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펠라지우스주의 [한] ∼主義 [라] Pelagianismus [영] Pelagianism
펠라지우스(Pelagius, ?∼418)가 주장한 이단설. 원죄와 유아세례를 부정하였다. 펠라지우스는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를 자력으로 실행할 능력이 있으므로 구령(救靈)도 신앙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그것을 쉽게 하는데 은총이 필요할 따름이며, 은총은 구약의 율법이나 복음서, 예수의 본보기처럼 외적(外的)인 것에서 그치고, 인간의 영혼을 비춰주고 개조하여 강화시키는 것은 내적(內的)인 은총이라고 주장하였다.
펠라지우스는 브리타니아가 아니면 스코틀랜드 지방의 출신으로 410년까지는 로마에서 수도자로 있었다. 수도생활에 지도적 역할을 한 인물로, 저술가로도 활동하다가 알라리크군(軍)의 침략을 피하여 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고전적인 교양이 풍부하고,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단설은 고대 윤리학의 정신을 받아들인 것으로 아우구스티노나 후대의 학자보다 인간의 선에 대한 자연적 능력을 높이 생각한 그리스의 교회 저술가 글레멘스의 저서 등에도 어느 정도 나타나 잇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그는 원죄와 그 결과를 부정하고 경시했으며 유아세례도 부정하였다.
페티시즘 [라] Fetiscismus [영] Fetishism [관련] 원시종교 자연종교
주물숭배(呪物崇拜). 가지고 다니는 물건에 신이 잠들어 있다고 믿는 것. 이 말은 15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이런 풍습을 아프리카인들에게서 발견하고 붙인 이름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나무조각, 돌조각, 조개껍질, 고기뼈 등을 지니고 다니면서 전쟁이나 사냥을 나갈 때 승리와 많은 포획물을 기원하였다. 전쟁에 패하거나 사냥의 성과가 좋지 못할 경우에는 이제까지 갖고 다니던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였다. 브로세스(C. Brosses)는 모든 종교의 기원은 주물숭배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고, 콩트(A. Comte)도 원시 종교에서 주물숭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현대에도 남아 마스코트를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부적(符籍)을 믿는 민간신앙이 있다. (⇒) 자연종교, 원시종교
페브로니우스주의 [라] Febronianismus [영] Febronianism [독] Febronianismus [관련] 교회와 국가
18세기 독일 교회와 국가 사이의 입법에 대한 이론. 혼트하임(John Nikolas von Hontheim, 1701~1790)에 의해 유스티누스 페브로니우스(Justinus Febronius)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교황령과 로마 교황의 적법적 권리; 분열된 그리스도교도의 종교적 일치를 위해 씌여진 책≫(1763)에서 구체화된 국교회 사상과 공의회 지상주의의 한 가지이다. 여기서 교황을 교회의 수뇌, 교회 행정 및 신앙과 도덕의 감독자로 인정하는 한편 중세의 세속재산의 증가를 공격하였다. 교회문제는 가능한 한 교회와 민간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거짓 법령에 의한 교황의 모든 주장을 무효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즉 천국의 열쇠의 기능은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교회에 부여되고, 그 집행을 위해 성직자가 선택된 것이며, 교황은 이들 성직자의 수위(首位)에 있긴 하지만 교회 전체에는 종속되어 있다고 하였다. 교황은 공의회 밑에 위치하며 신앙문제의 결정권은 없다. 교회 전체만이 무류성(無謬性)을 갖는다. 주교의 평등한 권능은 교황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계몽주의, 공의회 수위설, 국교회 사상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황 글레멘스 13세는 1764년 혼트하임을 단죄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황제인 요셉 2세와 투스카니의 레오폴드 2세 등의 평신도 통치자들은 이 이론을 지지하였다. (⇒) 교회와 국가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라] Perpetua et Felicitas
Perpetua et Felicitas(?∼202?). 성녀. 축일은 3월 7일(1969년 이후). 카르타고의 순교자. 순교 당시 페르페투아는 아들이 하나 있는 귀부인, 펠리치타스는 임신중에 있는 노예였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의 박해 때 다른 3명의 예비자와 투옥, 감옥에서 세례받은 뒤 투기장에서 참수당하였다. 부친은 페르페투아에게 여러 차례 배교를 종용, 결국 실패하였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수난사화≫(Passio Perpetuae et Felicitatis)는 대부분 페르페투아 자신(3장∼10장)과 같이 처형당한 이들의 사제 사투루스(Saturus, 11∼13장)에 의해 씌어졌는데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에 의해 편집된 듯하다. 그들과 다른 예비자들의 감옥생활과 순교, 그리고 페르페투아와 사투루스의 환시(幻視)에 대해서 담고 있는데 당시 카르타고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순교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