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즘 [영] Thomism

토미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하여 세워진 철학과 신학의 체계이다. 또한 14세기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토마스의 학설이나 그의 근본사상을 척도로 삼아 발전시켜 나아가는 철학과 신학의 체계나 학파를 토미즘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토미즘에 관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1. 토미즘의 배경 : 토미즘이 탄생하게 된 데는 물론 성 토마스 아퀴나스 자신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체계의 탄생을 위한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의 스승인 알베르토 마뉴스(Albertus Magnus)가 크게 기여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스승인 알베르토와 제자인 토마스의 이름은 그들의 위대한 저작들 속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으로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알베르토와 토마스의 견해 사이에는 많은 접촉점이 있으나 그들은 각자 서로 다른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토마스의 견해는 알베르토의 그것보다 더 비판적이었다. 알베르토에 비하여 토마스는 자신이 다루는 소재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토마스의 문제는 간결하고 분석적이며 종합적이다.

그의 분석력과 종합력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마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산으로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다. 알베르토와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철학과 신학에 이끌어 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그의 열정으로서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토마스는 알베르토의 작업을 계속 추진시켜 나아가 걸작을 완성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 토마스에 있어서 철학의 논리적 형이상학적 기초는 알베르토에 있어서보다는 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토마스는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식의 전체를 통일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철학에 있어서 토마스는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결론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토마스는 권위보다는 경험이나 이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여 자신의 저작을 이루어 놓았다. 그리하여 경험적인 세계를 사유의 기초와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신학에 있어서 토마스는 계시의 자율성을 선포하고 있다. 자연질서와 초자연 질서가 그 동일한 근원으로서 진리인 신 자체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이 양자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자연과 초자연, 신앙과 이성을 조화, 종합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13세기의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학파와는 달리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중요한 기본학설을 그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에 수용하고 있다. 인간은 활동적인 지성의 자발적인 힘으로써 감관에서 제1개념들을 끄집어내어 신의 특별한 도움이 없이 그것들의 도움으로 제1의 기본명제에 대한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형상학은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에 근거하고 있다. 가능태(potentia)와 현실태(actus)의 이론을 토마스는 형상(forma)과 질료(materia)에 응용할 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essentia)과 현존(existentia)의 관계에도 적용시키는데, 이때에 존재의 제한은 본질의 가능성 속에 근거하고 있다. 개별화(individuation)의 원리가 되는 것은 시공적으로 규정된 질료이다. 불멸하는 정신영혼은 육체의 유일한 본질형상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유한 본질의 원리인 정신영혼과 질료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보다 더 확실한 지식, 증명할 수 있는 지식으로써 피조물로부터 시작하여 신에게로까지 도달하게 되며, 신은 제1의 원동자(原動者), 최고의 원인,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존재이며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유(有, esse subsistens), 순수 현실태(actus purus)이면 모든 질서와 목적성의 원리가 된다. 신개념의 이러한 특징들은 오로지 유비적인 것이다.

인간의 목표는 영원한 행복이고 이것은 피안적인 삶 속에서 하느님을 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인식론에 있어서 토마스는 의지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윤리와 사회이론에서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을 그리스도교적, 아우구스티노적 태도와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스토아(Stoa)적 신, 플라톤적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덕은 피조물적 존재와 그 목표방향의 표현으로서 신적인 법의지에 상응하는 이성질서를 엄수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충동성은 스토아철학에서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부와 사유재산은 근본적으로 국가법률의 자의(恣意)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공동선(bonum commune)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가공동체는 자연적 인륜질서의 표현이다. 그 권위는 교회로부터 유래하지 않고 자연적 인륜법에 근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인간이 현세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존재만은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또한 교회의 지체로서 현세를 초월하는 피안적 질서로 향해져 있다는 것이다.

2. 신학과 철학의 종합 : 토마스에 있어서 신학과 철학의 종합은 기본적으로 신학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종합을 이해하려면 토마스가 특별히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서두(I, q. 1)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아야 한다. 토마스가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주관적 신앙이 아니라 성서에 담겨 있는 ‘거룩한 가르침’의 객관적 내용과 신앙고백의 내용들이다. 이 내용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하여 알려진 것이다. 계시에는 인간의 구원에 필수적인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고 인간의 이성은 계시를 불확실한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다. 계시는 부분적으로는 특별한 ‘초자연적’ 지식을 중개하고 자연적 인식의 확실성을 중개해 준다. 토마스는 이러한 ‘거룩한 가르침’을 거리낌 없이 학문이라고 한다. 표면상으로 볼 때 신학은 그 원리의 확실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비학문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앙개조(箇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에 의하면 신학 이외의 학문, 예컨대 광학(光學)에 있어서 그 원리들이 다른 상위의 학문(예컨대 수학)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듯이 신학도 신과 성인들의 지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속에 있는 신앙의 명제들은 확실한 진리인 것이다. 계시는 객관적으로 이러한 의존관계를 중개해 주고 있다(제2항).

계시는 어느 내용이 신학적으로 취급될 수 있고 신학이 하나의 학문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계시 가능한 것’(revelabilia)도 신학에 속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사실로써 계시된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토대로 하여 새로이,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구원에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은 다른 학문의 인식이나 사회적 규범들이 구원을 위해 중요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계시에 의하여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제3항). 신학자가 이러 저러한 사실의 명제만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불충분한 것이다. 신학에서도 이성적 사회적인 파악, 내용적 근거 제시, 참된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피는 통찰이 요구된다. 캔터베리의 안셀모(Anselmus, ?∼1109) 이래로 신앙의 지성(intellectus fidei)이 신학의 목표로서 유효한 것이고 학문으로서 신학의 의미에 부합하는 것이다.

토마스에 있어서 이러한 의미의 목표는 신앙과 지식이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이론속에 나타나고 있다. 원래적인 의미에서 이미 ‘알려진 것’은 동시에 ‘믿어질 수 없다’(II-II, 1, 5). 여기에서 지식은 신앙을 배척한다. ‘지식’이란 분명한 원리를 근거로 하는 관찰 혹은 통찰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지식이란 자연이성이 확실히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지칭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에서 본래적으로 학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의 작품 즉 자연이성의 업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원리적으로 통찰할 수 없는 신앙의 내용에서 신학분야의 한계점이 그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으로 신학은 인간 노고의 영역에 속하며 그 원리들이 타당한 한에 있어서 비신자도 거기에 참여하고 종사할 수 있다(제6항). 왜냐하면 신학의 지식도 인간의 이성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은 계시와 은총에 선행하는 것으로서 전제가 된다는 말이다. 토마스는 신학과 철학의 조화 내지는 종합을 꾀함에 있어 늘 신학의 우위와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학의 안정성은 전적으로 계시에 근거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적 이해의 나약성으로 말미암아 신을 직관하지 못하므로 결국 신학은 철학과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때에 신학은 철학적 논증을 사용하게 되어 철학을 ‘시녀’로서 맞아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철학이 그 자립성과 권리를 상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용적으로 신학에 종속되는 철학은 별 쓸모가 없다. 토마스에 의하면 신학은 한 가지 점에 있어서 특별히 철학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즉 철학으로 하여금 ‘계시 가능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 학문의 기초 이외에 실천이성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성이 신의 인식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출발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에 의하면 이성 속에는 ‘자연욕구’(desiderium naturale)가 작용하고 있어 인간적 사유의 제한을 넘어 자신의 능력을 충만시키는 대상을 진실로 볼 경우에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교도 대전≫(Summa Contra Gentiles)의 긴 부분(III., c. 25-50)에서 토마스는 철학자의 사유가 위에 말한 역동성에 상응하지 못하여 좌절하게 되고 침체에 빠지게 됨을 지적하고 있다. 마침내는 신앙이 비로소 사유를 불안과 궁핍에서 해방시켜 결말지어 준다는 것이다.

3. 진리의 문제 : 서양 중세에 있어서 진리에 관한 근본문제는 판단진리와 존재자와의 관계이고, 인간적 사유와 관계하며 신 속에 그 최종근거를 가지는 이른바 존재의 진리의 해명이었다. 진리를 존재자의 존재 규정으로서 특징지은 것은 아비첸나(Avicenna, 980∼1037)이다. 아비첸나는 신의 존재양식을 최고 존재자로서 규정하며, 이때에 존재는 바로 그의 본질이므로 필연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이 순수진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토마스의 견해에 있어서 인식은 판단과 함께 완성된다. 판단이란 개념들을 결합시키고 분리시키는 지성(intellectus componenes vel dividens)이다.

어떤 사태가 현실적으로 결합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는 대로 한 판단이 본질의 개념들을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된 것이다. 판단 성질인 이러한 진리 속에 원래적 의미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신학대전≫ I, 16, 14, 2). 왜냐하면 “진리란, 있는 것을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므로 진리를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짧게 정의하고 있다. “진리는 사물과 지성 사이의 일치이다”(veritas est adaequatio rei et intellectus, ≪신학대전≫ I, 16. 1). 토마스는 감각지각의 진리와 본질개념의 진리를 가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감각과 정신은 그 대상 자체로부터 적접적으로 인식의 내용을 전달받기 때문이다(≪신학대전≫ I, 17, 3).

4. 존재의 문제 : 존재(esse)란, 그것을 통하여 어떤 존재자(ens)가 있는 그러한 완전성이다. 존재는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존재자는 존재를 소유하거나 존재자이기 때문에 무(無)와 구별된다. 토마스에 의하면, 존재는 무에 모순되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무는, 헤겔(Hegel)이나 하이데거(Heidegger)에 있어서와는 달리 단지 존재의 결핍으로 이해될 뿐이다. 존재는 현실태의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든 완전성의 무한한 충만 혹은 모든 있는 것, 있을 수 있는 것의 무한한 충만을 의미한다(≪신학대전≫ I, q. 4a lad 3; q. 4a 2). 우리가 만나는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존재를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본질의 정도에 따라 존재에 참여(participatio)하는 한에 있어서 존재자인 것이다. 토마스에 있어서 존재는 가능태에 기초해 있는 현실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완전한 자(inter omnia perfectissimum)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완전성은 이 완전성이나 존재의 현실태에 포함되어 있다(≪신학대전≫ I. 4, 2).

그리하여 존재는 모든 다른 완전성을 자신 안에 일치시켜 지니고 있으며 다른 모든 완전성 중에서 최초의 것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존재를 토마스는 ‘존재의 현실태’ (≪신학대전≫ I, 3. 4ad 2) 혹은 ‘존재자체’(ipsum esse)라고 부른다. 존재자가 존재에 참여한다는 토마스의 사상의 근저에는 신 플라톤 철학의 ‘참여’ 개념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마스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신의 이름은 ‘거기 있는 자’(≪신학대전≫ I, 13, 11)로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신은 … 그의 존재이다”(I, 3, 4c). 즉 존재가 바로 신의 본질이다. 이것은 “나는 곧 나다”(출애 3:14)라고 한 신의 이름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토마스의 존재론은 질송(Gilson)이 말한 바와 같이 결국 ‘출애굽기 형이상학’으로 환원된다. (朴鐘大)

[참고문헌] Walter Brugger, Philosophisches Worterbuch, Freibung, Basel, Wien 1967 / Wilhelm Keilbach, Einubung ins philosophische Denken, Munchen 1960 / De Uries. Lotz, Philosophie im Grundriss, Wurzburg 1969 / Sacramentum Mundi, Theologisches Lexikon fur die Praxis, Band 3, 4. / H. Fries(Hrsg), Handbuch theologischer Grundbegriffe, Band 4, Munchen 1962 / Emerich Coreth, Metaphysik als Aufgabe, Innsbruck 1958 / Rudolf Gumppenberg, Sein und Auslegung, Bonn 1971 / James Hastings; (ed),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 Edinburgh, New York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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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라] Thomas Aquinas [관련] 토미즘

성인. 사제. 교회학자. 축일은 1월 28일이다.

1. 생애 :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 나폴리에 가까운 로카세카(Roccasecca) 성에서 1224년말이나 1225년초에 태어났고 부친은 아퀴노의 백작이었다. 다섯 살 때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 학생으로 그의 학문을 시작하였다. 1239년 14세에 나폴리대학으로 옮겨, 1244년에는 나폴리의 도미니코 탁발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245년에 파리로 가서 1248년까지 있었고, 같은 해에 알베르토(Albertus Magnus)를 따라 쾰른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이때에 그는 스승 알베르토의 영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자기 철학이나 신학적 도구로 받아들였다. 1252년부터 파리에서 성서와 롬베르투스의 명제집(命題集)을 강의하였고, 1254년에 교수 자격인 박사학위를 받고 1259년까지 파리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1268년까지 교황청 부속연구소에서 후에 교황이 될 분들에게 신학을 강의하였다. 1268년 다시 파리로 돌아가서 1272년까지 강의하면서 아베로이스파 학자들과 논쟁을 하였고, 이어 나폴리로 돌아와서 도미니코회 총회 신학원을 설립하려 했으나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이 소집한 리용 공의회에 참석하러가던 중 로마와 나폴리 중간에 있는 포사누오바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7일에 선종하였다.

그의 생애는 연구와 저술과 교수생활로 일관하면서 진리 연구와 옹호를 위해 일생을 바쳤고, 깊은 영성에 충만한 삶이었다. 토마스가 죽고 난 뒤 그의 가르침은 파리나 옥스퍼드에서 한때 단죄되었으나 뒤에 다시 복권되었고, 1323년에 성인품에 올랐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정통성의 시금석처럼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그 뒤 20세기 토미즘(Thomism)이 부흥되기까지 거의 무시된 상태로 있었다.

2. 사상 :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먼저 피조물의 자율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적 견해가 신학안에서의 인간 이성의 위치,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전능, 즉 은총과의 관계, 정치 사회에 관한 그의 사상을 결정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에게서 독립적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자율적이다. 창조주의 활동은 피조물의 활동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피조물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조물들이 자율적으로 존재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활동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로운 것은 하느님의 활동에도 불구하고도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활동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은 자유가 없는 피조물들의 행동은 인과적(因果的)으로 다른 피조물들에 의해 결정되게 하고, 자유를 가진 피조물들의 행동은 타자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행동들은 결국 하느님에 의해 일어나는 피조물들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자유란 하느님과의 어떤 거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하느님 능력이 드러남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토마스가 하느님에 대해 가진 사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주안에 있는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창조주이시다.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의 어느 유(類)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피조물을 서로 대조적인 두 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떠한 피조물도 하느님에 필적될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피조물에 원인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하느님에게 원인을 돌리는 식으로 서로 대조시킬 수가 없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도구로서 행동한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지(認知)한다는 것은 곧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구별들을 함께 초월하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느님은 ‘우연적 존재들’과 따로 구별되어 있는 ‘필연적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절대적 근원으로서 ‘필연적 존재’이다. 우연적 존재들은 소멸될 수 있고, (질료적) 가능성이 (형상에 의해) 현실화된 것이다. 우연적 존재들이 쉽게 파괴될 수 있는 것은 이 존재들의 질료성(質料性) 때문이다. 어떤 능동자가 우연적 사물들의 형상(形相)을 다른 것으로 바꿈으로써 파괴될 수 있는 것이다. 질료(質料)는 형상적(形相的 또는 可知的, 現實的)이 아닌 유형적 사물들 안에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것이 곧 개체화의 원리이고, 이 원리에 의해 동일한 형상 또는 동일한 가지성(可知性, intelligibility)을 가진 다수의 개체적 사물들이 있게 된다. 개체 사물들은 이들이 가진 물질성 때문에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가지적인(intelligible)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개체 사물도 한 단어의 의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개체적 사물들을 감각 지각으로만 안다.

천사들은 질료와 형상의 합성이 아닌 존재들로서 질료를 현실화 하지 않는 자존적 형상들(subsistentforms)이다. 이런 존재들은 개체도 없고 멸하지도 않으며, 그 자체로 가지적이지만 우리들에겐 가지적이 못 된다. 이는 우리의 인식양식이 피조물을 통해서만 작용하고, 또 상상(imagination) 안에서 물질적 상징들의 의미만을 이해하도록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양식으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물질적 사물들의 형상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인식활동은 개체 사물들의 형상들을 지성의 대상인 가지성에로 끌어올리는 일이고, 정신이란 이러한 형상들이 가지적으로 또는 지향적으로(intentionally) 존재하는 곳이다. 이러한 작용을 토마스는 추상(抽象, abstraction)이라고 한다. 추상이란 물질 안에 잠겨 있던 개체적 형상들이 상징들(symbols)의 의미(meanings)가 되게 하는 활동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들을 이용하여 진리를 파악하고, 선언으로 표현된 판단을 내린다.

피조물들 중에 큰 부분(즉 천사의 세계)이 우리의 이해를 넘어간다고 하면 하느님은 더욱 더 우리에겐 알 수 없는 분이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다. 토마스가 신 존재 증명에서 논증하고자 하는 바는 경험 세계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존재(esse)에 관한 어떤 형태의 근본적 문제에로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즉 왜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하느님에 관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란 말을 사용하게 하고 의미를 주는 피조물들이 가진 근본적 문제성을 안다는 것과 같다. 하느님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분이 있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라는 것이다(이것은 대답이고 동시에 문제이다). 이 밖에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은 이러저러한 분이 ‘될 수 없다’는 것뿐이다.

하느님 안에는 질료와 형상의 구별도 없고, 하느님은 개체도 아니며 어떤 유에 속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이란 천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존재 안 할 수도 있다. 천사들의 존재들이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들을 창조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천사들의 본질(essence)도 그 존재에 비하면 가능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에겐 본질과 존재의 구별이 없다. 이러한 구별은 단지 피조물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다. 하느님에겐 순순한 현실태만 있고 어떠한 가능태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퀴나스가 말하는 창조주 하느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범주(範疇)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바로 존재 자체이시라고 한다면, 피조물은 존재 자체에 의해 존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이 아니라 존재를 말하고, 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이 아닌 성체(聖體)의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 이론을 말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빵의 존재가 그리스도의 존재로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어느 한 장소에나 정한 시간 안에 존재하실 수 없다. 만물을 지탱하시는 하느님은 어느 장소에 있는 어느 것에나 현재로 계신다. 그리고 하느님이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그것을 말하거나 생각하는 때는 어느 때나 진실이 될 것이다. 이렇게 영원성이란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끝이 없는 지속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삶에는 전후관계란 없다. 그분은 먼저 하나를 행하거나 알고, 다음에 다른 것을 행하거나 아는 일이 없다. 물론 그분이 행하고 아는 대상들은 시간 안에 서로 연속될 수 있다. 하느님의 전능이란 당신이 뜻하는 바를 무엇이든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예컨대 시작도 끝도 없이 시간 안에 우주를 창조하는 일 등). 그러나 사각원이나 과거를 변경시키는 일 등은 하느님의 권능에서 제외된다. 하느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악을 행 할 수가 없으시다. 악이란 존재의 부재 혹은 결핍이고 한 사물의 구체적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기대되는 것의 결여(缺如)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토마스는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바로 이 이유 때문에 역시 내재적임)을 주장하고 나서, 그러면 어떻게 우리 언어가 그분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토마스는 은유적 언어(metaphorical language)[예컨대 “주님은 나의 목자시다”와 같은 말]와 자구적(字句的) 사용(literal usage)[예컨대 “하느님은 선하시다”와 같은 말)을 구별한다. 은유적 표현은 부정적 표현과 비교될 수 있으나 자구적 사용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토마스는 자구적 표현에는 유비적(類比的) 말(analogical term)을 인정한다. 유비적 언어란 체계적으로는 모호한 것이 지만 일의적(univocal) 언어도 아니고, 다의적(equivocal) 언어도 아니다. 내가 “친구를 사랑한다”, “좋은 과실을 사랑한다”,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라고 할 때에 ‘사랑’이란 의미는 서로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들이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선하다’라는 말을 할 때에도 ‘선하다’라는 말이 항상 사용되고 있던 그 문맥의 의미와 관련을 맺으면 그 의미를 하느님의 신비에까지 늘려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 선성의 의미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유비(類比, analogy)란 언어 사용의 이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유비적으로 어떤 말을 사용할 때에 그 말이 뜻하고 있는 바를 모두 알고 있는 것같이, 또는 그 말로써 하느님에 대한 술어로 간단히 언급할 수 있는 것같이 그렇게 그 말을 다루지 말라는 경고이다.

토마스는 인간에 대해 영과 육의 이원론을 배척한다. 물질적 사물에서는 실체적 형상이 그 사물의 존재 원리로서 그 사물을 ‘있게’ 하고 ‘행동’하게 하고, 그 사물이 ‘무엇이 되게’ 한다. 반면 질료는 가변성의 원리로서 존재자에 대해 가능적인 것이고, 지금 그 사물이 무엇이 아닌 상태이다. 생명체에 있어서는 그 생명(혹은 혼)이 그 생명체의 형상이고, 그 생명체의 살아 있는 그것이 곧 그 생명체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죽은 고양이는 이미 고양이가 아니며, 더욱이 고양이 혼이 없는 육체만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실체이다. 어느 동물이고 그 모든 생명활동은 그 동물 혼의 활동이고, 비이성적 동물들에게는 그 동물 혼의 육체적 활동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어떤 활동들(예컨대 사고하는 것, 선택하는 것 등)은 그 자체로 보면 육체 안에 있는 과정이 아닌 인간 영혼의 활동들이다. 물론 이런 행동들이 상상이나 감각 등 육체적 행동들의 도움 없이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보면 육체 안의 과정은 아니다.

이렇게 인간의 영혼은 육체로 하여금 인간 육체의 작용을 하는 인간 육체를 만드는 일 그 이상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를 초월하고 그러한 활동들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이유 때문에 육체가 존재하기를 그치고 시체가 되더라도 영혼은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면 인간 육체에 혼을 불어넣는 일 없이 홀로 있는 영혼은 무엇과 같을까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설명이 궁해진다. 그러나 그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그 자체로 인간이 아니며, 부활이라는 계시 교리가 없다면 인간에게 있어 죽은 자의 소생이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

비이성적인 것들은 그들을 존재하게 하고 그들의 본성을 결정한 자연적 원인들 때문에 자기들의 목적과 자기 자신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본성적으로 가진 형상뿐만 아니라 정신 안에 지향적으로 가진 형상들에 의해서도 행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고등동물들과 같이) 어떻게 자기 목적들에 도달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무슨 목적들을 지향할 것인가도 선택할 수 있다. 정치적이고 이성적 동물인 인간 본성은 자기가 목적으로 하는 어떤 선(善)들이 자기의 완성을 위해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인간은 가끔 더 큰 선들을 희생하고 더 하급의 선들을 우리 마음이나 정신 안에 간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는 경우 인간은 결국 자기 완성이나 행복에 이르는데 실패한다.

윤리덕(倫理德)들(정의, 용기, 감정의 절제 등)은 인간이 참으로 인간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성향(性向)들로서 교육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덕행들은 선행에 대한 실천적이고 지적인 덕행인 분별력(prudentia)에 의존한다. 이 분별력은 역시 습득된 덕으로 무엇을 행하여야 하고, 어떤 목적으로 지향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게 해 주는 성향이다. 덕행론(德行論)에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고 있지만, 정치적 동물로서 사회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은 또한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도록 불림을 받고 있다는 면에서는 그와 다르다. 이러한 하느님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는 은총으로, 저 세상에서는 영광 속에 누리게 되어 있다.

은총이란 일차적으로 우리가 소유한 본성이다. 우리로 하여금 성삼위이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는 인간의 정치적 본성과 다르지 않으나 이 본성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상응한 윤리덕들이 있는 것과 같이 은총을 받은 우리 본성에 상응한 덕들이 있다. 전자는 교육으로 습득된 것이지만, 후자는 습득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infused) 덕들로서 신덕(信德) · 망덕(望德) · 애덕(愛德)이다. 신덕은 하느님의 말씀을 지성적으로 원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성령이신 사랑을 함께 나누는 망덕과 애덕의 전제가 된다. 죄로 인한 타락 때문에 인간은 죄를 극복하지 않고는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며 충만한 인간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덕들도 지속적으로 합당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덕 없이는 애덕도 없다. 주요 저서로는 ≪신학대전≫(神學大典, Summa Theologiae), ≪대이교도 대전≫(對異敎徒大典, Summa Contra Gentiles), ≪명제론집주해≫(命題論集註解, Scriptum super Libros Sententiarum), ≪영혼에 대하여≫(De Anima) 등이 있다. (⇒) 토미즘 (朴石熙)

[참고문헌] M.D. Chenu, Introductions a l’etude de saint Thomas d’Aquin, 1950 / F.C. Copleston, Aquinas, 1955, (강성위 역, 토마스 아퀴나스, 바오로서원, 1968) / E. Gilson, The Christian Philosophy of St. Thomas Aquinas, 1957 / A.C. Kenny, Aquinas; (ed.), Aquinas: A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1969 / J.A. Weisheipl, Friar Thomas D’Aquino, 1975 / G.K. Chesterton, Saint Thomas Aquinas, 1933, (박갑성 역, 성 토마스論,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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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 켐피스 [라] Thomas a Kempis

Thomas a Kempis(1380∼1471). 독일의 사상가. 아우구스티노 수도참사회원. 종교저술가. 원명 Thomas Hemerken, 일명 Thomas Hammerlein. 네덜란드 라인강 하류의 도시 켐펜(Kempen)에서 태어나 1392년부터 데펜타에서 연학(硏學), 1398년 20명의 동지와 함께 사자생(寫字生)으로 라데와인즈의 집에 거주(공동생활 형제회의 기원), 그 정신적 지도하에 있다가, 1399년 즈월레(Zwolle) 부근 아그네텐베르그(Agnetenberg) 산에 있는 윈데스하임(Windesheim)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1406년 착의식(着衣式)을 올리고, 1413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위트레히트(Utrecht)의 성무금지 중에 그는 자기 수도원 수사들과 함께 1429년부터 1431년까지 조이데르해(海)에 면한 루넨케르크에 체류하고 있었다. 1431년 당시 아른하임(Arnheim)의 수도원장이던 형 요안네스의 병석(病席)에 임종 때까지 1년여 체류하였다. 그 후 1425년과 1448년에 각각 부원장에 임명되었고, 이 수도원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이 수도원에서 설교와 저술과 필사(筆寫)에 종사, 정신적 지도자로서도 뛰어난 활동을 하였다. 저서로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기도와 묵상≫(Orationes et meditationes de Vita Christ), ≪Vallis Liliorum≫, ≪Hospitale Pauperum≫ 등이 있으며, 모두 경건한 정신에 넘치는 금욕적 · 교화적 · 시적 · 전기적 작품들이다. 그의 유해는 2, 3개소로 옮겨진 후 1897년 즈월레의 성 미카엘 성당에 안치되었고, 그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의 명성은 주로 그를 ≪그리스도에 대한 모방≫(Imitatio Christi)의 저자로 보는 설(說)에 힘입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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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베켓 [원] Thomas Beket [관련] 베케트

⇒ 베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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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 [원] Thomas More [관련] 모어

⇒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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