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본당 [한] 厚岩洞本堂

서울 대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중림동본당 관할이던 후암동일대는 1949년 3월 신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하여 성당건립기성회가 조직되면서 공소가 되었고, 이어 8월 15일 사가(私家)를 개조한 성당이 마련되어 9월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 신자수가 증가하자 동자동에 사가를 매입하여 본당을 이전하였다. 6.25동란으로 본당이 폐허가 된 후 1953년 10월 김효신(金孝臣, 마티아)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 본당재건운동을 벌여 이듬해 성당을 신축하는 한편 해방동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54년 4대 주임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가 부임, 이듬해 본당을 후암동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고 복자수녀회 분원을 설치함과 동시에 복자유치원을 개원하였다. 그 후 1964년 새 성당이 신축되고, 본당에 파견된 수녀회도 복자수녀회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로 교체되었다. 한편 신심단체로1956년 성모성심부녀회, 1958년 레지오 마리애, 1959년 중 · 고등부학생회, 1964년 빈첸시오회와 성가대, 1967년 까리따스회 등이 발족되었고, 1969년에는 본당 사목위원회가 창립되었으며 1971년 9대 주임으로 이문근(李文根, 요한) 신부가 부임하면서 평신도사도직 활동은 더욱 더 활발해져 군종후원회가 발족되고 꾸르실료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1974년 불우청소년을 위한 야간학교, 1975년 신용협동조합과 노인학교 등도 개설되어 사회사업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현재 주임신부는 김윤상(金允相, 베네딕토) 신부이고 신자수는 1984년 현재 3,684명이며, 현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38의 4이다.

역대 주임신부 명단과 재임기간은 다음과 같다. 1대 임화길(1949.9∼12월), 2대 신인균(申麟均, 요셉, 1950. 1∼1953. 9), 3대 김효신(1953. 10∼1954. 3), 4대 방유룡(1954. 4∼1955. 2), 5대 임종구(林鍾求, 바오로, 1955. 3∼1957. 7), 6대 윤병희(尹炳熙, 바오로, 1957. 8∼1960. 4), 7대 이영식(李永植, 베드로, 1957. 9∼1960. 3), 8대 장대익(張大翼, 루도비코, 1963. 1∼1971. 5), 9대 이문근(1971. 6∼1974. 3), 10대 박성종(朴成鍾, 프란치스코, 1974. 4∼1979. 5), 11대 김정진(金正鎭, 바오로, 1979. 6∼1983. 4), 12대 김윤상(金允相 1983. 5∼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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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파 [한] ∼派 [라] Hussitae [영] Hussites

15세기초 후스(Jan Huss, 1369∼1415)의 추종자들이 남부 보헤미아(현 체코) 지방에서 결성한 한 분파로 유명한 후스전쟁(1420∼1431년)을 일으켰다.

후스파의 정신적인 지주(支柱)인 후스는 보히미아에서 태어나 프라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1400년에 서품되었으며, 1402년부터는 프라그대학장으로서 강단에 섰다. 그는 영국의 종교개혁자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았고, 프라하의 베들레헴 소성당의 설교가로 위클리프의 사상을 변호하였다. 이로 인해 프라하의 대주교와 충돌하게 되었고, 급기야 요한 23세로부터 파문까지 당하게 된다(1412년). 그 뒤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되어 심리를 받았고, 공의회는 그의 명제 30개를 이단으로 배척함과 동시에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1415년 화형(火刑)을 받고 죽었다.

≪교회론≫(De Ecclesia)을 비롯한 그의 여러 저서들은 후스파의 주요한 이론적인 무기가 되었다. 그것은 소위 ‘프라그 4개조’(4 Prager Stuke) 속에 규정되어 있는데, ① 하느님 말씀의 자유로운 설교, ② 영성체 때 빵과 포도주 등 2개의 형(兩形)을 함께 배령, ③ 성직자의 무소유적(無所有的) 생활, ④ 대죄를 범한 사람의 처벌 등이 그것이다. 이중 ②는 양형론(兩形論, utraqism)이라 불리며, 다양한 후스파를 일치시킨 중요한 논제의 하나였기 때문에 후스파를 양형론파(utraquistae)라고도 한다. 후스파는 후스가 사형당한 뒤 전쟁을 일으켜 약 50년 동안 보헤미아지방을 휩쓸었다. 여기에 대해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위클리프파, 후스파, 그 밖의 이단자에 대하여>란 칙서를 발표하고 십자군을 조직하여 후스파와 전투를 벌였다. 전투는 1433년 프라하 계약(compactara)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 계약은 후스파에게 빵과 포도주 양형 모두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선언하는 조건으로 양형의 영성체를 허가하는 것이 내용의 골자로 되어 있는데, 이는 양형의 성체를 모두 배령하여야 구원될 수 있다고 하는 후스파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철회하게 하는 것이었다. 후스파의 일부는 이 계약에 만족하였지만 타보르파(Taborites)는 이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전투를 계속하였지만 1433년의 리판(Lipan)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프라하계약은 1436년 반포되었는데, 그 후로도 분쟁은 계속되었고, 때로는 무력충돌로까지 발전한 예도 허다하였기 때문에 교황 비오 2세는 양형론자의 의식(儀式)을 완전히 폐지시켰다. 그러나 불화의 씨앗은 계속 남아 16세기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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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멜라우어 [원] Hummelauer, Franz von

Hummelauer, Franz von(1842∼1914). 성서 주석학자.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여 네덜란드 헤렌베르크(’s Heerenberg)에서 별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한 뒤 독일 예수회에 입회(1860년), 독일 마리아 라흐와 영국 디톤 홀(Ditton Hall)에서 공부하고 사제가 된 뒤 성서주석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1873년에서 1884년까지 인류의 기원, 선사시대의 인간, 고대 지질학, 고대 동양 인류사 등에 관하여 많은 논문을 썼다. 1884년 코르넬리 및 크나벤바우어와 더불어 (Paris)를 창간, 여기에 연재하기 위하여 사무엘 상 · 하(1886), 판관기와 룻기(1888), 창세기(1895), 출애굽기와 레위기(1897), 민수기(1899), 신명기(1901), 여호수아(1903), 역대기 상(1905) 등에 관한 주석서를 저술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Der biblische Schopfungsbericht≫(Freiburg 1877, 1898), ≪Das Vormosaische Priestertum≫(Freiburg 1899), ≪Exegetisches Zur Inspirationsfrage≫(1904) 등이 있다. 1903년 성청 성서위원회의 참사를 역임하였고 1908년에 성서 연구 생활에서 물러나, 3년간 베를린에서 사목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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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렴 [라] antiphona [영] antiphon

두 성가대 혹은 성가대와 회중들이 서로 응답하며 번갈아 부르는 시편창이나 찬미의 노래 전후에 불려지는, 짧은 노래의 선율과 그 가사를 말한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음악에서 비롯되어 4세기에 암브로시오에 의해 서방교회에 전해졌다. 후렴은 주로 성무일도(聖務日禱)에 사용되었는데, 시편과 찬가(canticles)전후에 암송된다. 그 내용은 보통 성서에서 발췌된 것으로 전례시기와 축일에 따라 바뀌어져 시편이나 찬가의 전례적 의미를 밝혀 주고 있다. 아침기도의 ‘즈가리야의 노래’(Benedictus), 저녁기도의 ‘성모의 노래’(Magnificat), 끝기도의 ‘시메온의 노래’(Nunc Dimittis)와 미사 때의 층계송에 후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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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 [한] 後光 [라] halos [영] halo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그리스도나 성인의 머리 부분을 둘러 싼 광휘. 하느님의 신성(神性)이나 거룩함, 은총, 영광, 인간의 윤리적 탁월성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는 그리스도 이전 시기에 영웅이나 성현이 지닌 권능과 위엄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이를 채용한 것이다.

후광은 이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세 가지 기하학적 형태로 사용되었다. 삼각형은 성삼위(聖三位), 하느님 특히 성부를 나타낼 때 사용하였고, 원형은 그리스도와 복된 동정녀 마리아와 성인에게 사용하였는데 특히 그리스도에게는 원형 안에 십자 표시를 아울러 그려 넣기도 하였다. 사각형은 생존자에게 적용하였다. 원형은 하늘을, 사각형은 땅을 상징하였다.

후광은 광배(光背, aureola)와 구별된다. 광배는 그리스 · 로마 예술에서 여러 신(神)들과 영웅들의 신성과 탁월성을 표현하였는데 이용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하느님의 신성을 상징하므로 성삼위와 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었으나 예외적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나타내는데 응용되었다. 형태에 있어서 후광이 인물의 머리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데 대하여 광배는 온몸 전체를 둘러싸도록 그려져 있다. 광배의 색체는 대체로 초기예술에는 흰 색이, 르네상스 예술에는 황금빛과 푸른색으로 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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