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행(1775~1839). 순교자. 일명 종일, 안드레아.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20세경 입교하였고, 그 뛰 신앙생활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산골로 옮겨 다니다가 경상도 순흥(順興)[현 경북 봉화군]에 정착, 가난한 생활 중에서도 기도와 묵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로 대구감영(大邱監營)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형집행이 연기되어 박사의(朴士義), 김사건(金思建) 등과 함께 12년을 옥살이 한 뒤 1839년 5월 26일(음 4월 14일) 대구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이재의 [한] 李在誼
이재의(1785~1868). 세례명 토마스. 이승훈(李承薰)의 손자. 강원도 정선(旌善) 출신. 정하상(丁夏祥)과 반년 가까이 동거하면서 교리를 배워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주교가 순교할 때까지 복사로 일하면서 주교를 도왔다. 김대건(金大建) 부제(副祭)가 입국할 때 의주(義州) 변문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여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인도했고, 김 부제가 중국 상해로 건너갈 때 동행하여 그 곳에서 3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교리를 더욱 깊이 연구한 뒤 페레올(Fereol, 高) 주교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홍주(洪州)로 피난하여 화를 면했으나 1846년에 체포되었을 때에는 배교하여 석방되었다.
그러나 1868년 4월 3일(음 5월 25일) 그는 외국인 주교와 김대건 신부를 국내로 인도해 왔다는 죄목으로 다시 체포되어 5월 28일 모반부도죄(謀叛不道罪)로 서소문밖에서 참수되었다. 61세의 나이였다.
이일언 [한] 李日彦
이일언(1766~1839). 순교자. 세례명 요셉.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 입교 연도는 미상이나 1801년 박해 때 체포된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열심히 신앙을 지켰던 것 같다. 체포된 그는 경상도 안의(安義)로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다시 체포되어 10년간 옥중 생활 끝에 1815년에 체포되었다. 1826년 5월까지 안의에서 살다가 전라도 임실(任實) 어느 외딴 마을로 이사해 살았는데, 1827년에 박해가 다시 있자, 또다시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곧 집행되지 않고 12년 동안이나 옥중에서 고생하다가 1839년 5월 29일 순교 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 73세였다.
그가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가족들이 울려 따라 오는 것을 보고, 그는 “내 여러 해 동안을 옥에서 고생하다가 이제야 천국으로 가게 되었으니, 슬퍼말고 나의 행운을 기뻐하라. 그리고 너희들도 훌륭한 신자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고요히 처형되었다.
이인덕 [한] 李仁德 [관련] 이영덕
이인덕(1818~1840).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마리아. 성녀 이영덕(李榮德)의 동생.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 교인인 외할머니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모친 조 바르바라, 언니와 함께 입교하였다. 1839년 6월 기해(己亥)박해로 모친, 언니와 함께 체포되어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堂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 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 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 이영덕
이익 [한] 李瀷
이익(1681~1763). 이조 중엽의 실학자(實學者). 자(字)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학문에 전심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많은 장서를 토대로 경전(經典) 정주학(程朱學)을 설립하고 이황(李滉)의 글을 탐독하여 사회현실을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실증적, 비판적 태도로 학문에 접근해야 한다는 이론을 세웠으며, 모든 학문은 사회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서학(西學)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두어 유학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편견없이 이를 소화 소개 하였다. 즉 이익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李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의 발문(跋文)을 지은 바 있는데, 천주교의 천주와 유교의 상제를 비슷한 것으로 보았고, 또한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판토하(Pantoja, 龐-我)의 저서인 ≪칠극≫(七克)에 대한 비판을 하는 가운데 ≪칠극≫의 ‘七’자는 유학의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기(己)를 풀이한 각주(脚註)인 것이라 하여, 유교의 윤리와 천주교의 윤리가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이익은 순수한 학자적 입장에서 천주교를 비판 소개하였고, 지리학(地理學) · 의학(醫學) 등에 있어서도 서양의 새로운 지식을 수립 이를 연구하여 보급시켰다. 저서로는 ≪성호사설≫, ≪성호문집≫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