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출판사 [한] ~出版社 [관련] 성서활판소

경성구 천주교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일본 나가사끼(長崎)에 설치한 성서활판소(聖書活版所)를 1866년 한불조약(韓佛條約) 이후 서울 정동(貞洞, 현 이화여중 앞)으로 이전한 것이 오늘의 가톨릭출판사이다. 당시 책임자로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Coste, 高宣善)신부이며, 초창기에는 주로 당시 교회에서 읽혀지던 필사본 · 목판본 등의 서적들을 활판본으로 다시 간행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 곳에서 발행된 초기의 간행물로는 《치명일기》(致命日記), 《성경직해》(聖經直解), 《천주성교공과》(天主敎聖敎功課) 등이 있다. 이 당시의 한글 활자는, 평신도인 최지혁(崔智爀)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1898년에 명동성당이 준공되자 그 구내로 옮겨 운영하였고, 주요 간행물로는 아래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 경향신문 : 1906년 10월 주간지로 부록 <보감>(寶鑑)과 함께 창간되었다가 1910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간되었다. △ 경향잡지 : 1901년 <경향신문>이 폐간되자 부록 <보감>을 확장하고 <경향신문>의 전통을 이어 받아 <경향잡지>로 제호를 바꿔 발행하였다. 그 후 출판사의 명칭도 주로 경향잡지사로 불려왔으며, 여기에서는 <경향잡지> 이외에도 각종 전례서, 기도서, 신심서 등을 계속 간행하였다. <경향잡지>는 1959년 7월 통권 1096호 7월호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그 발행권을 이양하였다. △ 가톨릭청년 :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로서 1933년 6월에 창간되어 사회와 문단에 많은 공헌을 하다가 1971년 9월 그 제호를 <창조>로 바꿔 발행하였다. △ 창조 : <가톨릭청년>에서 <창조>로 제호가 바뀌면서 가톨릭 정신을 통한 사회 속의 잡지언론 기능을 지향하다가 1972년 11월 휴간되었다. △ 소년 : 1960년 1월 아동문학지로서 월간 <가톨릭소년>을 창간하여 발행하다가 1972년 4월부터 <소년>으로 제호를 바꿨다.

1958년 11월 16일 가톨릭출판사란 이름으로 등록을 마친 뒤 1979년 8월 27일 현재 중림동본당 내 새 사옥으로 이전하였다. 인쇄부를 포함한 5개 부서에서는 <소년>, <새벽> 등 정기간행물 이외에 <서울주보> 및 각종 단행본을 제작, 발간하고 있다. (⇒) 성서활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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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청소년교육원 [한] ~靑少年敎育院 [관련] 가톨릭회관

⇒ 가톨릭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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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청년회 [한] ~靑年會 [영] Catholic Youth Association

가톨릭 청년신자들로써 조직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 주로 일반 청년신자들로써 구성되어 신앙의 성숙, 사목활동의 지원 및 대 사회선교와 봉사를 목적으로 교회 안팎에서 신심 · 전례 · 교육 · 선교 · 봉사활동 등을 수행한다.

한국에 가톨릭청년회가 생겨난 것은 이미 1900년대의 일로서, 특히 1922년 교황 비오 11세가 회칙 에서 가톨릭운동(Catholic Action)을 제창한 데 자극을 받아 국재는 물론 간도지방에서까지 조직과 활동이 활발하였다. 1922년 서울교구에서는 종현청년회를 비롯한 각 본당 청년회를 통일하여 ‘경성구 천주교청년회연합회’를 결성하였고, 1924년 대구에서는 ‘남방천주공교청년회’를 창립하여 각 지방교회에 지회(支會)를 설치하였다. ‘남방천주공교청년회’는 교육사업으로서 해성여자학원을 운영하는 한편 1927년 4월 기관지로서 오늘날 <가톨릭신문>의 전신(前身)인 월간 <천주교회보>를 창간, 교회 안팎의 소식과 신앙 및 교양을 위한 기사만이 아니라 사설 등을 통해 가톨릭 청년운동을 제창하고 역설하였다.

또한 ‘경성구 천주교청년회연합회’는 당시 교회가 인수한 남대문상업학교의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1927년 7월 서울에서 월간지 <별>을 창간, 1933년 4월 <천주교회보>와 함께 잡지 <가톨릭청년>의 발간을 위해서 폐간될 때까지 발행하였다. 이 두 단체는 신문발행 외에도 강연회 · 미술전람회 · 연극 공연 · 체육대회 · 야학 운영과 함께 이재민 구호사업 등에도 힘을 기울였다. 특히 ‘경성구 천주교청년회연합회’는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조선천주공교회 약사》를 발행하는 한편 의료기관의 설립을 발의하여 1936년 서울에 성모병원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1933년 3월 조선 주교단은 ‘가톨릭 진행’에 대한 교서를 발표, 각 교구마다 가톨릭진행회를 설치하고 모든 신자들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은 1934년 8월 교구 가톨릭운동연맹을 결성한 평양 교구로서 이미 ‘평양천주공교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강연회 · 야학 운영 · 연극 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각 본당은 물론 교구 차원의 연합체로서 활발히 전개되던 가톨릭청년회의 활동은 1940년대에 이르러 일제의 탄압으로 다소 침체되었으나 1945년 8.15광복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46년 7월 서울교구 청년회연합회가 해방 후 첫 정기총회를 개최하였고, 8월에는 여자 청년연합회가 결성되어 1948년 10월 남 · 여 청년연합회 공동주최로 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대구에서도 1933년 이래 활동이 거의 정지된 ‘남방천주공교청년회’의 뒤를 이어 1946년 5월 대구시내 5개 본당청년회를 연합하여 ‘대구가톨릭청년회’를 결성, 경향신문 지사(支社)의 운영, 연합 체육대회 개최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1948년 9월 ‘대구교구가톨릭청년회연합회’가 결성됨으로써 이에 흡수되었다. 새로 출범한 대구교구의 연합회는 1949년 4월 <천주교회보>를 복간하고 대건출판사라는 인쇄소까지 운영하여 오다가 6.25동란과 재정난까지 겹쳐 1951년 5월 교구당국에 경영권을 인계하였다. 가톨릭 청년운동의 지도적 기구이던 서울과 대구의 두 청년연합회는 <천주교회보.를 통하여 전국 ‘가톨릭청년회연합회’의 결성을 제창하고 꾸준히 추진해왔으나 1949년 주교단의 뜻에 의하여 1949년 8월 ‘대한천주교총연맹’이 결성됨에 따라 무산(霧散)되었다. 6.25동란으로 교회가 큰 타격과 피해를 입게 되자 일반 청년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합적 활동은 중단되었고, 대신에 1954년 ‘가톨릭학생회’가, 1958년에는 ‘가톨릭노동청년회’(J.O.C.)가 결성되어 가톨릭 청년운동을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하게 되었다. 반면에 일반 가톨릭청년회는 주로 본당 내에서 성가대, 주일학교 및 중고등부 교사,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서 신심 · 전례 · 교육 및 기타 봉사활동 등을 벌이는데 그치고 말았다.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를 표방하면서 1962년에 시작되어 1965년에 막을 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교회와 세계 안에서의 평신도들의 올바른 위치와 적극적인 역할을 재확인하고 강조하였다. 특히 공의회 직후 발표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는 조직적 사도직 행위와 조직체로서 가톨릭 운동을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전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1968년 7월 ‘한국 천주교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가 결성되었고 회원단체로서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와 ‘대한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가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 두 단체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한국 교회가 전개한 가톨릭 청년운동의 방향과 사명에 대하여 중요한 시사를 해 주기도 하였다. 한편 1971년 4월에는 전국 가톨릭농촌청년회 전국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었고, 다음해에는 J.O.C. 산하의 가톨릭농촌청년회(J.A.C.)가 한국 가톨릭농민회로 독립되어 가톨릭 청년운동이 본당, 학원 및 산업현장에서 농촌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70년대 말부터 각 본당 청년회는 다양하게 벌이고 있는 단체활동의 방향을 정립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본당 단위, 나아가서는 지구와 교구 차원의 연합회 결성을 위햐여 노력하기 시작하였?. 그리하여 1980년 9월 발족한 지 5년만에 교구로부터 정식 인준된 부산교구 청년연합회를 비롯하여 대전 · 수원 · 원주 · 인천교구 및 왜관대리구 등에 교구 청년연합회가 결성되어 제각기 다양하고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서울대교구에서는 1978년에 발족한 명동 천주교회 청년단체연합회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각 본당 및 지구 단위의 연합회가 결성되면서 청년미사 · 월례강좌 · 회보 발행 · 체육대회 및 하계 봉사 등을 통해서 가톨릭 청년운동을 위한 의식계발과 청년공동체의 형성 및 교구연합회 결성을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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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청년 [한] ~靑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결정에 의해 가톨릭청년사에서 발행한 가톨릭월간잡지. 1933년 3월 6일 서울, 대구, 원산, 평양, 연길(延吉)의 5개 교구장들은 정례 주교회의에서 주로 전교방침을 논의하는 가운데, 이제까지 각 교구별로 발행되고 있던 각종 출판물을 통제하기 위해 새로이 5교구 연합출판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이에 서울교구장 라리보(Larribeau, 元亨根)를 위원장으로 선출함과 동시에 대구교구에서 발행해 오던 <천주교회보>(天主敎會報)와 서울교구 청년회에서 발행해 오던 <별>을 동시에 폐간시키기로 결정하고 새로 지식청년을 상대로 한 <가톨릭청년>지를 발간키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같은 해 6월 10일에 국판(菊版)크기의 100여면에 달하는 창간호가 서울에서 발간되었는데, 이는 <경향잡지>와 더불어 한국 천주교회에서 공인했던 잡지였다. 당시 <가톨릭청년>은 그 내용과 체제에 있어서 일제(日帝)하의 대표적인 월간잡지의 하나로 손꼽히었다. 발행 및 편집인은 라리보 주교였으나 편집실무는 주로 정지용(鄭芝溶)이 담당하였고 주간은 윤형중(尹亨重) 신부였다. <가톨릭청년>은 창간사에서, “가톨릭 정신은 사랑과 광명과 평화의 정신이니, 사랑은 천주와 교회와 사회를 사랑함이요, 광명은 영원한 진리와 지식과 의무를 밝힘이요, 평화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화목함이니, 이같은 가톨릭 정신을 뿌리기 위해 새 것을 발간케 되었다”고 밝히고 있듯이, 그 편집내용은 한국 천주교의 어제와 오늘을 찾고 내일을 밝히는 종교적 신학적 제문제를 다룬 논설을 주종으로 하여 종교잡지로서의 면목이 뚜렷하였다. 또한 근대 조선사회가 당면한 제반 과제에 대한 각종 논문과, 시(詩) · 소설(小說) · 수필(隨筆) 등 수준 높은 문예작품을 다수 수록하여 격조 높은 종합 교양잡지로서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월간지로 발전하였다.

권두언(卷頭言)은 5교구장과 황해 및 전라도의 두 감목대리가 교대로 집필하였고, 장발(張勃), 이병현 화백이 표지의 그림을 담당하고, 이병기(李秉岐), 허보(許保), 장서언(張瑞彦), 정지용, 이상(李箱), 김기림(金起林), 유치환(柳致環), 이효상(李孝詳)등 당대의 쟁쟁한 문인들의 시와, 오기선, 오기순, 강석현, 최민순, 이동구, 정지용 등의 수준높은 창작소설을 게재하여 가톨릭 문학의 제창을 통해 한국문화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더욱이 1934년 11월에 발간된 제2권 11호부터는 국한문(國漢文) 혼용의 편집체제를 한글 전용으로 전환함으로써 한글 보급에 앞장섬과 동시에 한국 가톨릭문화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공헌하였다. 그러므로 민족문화 말살을 강요해 온 일제의 강압에 의해 1936년 12월 제4권 12호 즉 통권 제43호를 마지막으로 자진폐간되었다.

광복후 1947년 4월에 제5권 제1호로 복간되었으나, 6.25로 다시 휴간되었다가 1955년 1월부터 속간되었다. 그뒤 1971년 9월부터는 제호(題號)를 <창조>(創造)로 개제(改題)하여 월간종합지로 간행되었다. 그뒤 <창조>는 필화사건으로 인하여 1972년 11월 무기휴간 되었다. 이 <가톨릭청년>은 근대 한국문학사 연구와 가톨릭 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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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지성인단체연합회 [한] ~知性人團體聯合會

가톨릭의 이념에 따라 사회정의를 실천하고 전문분야별 활동을 통하여 사회를 그리스도교화한다는 목적으로 1967년 4월 2일 발족되었다. 이 단체의 필요성은 이미 1966년 말부터 청년사도회, 가톨릭법조인회, 가톨릭의사회, 가톨릭여학사회, 가톨릭교사회, 가톨릭의대학생회, 고려대 가톨릭학생회 등이 주축으로 제기한 바 있었고, 이 날 창립총회에서는 서울, 대구, 광주, 인천, 부산, 전주 등 교구의 18개 단체 40여명이 모여 회장에 유홍렬, 부회장에 김정진, 사무처장에 이인선 등의 임원을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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