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란 물질적 결핍보다는 청빈(淸貧), 소박(素朴)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성서의 개념과 윤리신학적 개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부귀, 재산은 하느님의 축복이며 인간이 희망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사회구조가 바뀌고 재화의 축적과 권력의 집중으로 사회의 불의와 부정이 생기게 되며 타인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의 시대에 오면서 사회적 가난과 서민의 물질적 결핍이 권력자나 부자들의 착취와 폭정에 의해서 생기고 이웃에 대한 무자비함이 가난의 원인으로 인식되었고 이런 현상은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아모 5:11, 이사 5:8, 미가 2:1, 6:10, 예레 5:27). 따라서 가난하고 압제받는 자는 선량한 사람들이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던 자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특히 바빌론 포로생활 이후에는 ‘가난한 이’, ‘억압받는 이’는 축복받을 의인들을 지시하는 특수한 표현이 되었다. 복음서에서는 가난이 예수님의 산상수훈(마태 5:3, 루가 6:20)과 예수님 자신의 생활이나 제자들에게 요구한 생활조건이다(마태 8:20, 10:9-10, 마르 10:21 · 28-30, 루가 9:58). 사도들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가난하게 생활했으며 부자들에게 경고하며 자선을 베풀 것을 강조하고,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라고 가르친다(마태 25:35-46, 야고 1:9-11, 2:1-7). 윤리신학적으로 볼 때 성서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가난을 이해하여야 한다. 첫째는 사회적이고 물질적 결핍의 가난으로서 인간들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극복해야 할 인간조건이다. 즉 공동선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이룩하며 자선으로 가진 바를 나누어야 한다. 초기교회부터 실천하여 온 자선은 신앙인 모두의 중대한 의무이며 공동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둘째로 수덕상의 가난이다. 이는 복음삼덕(福音三德)의 하나로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생활을 의미하며 이 때에는 물질적 결핍의 관점보다는 물질적 소유욕망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취한 단순 소박한 생활모습이다. 이러한 생활모습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의(字意)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사표시이다. 소유권의 포기로서는 현세에서의 자유로 구원을 성취한 생활, 즉 종말론적 표지이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볼 때 물질적 포기와 가난한 생활 자체를 덕으로 보고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 생활형태로 과장 선전하여 교회의 재산소유라든지 재산관리 등을 죄악시하고 단죄한 이단자들도 많았다. 예컨대 이원론적 사상(gnostici, manichaeism), 알비파(Albigensi), 카타리파(Cathari), 발두스파(Waldensi) 등이 그들이다. 이와 같은 위험과 광신적 경향을 조정하기 위하여 교회는 중용을 지킬 것을 종용하고 특수한 수도생활로 가난을 실천하려 할 때 기본정신을 깨우쳐 주고 허락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자는 누구나 복음적 가난의 의미를 깨닫고 생활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가 가르친 행복의 첫째 조건이기 때문이다(마태 5:3, 루가 6:20). (崔昌武)
가나 [원] Ghana
서아프리카의 한 나라. 기니아 만, 코트디브와르, 어퍼 볼타와 영국령인 ‘황금해안’과 접경하고 있다. 면적 23만 8,537㎢에, 인구 약 1,224만명(1982년 추계)이며 가톨릭 신자는 151만명(1982년 현재)이다. 1471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을 발견, 1482년부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에 종사해 왔으며, 1879년 최초로 지목구(知牧區)가 설정되었고, 대목구(代牧區)를 거쳐 1950년에 교계제도가 확립되었다.
가그리스도 [한] 假~ [라] Antichristus [영] Antichrist
가(假)그리스도는 복합적 내용을 지닌 단어이다. 구약시대 말기에는 하느님의 백성을 박해하고 참된 예배를 못하게 하는 자, 혹은 하느님의 반대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며, 신약성서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를 반대해서 나타나는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탄의 시종배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1요한 2:18, 4:3). 이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분쇄될 반(反)그리스도 세력으로 서술되고 있다(2데살 2:3-12).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신학자들의 공통되는 견해는 없다. 중세기까지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역사적 인물로 보았으며 이런 정신적 유산에서 종교개혁 당시에는 교파들 간에 서로 가그리스도라고 비난하고 증오에 찬 모욕을 주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태도와 사상이 비(非)그리스도적임을 공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불변적 진리는 인류 역사 안에 악의 세력이 존속하여 인간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고, 그 세력이 인간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항상 이 위협적 악의 세력과 투쟁해야 하고, 또 믿음을 위협하는 유혹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그리스도는 현대 사회에도 존재한다. (崔昌武)
가경자 [한] 可敬者 [라] Venerabilis [영] Venerable
시복(諡福) 후보자에게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존칭. 시복 조사가 교황청 예부성성에 접수되면 시복 후보자에게 이 존칭이 주어진다. 한국 교회는 1857년에 처음으로 82명의 가경자를 갖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1839년과 1846년에 조선왕국에서 발발한 박해 중에 그리스도의 신앙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의 전기…>란 문헌을 교황청에 보냄으로써 시복 조사가 시작됐는데, 1847년에 이 문헌을 접수한 예부성성은 박해로 인해 한국 교회가 교구적 차원의 시복 조사를 할 수 없으나 이 문헌 자체가 순교자를 선정하는 데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교회법에서 요구되는 교구 조사를 대치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1857년 9월 23일 한국 교회의 시복 조사를 공식으로 접수하는 법령을 반포하였다. 이로써 82명의 가경자가 탄생하였다. 이 82명의 가경자 중 79명은 1925년에 복자가 되었고, 1984년에 79명 모두가 시성되었다. 이어 한국 교회는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 중 26명에 대한 시복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 중 24명이 1968년에 복자가 되고, 1984년에 성인이 되었다. 이들도 복자가 되기 전에 잠시 가경자의 칭호를 받았을 것이 확실하지만, 1918년 새 교회법의 반포로 가경자의 기간이 아주 단축된 이후렸으므로 이들에게 실제로 가경자 기간이 있었는 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이다. 1983년 새 교회법의 반포와 더불어 시복·시성의 간소화를 위한 개혁이 추진중에 있는데, 이 개혁으로 가경자의 의의가 더욱 약화되고 거의 유명무실해질 것이 확실하다.
힐라리오 [라] Hilarius
Hilarius(약 315∼367). 성인. 프랑스 프와티에의 성인. 주교(353년경 이후). 1969년 이후 축일은 1월 13일. 1851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일찍이 신(新) 플라톤주의자로 청년기에 성경에 접한 뒤 개종하였다. 베지에(Beziers) 공의회(356년)에서 아타나시오(Athanasius)에 대한 단죄를 거부함으로써 아리안주의 논쟁에서 정통의 시금석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4년간 프리기아(Phrygia)로 유배되었다. 거기서 그리스신학을 연구,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는 중요한 저작과 서신을 남겼다. 359년 셀루시아(Seleucia) 공의회에서 정통을 옹호하였으며 당대의 주도적이고 가장 존경받는 라틴신학자가 되었다. 유배 이후 마르틴(Martin of Tours)이 골(Gaul) 지방에서 수도원운동을 시작하게 하였으며, 말년에는 골 지방과 이탈리아에 남겨진 아리안주의의 해독을 치유하는데 보냈다.
주요 저작으로는 아리우스주의 반대하는 ≪삼위일체에 대하여≫(De Trinitate), 그 시대사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는 , 으로 불리는 작품 등이 있다. 서방 그리스도교를 그리스 교부의 방대한 신학적 보고에 접촉시킨 최초의 서방신학자이며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삼위일체에 대한 연구에서 그의 권위를 즐겨 인용하였고, 또한 ‘서방의 아타나시우스’로 그의 정통신학은 게르만족 침입 이후 재 유입된 아리안 이단으로부터 서방세계를 무장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