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죽음의 슬픔을 노래한 책이다. 히브리어 성서는 애가(哀歌)의 이름을 ‘어떻게’(’eykah, quomodo, 1:1, 2:1, 4:1 참조)라고 부른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아이고 어떻게 된 일이요, 그대가 죽다니” 하고 통곡하는 사람의 첫말을 본 따 지은 서명(書名)이다. 그리스 말 역본(70인역)은 이 책을 Threnoi, 곧 ‘비가’(悲歌)라 불렀고, 또 성서의 라틴어 불가타 역본은 ‘슬픔의 예언자 예레미야에 따른 비가들’(Lamentationes Jeremiae prophetae)이라고 불렀다. 유태인들은 바빌론의 정복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성전을 파괴한 사건(기원전 587~586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식하면서 애가를 노래하였다. 그들은 아직도 매 금요일 예루살렘의 폐허를 슬퍼하며 ‘통곡의 벽’ 앞에서 애가를 부르면서 울고 있다. 도대체 누가 또 언제 이 유명한 애가를 지었을까? 다섯 개의 노래로 구성된 이 슬픔의 애가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라는 역사의 사실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1:1-4의 본문은 사막처럼 폐허가 된 예루살렘 도성과 모든 예배가 중단된 성전의 파괴를 상기시키고 있다. 1:19는 도성이 포위공략 되었을 때의 기근을 말한다. 2:7는 적군이 침략하여 파괴한 성전과 왕궁을 지적하고, 2:9은 허물어진 성문과 유형지로 떠난 왕과 관리들을 지시하고 있다. 2:15은 예루살렘의 파괴를 빈정거리는 자들을 말하고, 또 4:17은 동맹국 이집트의 배반을 상기하고 있으며, 또 4:19은 피난자들의 화급한 도망을 암시하고 있다(예레 39:4-5 참조). 이 같은 상황은 공포와 폭력에 떨고 있는 백성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애가의 출현 연대는 기원전 586년 이후와 귀환의 때 곧 기원전 538년 이전의 어느 날인 것 같다. 문학적으로 보아 애가는 예레미야(3장)와 에제키엘(2장과 4장)의 영향을 받아 있고 또 애가의 어떤 구절은 제2 이사야의 예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애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예언자는 예레미야이다[애가 1:15, 2:13의 ‘처녀 시온의 딸’과 예레미야서 8:21 · 22과 14장을 비교하라. 애가 1:16, 2:11 · 18, 3:48, 49의 ‘눈물의 시냇물’을 예레미야서 9:1 · 18, 13:17, 14:17와 비교하라. 애가 1:14의 ‘목의 쇠사슬’을 예레미야서 17:2과 비교하라. 애가 2:14, 4:13-15의 ‘사제들과 거짓 예언자들의 죄’를 예레미야서 2:8, 5:31, 14:13, 23:10 · 40등과 비교하라]. 하여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애가의 저자가 예레미야라고 믿어 왔다. 또 2역대 35:25의 본문은 예레미야를 비가를 지어 부른 시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었다고 믿었으며, 후자는 전자의 속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비평은 아래의 이유로 애가의 저자를 여러 명으로 보고 있다. 예레미야가 공격한 여호야킴왕(예레 22:13-28, 37:17-21과 애가 4:20을 비교)을 위해 비가를 지어 불렀을 수가 없었고, 또 이집트의 원조를 기다렸다고 말할 수 없으며(애가 4:17과 예레 37:7-8) 그리고 나라의 멸망 뒤에도 예언자들이 활약했다고(애가 2:9과 예레 42:4-22을 비교) 말할 수가 없고 집단적 응보사상(애가 5:7과 예레 31:29을 비교)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는 것 때문이다. 더욱이 애가가 에제키엘 예언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저자가 여럿이란 가설이 나온 것이다. 어쨌든 어떤 저자들이 애가를 저술하였고 또 누가 그 책을 최종적으로 편집하였는가의 질문은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는 애가의 본문이 애도(哀悼)의 노래요, 초상당한 집의 만가(輓歌)임은 분명하다. 한국의 상가(喪家)의 풍습과 장례식과도 비슷하게 성서의 사람들도 초상을 당하면 직업적인 곡(哭)꾼들을 불러 죽음의 이별을 슬퍼했고(예레 9:17과 아모 5:16-17) 또 죽은 이의 친척들과 친구들(2사무 1:17과 3:33)은 피리 등의 가락에 맞추어(마태 9:23) 애가를 불렀다. 그러므로 애가는 바람과 꿈같이 사라진 사랑하던 사람의 슬픔을 노래하던 장례의식의 기능을 다한 것이다. ‘아이고, 어찌하여’의 비탄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들은 사라진 망자와의 이별의 고통도 상기시키고 있지만, 그에 대한 종교적 의무의 기능(출애 20:12 참조)도 지적하고 있다. 애가에서 야훼라는 이름은 그 분절(分節)이 뚜렷하지 못하다. 그것은 야훼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시편 115:17, 마태 22:32). 또 시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집단적인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이 형상들이 국가나 민족을 대표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바꾸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어떤 곳에 모여 애가를 불렀으니 그 중의 시인들은 공동체를 대변하여 생명의 하느님께 구원을 요청하며 탄원했을 것이다(시편 74, 79, 80, 89, 예레 14:2-6, 이사 63:7-64:11 등과 비교). 하여 애가의 사회적 기능은 이스라엘의 국상(國喪)의 슬픔을 표현하는 데 있었다. 특히 3장은 욥기의 이미지 혹은 주제와 매우 닮았다.
그리고 다섯 편의 이 시가들의 구조는 매우 정교한 운율과 소절(小節)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은 히브리어 22자 곧 알파벳의 글자의 순서에 따른 소절로 구분되어 있다. 알파벳 순서에 따른 시작(詩作)구성과 함께,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낱말들이 대칭적(對稱的)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반복은 시가의 중대한 사상을 강조하는 역할을 다한다. 애가의 첫 4장은 ‘키나’(qina, 不平)의 율격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다. 각 절의 제2행에 와서 시(詩)의 목소리가 떨어지고 그 구절이 짧아지는 것은 시인의 슬픔과 고통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5장에 와서 동일한 어미(語尾)가 반복되는 것은 시작품의 교운(交韻) 상태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정교한 본문의 구조는 애가로 하여금 애도의 슬픔을 보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해주었다. 강렬한 슬픔의 감정, 누적된 적확한 이미지들과 언어의 형상(形象)들은 슬픔에 잠긴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애가는 이별과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의 ‘연도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애가는 팔레스티리나(Palestrina)와 베르디(Verdi)와도 같은 천재적인 작곡가들에게 음악적 소재를 마련해 주었고 그들의 작곡에 영감을 내렸다. 특히 베르디는 애가를 읽고서 조국 이탈리아의 비극과 죽음을 슬퍼하며 작곡했다고 전한다.
애가의 문집(文集)은 5개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공통된 주제는 어디까지나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된 성전과 잿더미가 된 예루살렘이다. 1장의 시에서 시인은 예루살렘의 함락과 그 비극을 노래하고 있다. 그에게 다윗의 도성 시온은 여왕과도 같았으나 이제 그 여왕이 계집종이 되었고, 신음하고 있으며 버림받고 더럽혀졌으며 영도자와 위로자들을 잃어버린 것이다(1:1-11).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감동적인 의인법(擬人法)을 구사하며 사람들의 동정과 하느님의 용서를 빌고 있다(1:12-22). 2장의 시에서 시인은 하느님께서 내리신 처벌의 가장 비참한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야훼께서는 마치 이스라엘의 원수처럼 행동하시니 성전과 제단을 그분이 허물게 하셨기 때문이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근의 희생자들이 되어 굶어 죽는다(2:1-12). 시인은 또 왜 하느님께서 시온을 그렇게 대접했는가를 상기시키고 있다. 처녀 시온은 하느님만을 섬기고 그분께 의탁해야 했었지만 우상들의 거짓을 좇아 야훼께 죄를 지은 탓이 있다. 시인은 자기 백성이 당한 비극과 비참의 증인으로 야훼를 부르고 있다. “야훼여, 보이지 않으십니까? 주께서 이렇듯 누구를 괴롭히신 일이 있으십니까? 어미가 제 속을 난 성한 자식을 먹다니, 차마 이럴 수가 있습니까?”(2:20, 2:13-22 참조). 셋째 시에서 시인은 참변과 죽음의 다양한 얼굴들을 극치의 문체로 묘사하고 있지만(3:1-21)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날카로운 칼로 심히 내리쳤지만 이스라엘을 깡그리 몰살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비록 이스라엘이 지은 죄악이 하늘의 별들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더라도 사랑과 자비의 야훼께 애원하라고 호소하고 있다(3:22-42). 시인은 “노여움을 풀지 마시고 원수들을 뒤쫓아가 주의 하늘 아래 그들의 자취도 남기지 마십시오!”(3:66)라고 울부짖으며 하느님의 도움을 애원하고 있다(3:43-66). 제4장의 시에 와서 시인은 “비단옷이 아니면 몸에 걸치지도 않던 귀족들과 왕자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뒹구는 자들이 된 그들의 신세”를 묘사하고 있다(4:1-12). 나라가 그 꼴이 된 것의 근본원인은 거짓예언자들과 사제들에게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4:13-20). “성 안에서 죄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린 예언자들의 죄, 사제들의 악 때문이 아니었던가!”(4:13) 유대의 원수나라 에돔은 시온의 멸망을 보고서 즐거워 날뛸 것이나, 에돔도 그 죄의 대가로 사로잡혀 가리라고 시인은 예언하고 있다(4:21-23). 마지막 제5장의 시에 와서 시인은, 자기 형제들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처벌하신 주님께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성서의 불가타 역본은 이 애원시(哀願詩)가 너무나도 간절하였기에 “예언자 예레미야의 기도”(Oratio Jeremiae prophetae)라고 불렀다. 시인은 조국과 부모를 잃어버려 고아같이 된 사람들의 슬픔을 예리한 감정으로 묘사하고 있다(5:1-6). 그는 또 “죄지은 부모들은 간 데 없는데 그 벌은 후손들인 우리가 떠맡게 되었다”(5:7)라고 한탄하였다. 칼, 불길, 굶주림, 겁탈, 포로, 무법천지 등의 이미지들은 더욱 강렬하게 시인의 울분을 터뜨린다. 수금의 연주도 축제의 즐거움과 춤도 없는 끝없는 슬픔과 눈물은 모든 이들의 몫이 되었다고 시인은 말한다(5:7-18).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오”라는 외침이 시인의 마지막 절규이다(5:19-22).
가톨릭 교회는 애가를 성 주간의 전례에 도입하고 있다. 교회는 유배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의 유태인들처럼(즈가 7:3, 8:19) 뉘우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애가를 통해 표현할 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여 애가는 하느님의 불가역적인 구원의지에 대한 믿음의 열매요 자비로운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또 그리스도교 사상은 유다이즘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오늘의 유태인들에게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네 믿음의 맏형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자선들이 끊임없이 당하는 그 시련들은 구세주에 대한 그들의 불신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애가의 현실성을 깨달을 양이면, 그리스도의 수난, 다시 말해 예루살렘과 그 구세주의 이중적이요 지극적인 드라머는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조상이 저버린 구세주가 오늘의 그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면,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의 장벽은 사도 바울로의 소원대로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사별의 노래인 애가의 이중적 고통, 곧 예수와 그 백성의 고통은 보편적인 유월절의 날에 알렐루야의 기쁨으로 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둠과 불의에 가득 찬 이 시대의 시인들이 우리의 이 글을 읽는다면,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생명을 잃은 수많은 우리 시대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 애도하는 새로운 애가들을 지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애도의 노래들이 우리 시대 사람들의 회개와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도 있으리라. (徐仁錫)
[참고문헌] J. Knabenbauer, 1891 / L.A. Schneedorfer, 1903 / G. Riccioffi, 1924 / Th. Paffrath,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