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 [한] 煉路 [관련] 연옥

옛 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서 연옥(煉獄)에 이르는 길이란 뜻이다.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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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사 [한] 煉∼ [라] Missa pro defunctis [관련] 위령미사

연옥(煉獄, purgatory)에 있는 이를 위해 드리는 미사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연옥이란 의인(義人)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소죄(小罪)가 정화(淨化)되는 상태 또는 장소이다. ‘연미사’[련미사]에 대하여≪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은 ① 연옥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한 미사, ② 축도(祝禱)미사, ③ 마법의 의식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연미사를 다른 말로는 ‘사자(死者)의 미사’(Missa defunctorum 또는 Missa de Requie 혹은 Requiem)라고도 번역되어 일본에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사자미사 때 쓰이는 검은 제복(祭服)의 빛깔에서 ‘흑(黑)미사’라고도 지칭되었다. 중세에는 네 가지의 정식(定式)이 있어서, 봉교자(奉敎者)로서 죽은 자의 기념일 미사, 사망 또는 장례식 날의 미사, 연기(年忌)미사, 사자의 보통 미사 등으로 나누어 적용되어 왔으나, 성 비오 5세 때 결정적으로 하나로 제한되어 묶어졌다.

오늘날 천주교 용어로는 ‘위령(慰靈)미사’라는 말로 바뀌어졌으며, ‘연미사’나 ‘사자의 미사’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 위령미사

[참고문헌] F.X. Rindfleisch, Die Requiemmessen nach dem gegenwartigen liturgischen Rechte, 3hg, 1913 / F. Brehm, Die Neuerungen im Missale,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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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한] 捐補 [관련] 헌금

⇒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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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송 [한] 連誦 [라] tractus

슬픔과 통회(痛悔)를 나타내는 미사인 사순시기(四旬時期) 미사와 위령(慰靈)미사 때 알렐루야 대신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미사에는 기쁨을 표시하는 알렐루야를 노래할 수 없기 때문에 제2독서 후 층계송과 함께 연송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시편이지만 후렴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는 점이 층계송과 다르다. 이런 이유에서 ‘tractus’(tractum, 단숨에)라는 명칭이 붙었다.

원래 로마 미사에서는 제2독서 혹은 각 독서 후에 시편을 한 편씩 노래하게 되어 있었고 두 번째 시편은 알렐루야와 교창(交唱)되었다. 그러나 슬픔과 통회를 나타내는 시기에는 알렐루야 없이 시편만을 부르되 미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후렴없이 부른 데서 연송이 유래되었다. 연송은 애조 띤 곡조로 중세 상징론에서는 ‘통회와 비애의 노래’라고 했으나 실제로 내용은 그 반대였다. 바티칸 미사 고유문 성가집(Graduale Vaticanum)에는 독창으로 부르게 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두 성가대 혹은 선창자와 성가대가 서로 교창으로 불렀다.

[참고문헌] 한국복자수도회, 그레고리오聖歌(理論), 서울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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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본당 [한] 延安本堂

해주(海州)본당 관할의 공소가 있던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군청소재지 연안읍에 본당이 설정된 것은 1937년 5월로,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충남 서천(舒川)에서 전교하던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1만여원의 공사비를 들여 벽돌 성당과 사제관 신축공사를 그해 10월에 완공, 황해도 감목대리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 주례로 준공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1942년 조 신부가 평양교구 안주(安州) 본당으로 전임되자, 연안본당은 성직자 부족으로 후임신부를 배정받지 못해서 해주본당과 개성(開城)본당 관할로 분할 편입되어 있다가, 1943년 경기도 안성(安城)본당에서 사목하던 이희연(李熙淵, 프란치스코) 신부를 3대 본당신부로 맞아 본당이 부활되었다. 그러나 이희연 신부는 1년만에 전임되었으며, 그 당시 연안본당의 총 교세는 711명이었다. 그 후임인 4대 김영식(金永植, 베드로) 신부가 평양교구 강서(江西)본당으로부터 부임하여 전교하다가 1951년 유엔군의 후퇴 때 그가 돌보던 고아들을 데리고 월남하였다. 김 신부는 경기도 부평(富平)본당 주임으로 재임하면서 이 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을 설립 운영하는 한편 성모자애병원(聖母慈愛病院)도 설립 운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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