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일과 [한] 袖珍日課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디아스(Diaz, 중국명, 陽瑪諾, 1574~1659)가 저술한 매일기도서로,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도록 수진본(袖珍本)[현재의 포켓판에 해당되는 소책자]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은 롱고바르디(Longobardi, 중국명 龍華民, 1559~1654) 저술의 ≪천주성교일과≫(天主聖敎日課)를 축약한 것.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고 1823년 중간된 것과 그 후 20세기초 백화문(白話文)으로 씌어진 중간본이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18세기 후반 교회 창설 직후 전해져 한문본 그대로 사용되었는데 ≪벽위편≫(闢衛編)과 ≪사학징의≫(邪學懲義)에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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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청본당 [한] 水淸本堂 [관련] 고산본당

1942년 전주교구 관하 본당으로 설치 승격되어 1950년 6.25동란으로 인하여 파괴된 채 폐쇄되었다. ⇒ 고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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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성인 [한] 守護聖人 [라] patronus [영] patron saint

어떤 직업, 장소, 국가, 개인 특정한 성인을 보호자로 삼아 존경하며, 그 성인을 통하여 하느님께 청원하며,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다. 이 성인을 수호성인, 혹은 주보성인(主保聖人), 보호성인(保護聖人)이라 한다. 수호성인을 모시는 관습은 2개의 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는 모든 성인의 통공(1고린 12:8,13)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1고린 13:18 · 28-30)는 바울로의 가르침이다.

수호성인을 세우는 관습은 순교자의 묘지 위에 성당을 건립하고 그 순교자를 수호성인을 모시는 일이 많았던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리하여 3세기경까지는 순교자만이 성당의 수호성인이 될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에는 증거자, 주교, 선교사, 성당의 창설자, 신비(예를 들면 삼위일체, 십자가, 구세주) 등도 성당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처럼 수호성인의 관습은 성인 공경의 한 형태로 생겨난 것이었다.

한 개인이 수호성인을 모시는 관습은 이 보다 늦게 생겨났다. 그러나 4세기초에는 그리스도교적인 이름이나 성서적인 이름을 세례명(christian name)으로 선택하는 일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이것은 세례명으로 선택한 성인을 따라 살겠다는 의지임과 동시에 이름을 바꿈에 따라 그 사람도 변화한다는 성서의 내용에 의거한 것이다. 즉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로 개명(改名)한 사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수나 그리스도는 세례명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리스나 스페인에서는 예외다.

한편 직업이나 단체에 대한 수호성인도 있다. 이것은 교황에 의해 결정되는데, 예컨대 요셉

은 교회, 알로이시오는 청년과 학생, 빈첸시오 아 바울로는 자선단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출판단체, 어린 예수의 성 데레사는 세계포교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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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한] 守護天使 [라] custos angelus [영] guardian angel [관련] 천사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 하느님의 섭리는 피조물을 통하여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를 통하여 자식을 기르고 스승을 통하여 학생을 교육시키는 경우가 그 예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각 사람들에게 날 때부터 수호천사 하나씩 정하여 주어 사람을 보호하게 하였다(마태 18:10). 또한 국가나 교회 같은 단체에도 수호천사를 준 것 같다(다니 10:21-12:1, 출애 23:20).

수호천사는 사람이 가는 길마다 지켜 주고(시편 91:11) 사람의 시중을 들어 주며(히브 1:14)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준다(토비 12:12). 그러므로 각 사람은 마치 성조 야고보가 마지막으로 자손들에게 강복할 때 “모든 어려움에서 구해 준”(창세 48:16) 천사를 불렀듯이 수호천사의 도움을 구하며,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마음속으로 권고하는 그의 말을 듣고자 노력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10월 2일에 수호천사를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는 일찍이 교황 글레멘스 10세가 규정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1667년 교황 글레멘스 9세는 9월 첫 주일을 그 축일로 정한 적이 있고 13세기 스페인에서는 3월 1일에 그 축일을 지내기도 하였다. (⇒)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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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천본당 [한] 肅川本堂

1931년 평남 평원군 숙천명 당하리(平南 平原郡 肅川面 堂下里)에 창설되어 1942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숙천지역은 1898년 창설된 섶가지[薪枝里]본당 관할지역이었으나 1902년 영유(永柔)본당이 신선되고 섶가지본당이 폐쇄됨에 따라 영유본당 관할지역으로 되어 1905년 공소로 개설되었다. 그 후 1929년 영유본당에서 파견된 전교회장 강봉길(姜奉吉, 요한)이 공소에 상주하면서 야학을 개설하고 1930년 성당을 건축하는 등 교세가 급격히 신장되자 1931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평원군의 북부지역과 안주군(安州郡)의 서부지역에 6개 공소를 관할하게 되었다. 초대 주임신부로는 플런킷(Plunkett, 朴) 신부가 부임하여 1936년까지 사목했고, 이어 월시(Walsh, 魏) 신부가 2대 주임신부가 1936년에서 1938년까지, 바론(Barron, 瀋)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1938년에서 1939년까지 사목하였다. 1939년 4대 주임신부로 양기섭(梁基涉)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942년 2월 양기섭 신부가 진남포(鎭南浦)본당으로 전임된 후, 숙천본당은 영유본당 관할 공소마저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영유본당과 함께 폐쇄되었다.

숙천본당 운영의 사회사업체로는 고아원과 1937년 개설된 성신(聖神)유치원이 있었고, 본당 내의 신심단체로는 1932년 조직된 청년회를 비롯하여 소녀성가대, 부인회, 가톨릭운동연맹 지회 및 분회 등이 있었는데 이 중 가톨릭운동연맹 숙천 지회는 평양교구 내에서 가장 잘 조직되고 활발했던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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