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리아 [라] Caecilia

Caecilia(2~3세기). 성녀. 축일 11월 22일. 동정 순교자. 초기 로마교회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던 순교자의 한 사람이다. 5세기 말경 씌어진 행전(行傳)에 의하면, 로마의 유서깊은 명문 귀족의 딸로 태어나 부모에 의해 이교도인 다른 귀족과 정혼되었으나 남편을 개종시키고 일생 동안 신앙과 동정을 지켰다고 한다. 남편 발레리아노(Valerianus)와, 세실리아에 의해 개종한 시동생 티베르시오(Tibertius) 역시 함께 순교, 성 갈리스도(St. Callistus) 1세 교황의 카타콤바에 묻혔다. 유해는 성 파스칼(St. Paschalis) 1세(재위 : 817~824) 교황에 의해 발견되어 로마시의 성 세실리아 성당에 안치되었다. 1599년 교회 수리를 위해 유해를 옮길 때 육신이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교회 음악의 수호성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교회 미술작품 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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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 [한] 細心 [라] scrupulositas [영] scrupulosity

행위의 윤리성을 혼동하여 죄와 무관한 행위를 죄되는 행위라고 여기거나 경죄(輕罪)의 행 위를 사죄(死罪)라고 상상하는 심적(心的)경향. 일상생활에 있어서 매사에 죄가 되지 않을 지를 지나치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녔다 하여 세심 또는 과엄(過嚴)한 양심(conscientia scrupulosa)이라 부르며, 이는 병적인 증세이므로 세심증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세심 또는 세심증을 지닌 사람은 불필요한 근심 걱정을 일삼을 뿐 아니라 사소한 이유로 결심을 바꾸고 행동에 변화가 무상하며 장상(長上)의 유권적인 판단을 불신하고 아집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세심의 결과 가벼운 죄조차 회피하는 이익이 없지 않으나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 이행에 소홀하게 되어 영신상 진실한 진보를 성취할 수 없는 결점을 지닌다. 세심의 원인에는 신체적 허약, 윤리적인 가치판단력의 미확립 등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건강을 회복하거나 고해신부에게 상의하여 세심증을 치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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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한] 洗者 [관련] 요한1

세례자 요한을 말한다. ⇒ 요한1 ② 세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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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례 [한] 洗足禮 [라] mandatum [영] washing of the Feet [관련] 성목요일

성목요일에 거행되는 전례 중에서 발을 씻겨주는 의식을 말한다. 이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가 자선과 애덕에 필요한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던 일(요한 13:1-17)을 기념하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이 겸손의 예를 그대로 반복하여 지킬 것을 명하였다. 일찍이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우정과 호의의 표시로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의 발을 씻겨 주던 풍습이 있었다. 구약성서에도 그 예가 보여지며(창세 18:4, 19:2, 24:32, 유딧 19:21), 모세 법에도 사제가 제사를 지내기 전에 두 손과 두 발을 씻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출애 30:19-20, 40:31). 신약에서 예수는, 예수를 초대하고서도 발을 씻을 물조차 내어주지 않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불손한 태도와 눈물로써 예수의 발을 적시며 회개하였던 여인을 비교하였다(루가 7:44). 이처럼 발을 씻겨주는 행위는 애덕과 겸손의 상징이며 또한 정화(淨化)를 상징한다.

세족례는 694년, 톨레도(Toledo)의 17차 교회회의에서 증명되었으며, 13세기 로마의 10차 ‘Ordo Romanus’에서 인정되었다. 성목요일 미사가 아침에 거행되었을 때는 세족례가 독립된 의식으로 대성당이나 대수도원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교황 비오 12세(재위 : 1939~1958)의 ‘성주간 예식서’에는 다시 복원된 성목요일 저녁 미사에서 모든 교회가 이 세족례를 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미사 강론 후 교송(交誦)이 불려지는 가운데 신자들 중 선발된 12명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미사 집전 사제가 그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겨 주고 닦아주는 것이다. 복음 13장의 낭독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세족례는 성목요일 전례 중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사목상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행해진다. (⇒) 성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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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본당 [한] 世宗路本堂

서울 대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성심. 명동본당을 모본당으로 하여 1945년 8.15광복 직후 교구장의 승인을 얻어 사직동의 한 교우댁 2층에서 사직동본당으로 출발하였다. 사제수의 부족으로 주임신부의 임명도 없이 교구청에서 신부들이 윤번제로 와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1946년 4월 이선용(李善用, 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1947년에는 첫 영세자 46명을 배출하였다. 1949년에는 도렴동(都 洞) 한옥으로 옮기면서 본당명칭도 도렴동 본당으로 바뀌었다. 1950년 6.25동란으로 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9.28수복으로 2대 주임 이완성(李完成, 요한)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 명칭을 세종로본당으로 개칭하고, 1954년 지금의 성당 자리인 필운동(弼雲洞)에 대지 416평을 사들여 미군이 쓰던 퀜세트를 얻어다가 성당으로 활용하였다. 같은 해에 3대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가 부임, 1955년 8월 구성당을 신축 준공하였다. 박 신부는 교우들이 모은 성금으로 1958년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영복산(榮福山) 6만 4,000평 을 매입, 본당묘지를 마련하고, 신심단체의 창설과 활동을 본궤도에 올려놓았으며, 많은 지성인을 집단 영세시키는 등 세종로본당을 굳건한 반석위에 자리 잡아놓은 뒤 1967년 미아리본당 신부로 전임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계광(李啓光, 요한) 신부는 박 신부 때 지은 단층벽돌 성당이 신자의 증가로 비좁아지자 1968년 2층으로 증축, 위층은 성당으로 아래층은 유치원, 주일학교, 각 단체 회의실 등으로 이용케 하였다. 6대 본당주임 김인성(金仁成, 요한 비안네) 신부는 1979년 증축한 지 10년이 지나 초라해지고 각 단체 활동에 불편을 주게 된 성당을 전면 개수하였다. 1981년에 부임한 현 7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토) 신부는 현대식 사제관(수녀원과 각종 회의실을 겸함)을 신축하였다. 이 본당 관할구역은 내수동, 적선동, 당주동, 내자동, 도렴동, 광화문, 신문로 1, 2가, 필운동, 채부동, 옥인동, 효자동, 궁정동, 청운동, 신교동 등 일원이며, 신자수는 4,202명(1983년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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