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원] Uruguay

북쪽으로 브라질과 서쪽으로 아르헨티나, 남쪽으로 리오 플라타, 동쪽으로 대서양과 접경하고 있는 남미의 독립 공화국이다. 면적 17만 6,215㎢에 인구 약 295만명(1982년 현재)이다. 우루과이는 1516년 스페인 항해사 후안 디아즈 솔리스(Jean Diaz de Solis)가 발견하였다. 약 5,000∼6,000명에 달하는 소수의 인디언들은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스페인 당국자가 우루과이 지역을 목초지로 만들기 위해 가축 100두를 들여와 오늘날 우루과이가 대 목축국으로 발전한 기초가 되었다.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 이곳에 온 최초의 선교사들은 프란치스코회원 세 사람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구즈만(Fray Bernardino de Guzman)이 유명하다. 그는 산토 도밍고 데 소리아노(Santo Domingo de Soriano)를 최초로 부활한 사람으로, 우루과이의 전부족을 야만상태로부터 끌어내어 농업, 특히 수익성이 높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일에 종사케 함으로써 우루과이인들이 개방적이고 쾌활하며 사교적인 기질을 갖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자로 평가되고 있다. 가톨릭 신자수는 233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221개 의 본당을 거느리고 있다(1982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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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한] 右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좌우 두 명의 도둑이 있었는데, 그중 예수님의 오른쪽에서 못박혔던 도둑은 죽을 때 회개한 도둑이다. 이 회개한 도둑 즉 ‘착한’ 도둑을 ‘우도’라고 지칭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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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상타운동 [영] Una Sancta Movement [독] Una Sancta Bewegung [한] ∼運動

20세기초에 일어난 교회일치 운동. 우나 상타란 ‘하나의 거룩한 교회’를 의미하며, 이 운동은 흩어진 교회를 하나로 뭉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메츠게르(M.J. Metzger, 1887~1944)였다. 그는 마이팅건에다 ‘그리스도왕회’라는 수도회를 설립하여 운동의 구심체를 삼았다.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가 대두하면서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메츠게르는 1930년 우나 상타 형제회(Una Sancta Bruderschaft)를 조직하여 히틀러의 독재에 항거하는 새로운 생활형태를 만들어냈다. 교리일치와 평화를 위해 라는 회지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메츠게르는 마침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1944년). 1949년 이후에 우나 상타 운동은 주교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1952년 교황청은 이 운동을 담당할 비공식 기구인 ‘교회일치문제 가톨릭 협의회’를 설치하였고, 1960년 요한 23세는 ‘교리일치사무국’을 발족시켜 이 운동을 관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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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원] Uganda

동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면적 23만 6,036㎢에 인구 약 1,406만 명이며 가톨릭 신자수가 약 570만 명(1982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간다는 1894년부터 1962년까지 영국 주권의 영향 아래 있다가, 동년에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였다. 국민은 4개 종족, 36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언어도 다양하다. 1879년에 프랑스선교회 화이트 선교단(White Fathers)이 이 지역복음화에 착수하였으며, 2년 뒤에 영국 선교사들이 이곳에 건너왔다. 우간다 국민의 초기 개종자들은 신앙열이 대단하여 가톨릭이 급속한 속도로 전파되어 갔다. 드디어 1885∼1887년에 박해가 가해져 22명의 우간다인들이 순교하였으며, 이들은 1964년에 시성되었다. 1888년까지 가톨릭 신자는 8,500명이었으나 모슬렘 교도와 그리스도교도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고, 그 뒤 영국성공회와 프랑스 가톨릭 사이에 분쟁이 생겨 수년간 선교활동이 정체에 빠졌다. 1894년에 밀 힐 선교사들이(Mill Hill Missionaries) 동부 우간다를 맡고 베로나 선교단(Verona Fathers)이 북부를 맡았다.

1905년에 가톨릭 신자는 8만 6,000명에 이르렀으며 1923년에는 37만 5,000명에 달하였다. 요셉 키아누카(Joseph Kihanuka)는 현대 최초의 아프리카 주교가 되었다.

1953년에 루가바(Rugaba)를 유일한 수도 주교좌로 하여 교계제가 확립되었으며, 1982년 현재 대주교 1명, 16명의 주교, 929명의 사제가 있다. 그밖에 가톨릭에서 병원, 치료소, 나병요양소, 맹인학교, 직업훈련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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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한록 [한] 龍湖閑錄

1801년(순조 1년)부터 1884년(고종 21년)까지의 야사(野史). 저자(著者)는 불명으로, 전 23책에 국내 정치문제와 대외문제가 일기체로 기록되어 있다. 제1 · 2책에서는 1801년부터 1848년(헌종 14년)까지의 사건들이, 제3책부터 제23책까지는 1849년(헌종 15년)부터 1884년까지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1801년의 신유(辛酉)박해사건, 진주민란, 병자수호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한국 근대사와 관련된 많은 중요한 사건과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곳에 천주교회사(天主敎會史)와 관계있는 기록들이 산재해있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 때의 청(淸)에 보낸 진주문(陳奏文), 송환기(宋煥箕)의 상소문, 사학유생(四學儒生)의 상소문, 유원화(柳元和)의 상소문 등은 정부 측의 공식기록에서 삭제된 부분까지도 충실히 기록되어 있고 또 1847년 라피에르(Lapierre)가 조선에 왔을 때 이를 조사한 역관의 보고문 ‘대불란서국문정기’(大佛蘭西國問情記)와 천주교와 관련된 평안감사(平安監司)의 장계(狀啓), 강화군수(江華郡守)의 장계 등 지방관의 보고문도 싣고 있다. 이러한 일부 기록들은 1850년에 프랑스로 보내져 달레의 ≪조선교회사≫ 저술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부족한 교회사 연구자료를 보충해 주는 훌륭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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