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토독시 [라] Orthodoxia [독] Orthodoxie

오르토독시(Orthodoxy)란 말은 그리스어 ‘오르도스’(orthos, 올바른)와 독사(doxa, 의견)의 합성어로 ‘올바른 믿음’을 가리키며 비정통적인 이설(異說, heterodoxy)나 이단(異端, heresy)이 아닌 정통신앙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있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사도들에 의해 계승되어온 보편적인 가르침”을 가리킨다. 동방교회들을 에페소 공의회와 칼체돈 공의회를 인정하는 교회들이야말로 ‘성스럽고 보편적인 정통교회’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정통신앙을 보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계승자인 로마 주교와의 유대를 맺지 않고 있는 동방교회의 신앙이 정통신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베드로의 유일한 계승자인 로마 주교의 지도아래 있는 가톨릭 교회가 정통신앙을 보존하고 있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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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제네스 [라] Origenes

Origenes(185?∼254?).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며 주석가. 교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으며 202년의 박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주교 데메트리우스(Demetrius)와의 충돌로 피신한 교사 글레멘스(Clemens)대신에 알렉산드리아 교리신학파의 지도자로 지명되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영위하였다.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다. 또한 이교철학자와의 호교적 논쟁에 대처하기 위해 신플라톤주의와 이교문학을 공부하였다. 215년에 이어 230년 팔레스티나의 재방문 때 그 곳 주교들에 의해 서품받은 문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되어 231년 체사레아(Caesarea)에 정착, 그 곳에 유명한 학파를 형성하였다. 250년 데치우스(Decius)의 박해로 고문받았으며 끝내 사망하였다.

성서주석서로는 ≪핵사플라≫(Hexapla)가 유명하며 그 밖에 그의 성서주석은 구약의 거의 전부와 4복음서들을 망라하고 있다. 신학서는 ≪원리에 대하여≫(De Principiis)가 주목되며 금욕적 저서 ≪순교에의 권고≫와 ≪기도에 대하여≫가 고대에 널리 읽혔다. 마르치온설을 반대한 그의 교리는 완전히 초월적인 일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으나 철학적 사색은 가끔 매우 대담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정통성은 가톨릭 교회로부터 다소 의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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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제네스주의 [한] ~主義 [라] Origenismus [영] Origenism [독] Origenismus

넓은 의미에서의 오리제네스주의란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자 교부인 오리제네스와 그에게서 사상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주장한 학설(學說)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좀 더 엄밀하게 규정하자면 그 가운데서도 특히 논쟁이 재기되었던 영혼선재설(靈魂先在說), 썩을 운명에 있는 육신과 부활할 육신의 분리설, 삼위일체에 관한 종속주의적인 입장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에게서 영향을 받은 오리제네스가 확립하였으며, 그의 제자인 디오니시오(Dionysius), 테오그노스토스(Theognostos), 디디모(Didymus) 등에 의해 계승되었고,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그레고리오(Gregorius Nazianzenus), 바실리오(Basilius)를 비롯한 3∼4세기 신학자들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리제네스주의에 대한 반론은 3세기말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페트로스(Petros)와 올림포스의 메토디오스(Methodios) 등이 ‘영혼의 선재’와 “죽을 육신과 부활한 육신이 동일하지 않다”는 오리제네스의 설에 대해 공격하고 나섰고, 이에 대하여 체사레아의 팜필로스(Pamphilos)와 에우세비오(Eusebius)가 반박하면서 논쟁은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또한 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동일실체(同一實體, consubstantiality)에 관한 교리’가 확립되면서 오리제네스가 주장한 삼위일체설이 정통성이 논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럴 즈음 에피파니우스(Epiphanius)가 그의 저서 ≪전체이단통박서≫에서 오리제네스를 최대의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른바 제1차 오리제네스주의 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로(Theophilus)의 중재에 의해 양자가 화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루피노(Rufinus)가 예로니모(Hieronimus)를 오리제네스주의적 경향을 지닌 인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재연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400년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가 개최되었고, 이 회의는 오리제네스를 이단이라 선고하였다. 교황 아나스타시오 1세를 비롯한 동방의 많은 주교들이 이 결정에 동의하였고, 오리제네스주의자들이 콘스탄티노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에게 망명함으로써 논쟁은 끝났다.

오리제네스주의는 그 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6세기경에 예루살렘 부근의 사바스수도원을 중심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동로마제국의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메나스(Menas)를 중심으로 한 반(反)오리제네스파들은 오리제네스주의를 규탄하고 나섰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칙령 <메나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오리제네스주의자들을 탄압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하였다.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반오리제네스파의 주장을 반영하여 디두모스까지 이단으로 선고하였으며, 이에 찬성하지 않았던 아빌라의 알렉산데르(Alexander)를 추방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2차에 걸친 오리제네스주의 논쟁은 막을 내렸지만 오리제네스주의는 막시모(Maximus Confessor)를 비롯한 신학자들에게 계속 남아 있었다.

[참고문헌] K. Holl, Gesammelte Aufsatze, II, s. 310-35 / F. Die Kampf, Die origenistischen Streitigkeiten im sechsten Jahrhundert und das funfte allgemeine Konzil,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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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트르 [원] Aumaitre, Pierre

Aumaitre, Pierre(1837∼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한국성(姓)은 오(吳). 프랑스 앙굴램(Angouleme) 교구의 에젝(Aizecq)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62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 해 6월 14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이어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프랑스를 떠나 1863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수원(水原) 근방의 샘골[泉谷里]에서 조선어를 익히고 곧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가 전교하고 있던 충청도지방으로 내려가 전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위앵(Huin, 閔) 신부와 함께 자수, 3월 30일 충남 보령(保寧)의 갈매못(일명 고마수영)에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장주기(張周基), 황석두(黃錫斗) 등과 함께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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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디야서 [한] ~書 [라] Prophetia Abdiae [영] Book of Obadiah

‘오바디야의 현시’라는 짧은 서두로 시작되는 이 예언서는 문자 그대로 현시(顯示, vision)가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현시라는 용어는 이사 1장 1절과 나훔 1장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언자의 메시지, 즉 하느님의 계시를 뜻한다. 그리고 이 현시가 21절밖에 되지 않아 예언서 중에서도 가장 간결한 것이나 의외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예언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첫째 단락(1-14절)은 에돔에 관한 하나의 신탁, 아니면 보기에 따라 여럿으로 나눌 수 있는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단락의 의미는 15절 b에 제시된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15b-18절에서는 다시 시온에 자리 잡은 유다에 대해 언급하고, 19-21절에서는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 이웃 백성을 물리쳐 변방을 넓히고 보편적인 야훼의 왕권을 수립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이 예언자가 조리 있고 문학적 단일성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처벌받은 에돔이라는 테마가 예언서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Van Hoonacker, Gelin, Weiser, Bic).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상기 단일성을 부인하고 신탁들이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예로 로빈슨(Robinson)은 이 예언서가 여덟 가지의 독립된 신탁(1-4, 5, 6, 7, 8-11, 12-15, 16-18, 19-21)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가 하면, 포레르(G. Fohrer)는 다섯 가지 신탁(1-4, 5-7, 8-11, 12-14 및 15b, 15a 및 16-18)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이 예언서를 크게 양분(1-14절 및 15절a와 15절b 및 16-21절로)하자는 의견이다. 여기서 19-21절을 별도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이유는 이 구절이 산문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전체 문맥과는 상이한 테마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바디야서는 적어도 두세 명의 저자가 참여한 공저(共著)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J. Trinquet, M. Delcor, C. Keller, W. Rudolph).

이 예언서의 첫째 부분, 특히 10-11절(에제 25:13-15 · 35, 시편 137:7 참조)에서는 586년의 예루살렘 함락의 비극을 기화로 유대를 약탈한 에돔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에돔의 반역행위가 상세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저자는 에돔인들이 유다를 침략할 때 그곳에 잔존했던 유태인으로 추정된다. 오바디야서 1장 15절과 예레미야서 49장 7-22절이 문학적으로 유사한 점에서 오바디야서가 예레미야서의 상기 구절보다 시대적으로 앞서리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므로 이 첫 부분의 집필연대가 유배기간 중이거나 아니면 유배 직후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연대가 기원전 500년 이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둘째 부분(15절b와 16-18절)에서는 모든 민족에게 다가올 ‘야훼의 날’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민족 중에는 ‘에사오의 집’ 즉 에돔도 끼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종말론적인 성격이 깔려 있다. 그리고 에돔은 선택된 백성을 핍박하는 이교 나라들의 상징처럼 묘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부분의 인상은 이사 34-35장(이사야의 소묵시록)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 부분의 집필연대는 에돔의 멸망을 보도하는 말라기서(말라 1:2-5)보다 앞서고 있다. 그러므로 기원전 500∼460년 사이로 잡을 수 있겠다. 한편 19-21절은 제2 즈가리야의 신학적 주제들을 예고하고 있으니 세력 확장을 위한 침범(즈가 9:1-8), 길르앗의 점령(즈가 10:10), 구원의 승리(즈가 9:9), 야훼의 절대적 왕권(즈가 14:9) 등을 들 수 있다.

끝으로 이 예언서의 첫 부분은 배신한 에돔에 대한 증오로 불타오르고 있다. 아마도 유대가 형제국인 에돔으로부터 배신당했기 때문에 그 증오의 농도가 더 짙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상처도 채 가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처벌을 내리겠다는 위협언사(威脅言辭) 속에는 만백성의 주인인 하느님의 엄격한 정의가 스며 있다. 한 마디로 오바디야서는 대단히 짧기 때문에 그 속의 메시지를 논하려면 면밀주도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하느님의 정의, 교만한 자의 굴욕, 시온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 하느님의 당신의 ‘날’(yom)에 펼 절대적인 왕권 등에서는 예언자로서의 자기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徐仁錫)

[참고문헌] C.A. Keller, Joel, Abdias, Jonas(Commentaire de l’Ancien Testament, XIa), Neuchatel 1967 / W. Rudolph, Joel, Amos. Obadia, Jona, KAT, XIII/2, Gutersloh 1971 / M. Bic, Zur Problematik des Buches Obadjah, VT, Suppl. 1, pp.11-25, 1953 / G. Fohrer, Die Spruche Obadjas, Studia Biblica et Semitica(Festschrift Th. Ch. Vriezen), pp.81-93, Wageningen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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