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보 [한] 申太甫

신태보(1768~1839).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그의 인적 사항(人的事項)은 기록상에 자세히 나타난 것은 없으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그는 입교하기 전부터 마귀의 유혹을 뿌리치고 굳은 신앙을 간직해 왔다고 한다. 박해로 인해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한국 교회의 재건을 위해 중국 북경 주교에게 신부 영입을 위한 서한을 보내고, 자기 친척인 이여진에게 여비를 마련해 주어 북경을 왕래케 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는 한편, 경상도 · 전라도 · 경기도 등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니면 전교하여 많은 사람을 입교케 함으로써,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 지게 되었다. 이에 1827년에 상주(尙州)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진영(鎭營)에 수감 되었는데, 혹독한 형벌에도 끝내 배교치 않아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곧 집행되지 않고 13년간이나 옥중생활을 하다가 1839년 5월 29일 70세의 고령으로 전주 감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그가 감옥에서 쓴 옥중수기(獄中手記)는 당시의 옥중생활의 진상을 전하는 동시에 그의 불요불굴의 신앙심이 후세 사람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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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조당 [한] 神親阻擋 [관련] 혼인장애

세례성사에 의해서 발생하는 혼인무효장애의 하나. 세례를 받은 자와 세례를 준 자 및 대부모간에 혼인을 금하는 교회법적 조건(구 교회법 제1079조, 제768조). 지금은 이 장애가 교회법에서 삭제되었다. (⇒) 혼인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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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 [한] 神親 [관련] 대부모 신자2

영적(靈的)인 인척관계(姻戚關係) 즉 성세성사(聖洗聖事)와 견진성사(堅振聖事)로써 하느님 안에서 맺어진 인척관계로 대부모(代父母)와 대자녀(代子女), 그리고 성사를 집행한 신부(神父)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옛 교우들은 위의 의미 이외에 대부모만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했고 또 대자녀(代子女)를 의미하는 말로는 신자(神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 대부모, 신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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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본당 [한] 信川本堂

소재지는 황해도 신천군 신천읍 사직리(黃海道 信川郡 信川邑 社稷里). 신천읍에서 50여리 떨어진 산골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斗羅面 淸溪洞)에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방문하여 공소를 열고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행한 것은 1864년이었고, 청계동본당이 개설된 것은 1898년이었다. 이 때 신천읍에도 청계동 본당 관할 하에 들어갔다. 1900년 신천읍의 신자수는 60여명을 헤아렸다. 1912년 청계동본당이 폐지됨에 따라 신천읍 공고는 1921년부터 재령(載寧)본당 관할 하에 들어갔다. 1930년 신천면 척서리(信川面 滌署里)에 성당이 세워지고 재령본당의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가 초대 본당사제로 부임함으로써 신천본당은 발족되었다. 신 신부는 1931년 해주(海州)본당으로 전임되고, 강원도 약사리(藥司里)본당에서 전교하던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2대 사제로 부임하였다. 황해선(黃海線) 철도의 개통과 함께 인구 급증으로 1933년 읍내 신자수가 400여명이나 되었다. 1935년에 부임한 3대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는 본당을 사직동으로 이전, 1936년에는 미화(薇花)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37년 4대 신인식(申仁植, 바오로) 신부가 부임, 1938년 동성(東星)신학교 교장으로 전임되었고, 5대 박원영(朴垣英, 프란치스코) 신부는 1941년 충남 당진(唐津)본당 사제로 전임되었다. 그 후임으로 곡산(谷山)본당 사제로 있던 구천우(具天祐, 요셉) 신부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태평양 전쟁이 발발, 가중되는 일제 탄압 하에 어렵게 성당을 운영해 나갔다. 8.15후 북한 당국에서 유치원 건물을 접수하려는 속셈을 눈치 챈 구 신부는 1946년 유치원을 자진 폐원, 그 건물을 성당으로 개축함으로써 접수당하는 것을 모면하였다.

1949년 2월 구 신부는 어느 학생에게 월남을 알선해 준 일과 성당의 등사기로 반공비라를 제작 살포한 일 등의 혐의로 신천 내무서에 연행되어 신문을 받게 되었다. 신문 중 용변을 보러갈 허락을 얻은 구 신부는 내무서 벽의 뚫어진 틈으로 기어 나와 탈출하는데 성공, 1주일 후 취야(翠野) 공소에서 해주본당의 한윤승(韓允勝, 필립보) 신부의 도움을 얻어 옹진(甕津)으로 월남, 배편으로 인천에 상륙, 서울에 도착하였다. 구 신부는 1950년 11월 유엔군 북진으로 자유를 찾은 신천으로 가서 신자들과 읍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감격어린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유엔군의 후퇴 때 구 신부가 다시 월남함에 따라 신천본당은 목자 없는 침묵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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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본당 [한] 新站本堂

1936년 만주 길림성 액목현 신참시(滿洲 吉林省 額穆縣 新站市)에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베네딕토. 명월구(明月溝)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의 교우수는 222명이었고, 초대 주임으로 시래플(C. Schrafl, 周)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 사제관, 학교교사 등을 건축하는 한편 교세 신장에 중심을 두고 사목하였다. 그 후 루드비히(S. Ludwig, 柳) 신부가 2대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946년 5월 26일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살해되고 또 성당을 비롯한 교회재산을 몰수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었고 이 후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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