스 북부지역인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또 한편의 편지를 써 보냈으니, 곧 현존하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가 그것이다.

1.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이제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집필하게 된 동기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할 차례이다.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한창 전교하고 있을때 고린토 교회에서 여러 가지 불상사가 있었다,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고린토로부터 에페소에 와서 이런 일들을 전하였다(1:11). ‘클로에’가 누군인지 그 신원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고린토교회에 속한 유력한 여교우임에 틀림없다. 그런가 하면 고린토 교우들도 질문서를 작성하고 심부름꾼들을 시켜 바울로에게 보냈다(7:1, 16:17). 바울로는 인편과 서면으로 걱정스러운 소식들을 접하고 편지를 써 보냈으니 그것이 곧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이다. 바울로는 이 서간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부활하신 예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고린토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 우리는 이 서간에서 당대 한 지역 교회의 생생한 현상과 그 지역 교회를 보살피는 사도의 의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울로가 이 서간에서 다룬 문제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고린토 교회는 네 당파로 분열되었다(1:12-17). 교우들 증에는 ‘아버지의 처’와 증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교우들은 그를 바로 잡아 주지 않았다(5:1-13). 교우들끼리 제단문제로 법정에 고소하는 수도 있었다(6:1-11).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삼아 사창가를 출입하는 신도들도 있었다(6:12-20). 7장에서는 결혼 · 이혼 · 독신 등 성윤리를 자세히 다루는데, 바울로는 결혼을 신성시하여 결혼한 이들은 충실히 부부 생활을 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부부 가운데 한쪽은 신자이고 한쪽은 비신자인 경우에도 되도록 결혼생활을 지속하되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신자편에서 동의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독신 그 자체는 값진 것이지만 욕정에 달아오르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7:9). 또 다른 문제로는 당시 지중해 고린토 도살장에서는 우사 앞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에만 짐승을 잡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교우들 가운데서 약한 심성을 지닌 이들은 이전 고기를 귀신 씌인 것이라하여 먹지 않았다. 반대로 강한 양심을 지닌 이들은 귀신 따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만물은 주님이 지어 내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닌 까닭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기를 먹었다. 바울로는 원칙적으로 강한 양심을 지닌 이들의 편을 든다. 그러나 두 부류의 신도들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에는 강심장을 소유한 이들을 고려하여, 그런 고기를 차려서도 안 되고 먹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8:1-11:1). 11:2-14:40에서는 주로 공동체 모임을 다루는데, 특히 11:17-34에서는 저녁 미사 때에 야기된 비행을 다룬다. 1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주장한다.

2.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집필 · 발송한 다음에 고린토에 거짓 전도사들이 와서 바울로의 사도직 권위를 부인하였다. 바울로는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하고 고린토 교회를 찾아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신도들은 바울로의 적수들에게 동조하였고 어떤 무례한은 바울로에게 심한 모욕을 가하였다(2:5-11,7:12). 바울로는 한없는 슬픔을 안고 에페소로 돌아와서 ‘번민과 불안한 마음으로 울면서’ 한 통의 서간을 발송했는데, 이것이 고린토 교회로 보낸 세 번째 서간이요 일명 눈물의 서간이다(2:4). 바울로는 디도를 고린토로 보내 어 눈물의 서간을 전하고 고린토 신도들의 명성을 촉구하게 하였다. 그 사이 바울로는 소아시아지방의 수도 에페소를 떠나 그리스 북부지방인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디도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마침내 디도를 만나 좋은 소식을 들었다. 고린토 신도들 대부분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울로와 화해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7:6-16). 바울로는 기쁜 소식에 대한 답신으로 57년경 네 번째 서간, 즉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 서간의 내용은 크게 봐서 세 가지로 대별된다. 우선 자신의 사도직분에 관해서 언급하고(1-7장), 이어서 바울로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도들을 위해서 전개해 온 모금 운동에 고린토 신도들도 동참하라고 호소하며(8-9장) 마지막으로 자기의 사도직분을 부인하는 적수들과 일대 논전을 벌이면서 자신이 한평생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고전했는지 서술한다(11-13장). 우리도 이 서간에서 바울로 자신이 사도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아 볼 수있다. 또한 그가 다른 서간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전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자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것과는 대조적으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만은 자기 이야기를 비교적 많이 하는 까닭에 우리는 바울로의 생애에 관한 정보를 꽤 많이 얻을 수 있다. (鄭良謨)

[참고문헌] K.H. 쉘클레,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 콘첼만 著, 안병무 · 김철선 · 박창환 譯, 신약성서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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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넬리오 [라] Cornelius

Cornelius(?~253). 성인. 교황. 순교자. 재위기간 251~253년. 전임자 성 파피아노의 사후 14개월에 걸친 교황 공위(空位) 시대를 거쳐 251년 4월 교황에 선출, 이 때문에 노바시아노(Novatianus)파의 이교(離敎)가 발생하게 되었다.박해에 못견디어 배교(背敎)한 사람들에 대한 성 고르넬리오의 비교적 관대한 속죄(贖罪) 제도는 대립 교황 노바시아노 일파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입장은 로마 및 카르타고의 회의(251~252년)에서 지지를 받았다. 또한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Cyprianus)에 의해서도 지원을 받았으며, 그 왕복서한이 남아있다. 황제 갈루스(Gallus, 205?~253?)에 의해 추방되어 로마 부근에서 순교하였다. 축일은 9월 16일인데 치프리아노 성인과 같이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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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치명사략 [한] 高麗致命事略

중국인 심용제(沈容濟) 신부가 한문으로 저술한 조선 천주교 관계 서적. 크기는 12.7㎝×20.6㎝, 부피는 111장(張). 1900년 중국 상해에서 활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총 23장(章)에 걸쳐 조선 천주교회의 기원, 박해, 순교사실, 유 · 불교의 폐해에 대한 비판 등을 다루고 있는데 조선 천주교회의 기원에 대한 설명 가운데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입교한 뒤 순교한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중 ‘有二高麗王族李氏子 聖儒立亞被倭將'(줄리아라는 고려왕족 이씨 여자가 왜장에게 붙잡혔다)이라는, 오따 줄리아에 대한 서술은, 최초로 오따 줄리아의 출신 성분과 성(姓)을 밝혀 주고 있어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현재 이 책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절두산 순교자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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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주증 [한] 高麗主證

조선 천주교회의 인물전(人物傳). 중국인 신부 은정형(殷 正衡)이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에서 인물들에 관한 기록을 추려 한역(韓譯)한 것으로 1879년 10월 5책으로 필사되었고, 1900년 중경(重慶)에서 5권 2책의 활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조선 교회 창설 직후부터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까지 활동했거나 순교한 327명의 약전(略傳)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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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티 [원] Goretti, Maria

Goretti, Maria(1890~1902). 동정 순교자, 성녀. 축일은 7월 6일. 이탈리아의 안코나(Ancona) 근교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나 무학(無學)으로 가사를 돌보며 1902년 5월 영세 입교하였다. 흔쾌한 이타심과 종교적인 성품으로 이웃 청년의 끈질긴 유혹을 거절, 빈집에 칼을 들고 들어온 폭한에게 끝내 강간을 허용하지 않고 반항하다가, 무참히 살해되었다. 1947년 시복되고 이어 1950년 시성되었다. 살해자가 27년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였을 때 그는 이미 회개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리아 고레티의 덕분으로 여겨졌다. 그는 1937년 크리스마스 때 성녀의 어머니와 영성체하였는데 그와 성녀 고레티는 사형 폐지론자에 의해 즐겨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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