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한] 三一運動

1919년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을 기해 일제(日帝)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거족적으로 일어난 민족독립운동. 기미(己未) 독립운동이라고도 한다. ① 배경 : 1905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으로 조선침략의 발판을 마련한 일제는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무자비하고도 철저한 탄압을 가하며 1910년 한일합방을 강행, 조선을 강점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의병운동의 잔존세력과 일부 애국계몽운동 세력들은 만주(滿洲)를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나머지 애국계몽운동 세력들, 즉 민족주의적 지식인종교인학생들에 의해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항일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소위 안악사건, 105인 사건 등을 조작, 이를 무력으로 탄압하고 아울러 1910년 회사령(會社令)을 선포하여 민족자본의 성장을 막았고, 1918년 토지조사사업을 완료한 수 토지를 수탈, 농민을 일인(日人) 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시켰으며, 농업자본가와 독립운동의 연결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 노동시간의 연장, 일인 노동자와의 임금차별 등을 적용하여 전 민중을 수탈하였다. 이러한 합방 후 10년 동안의 무력통치와 수탈정책으로 지식인, 농민, 노동자, 민족자본가 등 사회 각층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어 정치의식, 사회의식, 역사의식이 급격히 신장되었고, 여기에 1차 세계대전 종결 후의 민족자결주의라는 국제적 선전구호를 이용한 민족주의적 지식인종교인학생들이 항일독립운동의 봉화를 올림으로써 3.1운동은 일어나게 되었다.

② 발전과정 : 1919년 1월 고종(高宗)이 승하하였다. 일제의 무력통치와 수탈정책 아래 신음하던 민중들 사이에서는 일인들에 의해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어 한층 항일의식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때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인 학생들 600여명이 2월 8일 도쿄 간다꾸(神田區) 조선기독교 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고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체포되자 도쿄의 유학생들은 전원 귀국할 것을 제의, 속속들이 귀국하여 2.8독립선언사건을 국내에 알렸다. 이 사건은 3.1운동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에 접한 국내의 인사들은 지식인, 종교인, 민족자본가, 중소지주층 등 사회 각층을 대변하는 민족대표 33인을 정하고 전국적으로 조직을 갖춘 후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비무장, 무저항을 원칙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민족대표의 독립선언과 시위에 이어 이 운동은 도시노동자, 학생, 상인층에 의해 전국 주요 도시에 파급되어 3월 2일 서울에서 400여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3월 22일 남대문에서는 ‘노동자대회’라는 깃발을 든 800여명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으며 이후 각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시위가 전개되었다. 주요도시에서의 시위는 다시 농촌으로 확산되어 직접적 수탈을 당했던 농민들에 의해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1년간이나 계속되었다.

③ 결과 :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포와 시위에서 시작되어 전국 주요도시로, 전국 주요도시에서 다시 전국 농촌으로 확산되어 1년간 지속된 3.1운동은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종식되었다. 민족대표 33인은 최고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일제의 회유책으로 형기만료 전에 모두 석방되었지만 시위에 참가했던 민중들의 피해는 대단히 컸다. 약 200만명의 민중이 시위에 참가하여 7,500여명이 피살되고 4만 6,000여명이 검거되었으며 1만 6,0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또한 715호의 민가가 불타고 45개소의 교회와 학교가 파손되었다. 이에 대해 일제의 피해는 피살자 8명, 부상자 158명, 경찰서, 헌병대, 면사무소 등 278개소의 관공서가 파손되었을 뿐이다. 무저항 비무장의 시위 민중에 대한 정규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 잔혹한 고문 등은 식민지통치사상 그 유례가 없는 것이었고 특히 1,000여명의 주민을 교회 안에 가두어 놓고 불을 질러 학살한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제의 만행이었다.

④ 의의 : 3.1운동은 민족독립을 성취시키진 못하였으나 민족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첫째 3.1운동의 결과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는 군주주의(君主主義)를 부정한 우리 나라 최초의 공화주의(共和主義) 정부였고, 또 3.1운동 이후 민족독립운동이 민중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의(國民主義) 운동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3.1운동은 근대 민족주의운동의 시발이었다. 둘째 3.1운동은 비무장, 무저항을 원칙으로 해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막대한 희생을 치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만주지역에서의 무장독립운동을 유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독립운동론에 있어서도 만주와 연해주를 기점으로 항일전을 펴자는 독립전쟁론, 외교적 수단으로 독립을 얻자는 외교독립론 등 크게 두 가지 방법을 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3.1운동을 계기로 다수 민중들의 의식이 크게 각성되었고 이것은 3.1운동 이후 민족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넷째 3.1운동은 당시 피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끼쳐 중국의 5.4운동이 일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또 인도의 독립운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⑤ 3.1운동과 천주교 : 일제치하의 조선천주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독립운동을 단죄하였다. 그 당시 프랑스 주교에 의해 다스려지던 조선교회는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했고, 따라서 3.1운동에도 교회의 공식적인 참여는 나타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1908년 천주교인 전명운(田明雲)과 개신교인 장인환(張仁煥)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친일파 외교고문 스티븐슨을 사살했고, 1909년 안중근(安重根, 토마스)이 하얼삔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오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는 등 많은 천주교인들이 개인자격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3.1운동 때에도 이와 같이 많은 천주교인들이 시위에 앞장을 섰는데 용산예수성심학교 및 대구의 유스티노신학교 학생들이 학교당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시위에 참가하여 학교가 잠시 폐쇄되었고, 서품식이 연기되기도 하였다. 또한 안성, 강화, 해주, 수원, 대구, 안악 등 전국 각지의 본당에서 천주교인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특히 간도(間島)지방에서는 천주교인들의 주도로 시위가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방우룡(方雨龍)의 지도 아래 의민단(義民團)과 같은 천주교신자로 구성된 무장 독립운동단체가 조직되어 상해 임시 정부에서 안명근(安明根, 안드레아)이 파견되었다. 공식기록으로 보면 3.1운동으로 투옥된 천주교인은 53명에 불과했지만, 천주교인들은 3.1운동이 종식된 후에도 각종 기도회, 신사참배 반대운동, 민중계몽운동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많은 천주교인들이 개인자격으로 3.1운동을 비롯한 민족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치하의 천주교회의 일부지도층에서는 정교분리의 원칙 아래 민족독립운동을 백안시 한 것은 역사상 큰 오점이었다.

[참고문헌] 姜萬吉, 韓國現代史, 創作과 批評社, 1984 / 崔奭祐, 韓國敎誨史의 探究,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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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대축일 [한] 三位一體大祝日 [라] Sollemnitas Sanctissimae Trinitatis [관련] 삼위일체

믿을 교리로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신(聖神)의 세 위격(位格)으로 되어 있다는 삼위일체를 특별히 기념하는 날로 성신강림 대축일 후 첫 번째 일요일에 지켜진다. 4세기경 삼위일체 이단설을 주장하던 아리우스파에 대한 교회의 반박에 그 기원이 있으며, 리에즈(Liege)의 주교 스테파노(Stephanus, 재위 : 903-920)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몇몇 지역에서는 대림절 직전의 일요일에 기념되기도 하였다. 특별히 영국에서 널리 지켜졌는데 이는, 성심강림 대축일 후 첫 일요일에 캔터베리 대주교로 축성(祝聖)된 성 토마스 베케트(St. Thomas Becket, 1118-1170)가 바로 그 날을 영국에서 삼위일체를 기념하는 축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334년 교황 요한(Joannes) 22세에 의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이날이 교회에 도입되어, 1910년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에 의해 대축일로 선포되었고, 전세계 모든 교회가 의무적으로 이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전례문은, 프랑스의 어떤 지방에서 작성된 것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334년에 비로소 교황청에 의해 인가되었다.

삼위일체 대축일은, 유일하신 하느님은 3위,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신다는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에서 유래하였다. 하느님의 유일한 생명이 이 삼위에서 전개된다. 성부는 자신 안에서 자기와 본질이 같은 영원의 ‘말씀’이신 성자를 낳고 이 2위에서 창조되지 아니한 영원한 사랑이신 성령이 발생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본질의 일체성(一體性)은 알 수 있으나 3개의 하느님의 위격의 차이는 파악할 수 없으며 다만 신앙으로써만 인간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생명의 신비를 인정해야 한다. 바로 이 삼위일체의 신앙이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한다. 무한하신 하느님은 유일하시나, 고독하신 목석과 같은 분이 아니시며, 받아들이고 내어주시는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하신 위격이시다. 그는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사랑이 넘쳐 그 사랑을 피조물에게 나누고자 하셨다. ‘나’라는 인간은 언제나 ‘너’라는 자와의 관계에서 살고 있으므로 하느님과 남을 사랑하는 것이 최대의 계명이라는 것과 인간 인격의 최고 완성은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날 모든 신자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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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논쟁 [한] 三位一體論爭 [라] controversia de Trinitate [영] Trinitarian controversy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이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라는 점과 공인된 용어의 부재(不在) 등으로 인해 초기 공의회들에서 발생한 논쟁. 오늘날에는 하나의 하느님이 3위격과 하나의 본체(혹은 본성)로서 존재하며, 그리스도 안에는 성자(聖子)라는 하나의 위격과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라는 두 본성이 있다고 교리서는 가르치고 있다. 이 결론은 방대한 신학적 논쟁의 결과로써 삼위와 그 본체에 관한 규정,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가 초점이 되었다. 삼위일체론에 관련된 오류설로는 ① 위격의 진정한 구분을 부정한 단일신론(單一神論, monarchianism), 반(反)삼위일체주의(antitrinitarianism), 일위론(一位論, unitarianism) ② 성자와 성신의 신성(神性)을 부정한 종속설(從屬設, subordinatianism) ③ 각 위격의 본성을 독립적으로 파악하여 본체의 일치성을 부정한 삼신론(三神論, tritheism) 등이 있다. 초기의 논쟁은 주로 처음의 두 가지에 집중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의 일신론에 본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성부(聖父)와 같은 힘과 영광을 지닌 위격의 존재는 교회역사의 처음부터 문제시되었다. 2세기말경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의 부분적인 신적 존재를 제시한 그노시스 이론으로 일신론의 극단적 형태인 단일신론이 반동적으로 출현하였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호교교부들의 가르침은 불명확하기는 하였으나 정통적이었고 그들의 후계자들에 의해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과 동질성을 옹호하고 성자의 영원성을 고백한다면 성부와 성자가 어떻게 구별되는가 하는 문제가 당시 큰 논쟁을 야기시켰고, 대학자 오리제네스(Origenes)는 삼위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종속론으로 기울었다. 그 이후 단일신론과 종속론 등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신적인 3위격이 구별되는 동시에 동등하다는 교리가 형성된 반면 안티오키아에서는 3위격의 차이점을 중시하였고, 이것은 아리우스(Arius)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이단으로 발전하였다.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가 소집되어 이 문제가 심각히 논의되었으며 아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성자를 ‘homoousios Patri'(성부와 동질)라고 한 니체아신경을 공포함으로써 정통교리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때로는 위격을 때로는 본질을 가리키는 말 ‘ousia’에서 형성된 ‘homoousios’는 성자는 성부와 동격이라는 단일신론 이단의 인상을 주었으므로 많은 주교들은 이 말을 기피하였으며 여기에 반(反)아리우스파가 생겨난 이후 50년간 이 ‘homoousios’를 둘러싼 논쟁이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81년 제 2차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렸다. 여기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의 맹활약으로 3위의 구별을 신의 내적 관계에서만 파악한 가파도치아학파의 주장이 관철되었으며 ‘homoousios’를 재천명하고 마체도니아니즘(Macedonianism)을 비롯하여 아리아니즘의 다른 형태들을 모두 단죄하였다. 이로써 하느님의 3위 안에는 하나의 신성한 본체가 있으며,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는 교리가 확립되었다.

그 뒤 니체아 콘스탄티노플신경의 ‘필리오케'(Filioque, 그리고 성자로부터) 문구가 3위 중 성신과 성부 및 성자의 관계에 관련하여 동서 양교회에서 쟁점이 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칼체돈 공의회에서 마무리 지어졌으나 동방교회에서는 이 문제로 계속 논쟁, 동방 대이교의 교리적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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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한] 三位一體 [라] Trinitas [영] Trinity

삼위일체는 하나의 실체(實體) 안에 세 위격(位格)으로서 존재하는 하느님적 신비를 지칭한다. 하느님의 육화(肉化)와 은총(恩寵)과 함께 그리스도의 3대 신비를 형성하는 이 삼위일체 신비는 내재적 삼위일체(內在的 三位一體, Trinitas immanens)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救世徑輪的 三位一體, Trinitas oeconomica)로 구별되어 파악된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구체적 인간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치 않고 영원으로부터 내재하는 하느님의 실재를 지칭하고,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인간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의 실재를 지칭한다.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이 삼위일체임을 제시하기 위해서 성서로부터 출발한다. 성서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계시사(啓示史) 안에서 증언되는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러한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와 별개의 실재가 아니라, 바로 이 내재적 삼위일체의 계시이다.

1. 성서상의 삼위일체 : ① 구약이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그늘이라고 신약에서 진술되고 있으나 (1고린 10:11, 갈라 3:24, 히브 10:1), 종교사적으로 구약은 엄격한 유일신(唯一神)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교부들이 일부 구약성서의 본문들이 삼위일체 신비를 암시한다고 간주한 바 있다. 창세기에서의 ‘우리’ 형식(창세 1:26, 3:22, 11:7, 이사 68), 아브라함에게 나타나는 세 남자들의 방문(창세 18:1-16), 민수기에서의 야훼의 삼중축복(민수 6:24-26), 이사야에서의 세라핌의 ‘거룩하시다’ 삼회찬미(이사 6:3) 등을 말하는 본문들이 삼위일체의 사전계시라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이러한 해석은 신빙성이 약하다고 오늘날 간주된다. 이러한 견해보다는 구약이 엄격한 유일신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충만함이나 외부지향의 계시를 지니고 있는 지가 주목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현존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특정 중개형식(仲介形式)의 명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약에서는 ‘야훼의 천사'(malakh Jahwe), ‘지혜'(Chokma), ‘하느님의 말씀'(dabar Jahwe), ‘성령'(ruah) 등의 실재에 대해서 기술이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바로 하느님의 직접적 작용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개념들이 ‘위격’을 그대로 지칭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신약에서 증언되는 삼위일체 신비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② 신약성서가 체계적으로 정립된 ‘내재적 삼위일체’ 교리를 명시적으로 내포하고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바로 하느님의 내밀한 본성의 계시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신비는 여기서 현시된다고 보아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거론되는 ‘하느님’은 구약에서 역사하는 하느님으로서 한 아들을 가지고 있으며, 성령을 부여하는 하느님을 뜻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을 ‘아빠'(abba)라고 불렀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아울러 증언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며(마태 12:28, 루가 11:20) 구약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반포된 율법을 능가하는 전권(全權)의 소유자이고(마르 2:23-28, 3:1-8 병행구), 더 이상 앞지를 수 없는 하느님의 임재(臨齋)이며(마태 11:25 이하, 요한 10:30), 성령의 충만이다(루가 4:18). 그의 신적 선재성(先在性)이 명백히 증언되고 있다(요한 1:1-18, 필립 2:5-11).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성령이 하느님과 조물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우주적이거나 종교적 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으로서 하느님 구원의 충만이다(루가 4:18, 디도 3:5 이하, 1고린 12:4). 예수 자신은 성령(pneuma)에 대해서는 드물게 언급하고 있고(마르 3:28-30), 그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 분이라고 지칭된다(마태 12:31, 루가 12:10). 부활이후에 성령의 출현이 보도된다. 성령이 전 교회공동체 안에서 체험된다는 증언이 이루어진다(사도 2:1-41, 4:31, 8:15-17, 10:44, 19:6). 이 성령은 그리스도 계시와의 일치 안에서 역사한다(로마 8:11, 필립 1:19, 2고린 3:17, 갈라 4:66, 1요한 4:1-3).

예수 그리스도(성자)와 성령이 하느님의 현존이라고 증언되기는 하지만, 신약성서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성부가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고(요한 14:16·20, 15:26, 16:7, 17:3, 갈라 4:6), 성자와 성령은 성부와 각기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다(마태 11:27, 요한 1:1, 8:38, 10:38, 15:26, 1고린 2:10). 이를테면 구체적 나자렛 예수가 우리를 위한 하느님(성부)의 현존이면서도 성부 자신은 아니다. 성령도 하느님(성부)의 자기 전달이지만, 하느님의 파악 불가능성을 체험케 하며 따라서 성부와의 구별을 체험케 한다. 신약성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의 단일성과 구별성을 모호하게 알고 있다. 여기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원작용이 구별되어 증언되고 있으며, 성자와 성령이 단순히 하느님과 조물 사이의 중간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같이 배열되고 있다. 예수 세례 때의 삼위일체묘사(마르 1:9-11), 부활한 예수의 세례명령 속에 나타난 성삼형식(마태 28:13)과 다른 많은 삼위일체 정식(定式)들은 이러한 초기 교회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다(로마 1:3-5, 8:9-11, 2고린 13:13, 요한 14:26, 15:26).

2. 삼위일체 교리 : 삼위일체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절대신비(絶對神秘, mysterium absolutum)로서 실증적 계시와 독립해서 인지될 수 없으며, 계시된 다음에도 이성(理性)에 의해 온전히 간파될 수 없다(DS. 3015, 3225). 그리스도 신앙에 절대신비가 있다면 이 삼위일체 신비이고, 가장 기본적 신비이다. 왜 삼위일체가 이러한 가장 기본적 신비인지는 교리상으로 확정된 바 없으며, 왜 이 신비가 우리에게 중요한지, 또 어떠한 구원실재 안에 우리를 위해 소여되어 있는 지도 명시적 사유가 교리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삼위일체 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한 하느님이 세 ‘위격'(位格, upostasis, persona, subsistentia)으로서 존재하는데(DS. 73, 75, 88, 112, 115, 152, 501, 525, 528-531, 800, 803, 351, 1330),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本性, phusis, natura)이고, 하나의 하느님 본질(本質, ousia, essentia)이며 하나의 하느님 실체(實體, substantia)이다(DS. 73, 75, 88, 112, 115, 152, 150, 501, 525, 527이하, 800, 803이하, 1330이하, 1337, 1880). 이 세 위격들은 동일하고, 동일하게 영원하고 전능하다(DS. 44, 75, 125, 162-169, 188, 501, 526이하, 800, 851이하, 1330). 여기서 사용된 개념들의 교의적 정의는 내려진 바 없다.

② 그런데 이 위격들은 서로 구별된다(DS. 75, 531, 1330이하, 2828). 성부는 다른 원천을 가지고 있지 않고(DS. 75. 189, 525, 800, 1330이하), 성자는 성부의 실체로부터, 오로지 성부로부터 출생하였다(DS. 44, 189이하, 76, 112, 125, 163, 525이하, 800, 804, 1330이하). 성령은 출산되지 않고(DS. 75, 527), 하나의 유일원리로서의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된다.(DS. 71, 189이하, 75, 150, 527, 800, 850, 1300, 1330). ‘출산'(出産, generatio)과 ‘기출'(氣出, spiratio)은 신성의 전달 내지는 파견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이 전달이 한편으로는 성부로부터 출산되고 또 다른 편으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기출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나 ‘출산’과 ‘기출’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교리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다.

③ 하느님 안에는 실제로 구별되는 관계(關係, relatio)가 있으며(DS. 531, 573, 800), 따라서 하느님의 본질과 관계를 통해서 구성된 하느님 위격들 사이에 실질적 차이가 있다(DS. 73, 189, 973이하). 그런데 세 위격들이 하나의 하느님 본질과 동일하면서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모순이 되지 않는 근거가 보다 선명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④ 하느님의 ‘관계적’ 위격들은 하느님의 본질과 실제로 구별되지 않아서 (DS. 529, 580, 1330), 이 본질과 함께 하나의 사위일체(四位一體, Quaternitas)를 구성하지 않는다(DS. 534, 803이하). 하느님 안에서는 상반되는 관계(relationis oppositio)가 존속하지 않는 한, 만사가 하나이며(DS. 1330), 각 신적 위격은 전적으로 다른 위격들 안에 존재하며(DS. 1331), 세 위격들이 각기 하나의 참 하느님이다(DS. 529, 680, 790, 851).

⑤ 하느님의 위격들은 존재(存在, esse)와 역사(役事, operatio)면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DS. 189, 112, 501, 800, 851), 외부를 지향해서 오로지 하나의 역사원리(役事原理)일 뿐이다(DS 501, 531, 800, 1330). 세 위격들의 역사의 동일성을 말하는 공리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효능인(效能因, causa efficiens)이며(DS. 3814), 이 공리로 말미암아 오로지 로고스(말씀)만이 인간이 되었다는 육화 교리와 ‘창조되지 않은 은총'(gratia increata) 교리가 부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이 된 위격은 성부나 성령이 아닌 성자 위격이며, 세 위격들은 인간과 각기 고유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교리들로부터 파생되는 교리인, 성부로부터의 성자와 성령의 구세경륜적 ‘파견’ 교리는 교도권에 의해서 거의 계발되어 있지 않다(DS. 527, 536, 1523). 요컨대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의 내적 본질 구명에 치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3.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기점 : 삼위일체는 있을 수 있고 생각될 수 있는 지복(至福)의 신비임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신심생활과 교의신학에서도 삼위일체론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고,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의 신비성을 깨닫지 못한 채 단지 그리스도 교화한 유일신론자들처럼 생활하는 것같이 보인다. 삼위일체 교리를 대할 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며, 사람들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 신비가 왜 계시되었는지 질문하게 된다. 사변적 삼위일체 교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이 신비에 대한 신심을 촉진하기보다는 소원감을 느끼게 하는데 한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사변적 고찰을 시도하는 전통적 입장과 대조적으로 역사(歷史)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하느님의 행업(行業)을 삼위일체의 본질로 파악하여 이 신비를 구원의 신비로 제시하려는 현대 신학자들의 취지와 입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통적 삼위일체론과 현대 신학의 삼위일체론의 기본입장이 요약 소개될 필요가 있다.

①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계발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심화된 이른바 ‘심리학적 삼위일체론'(心理學的 三位一體論, De Trinitate psychologica)은 사계에서 고전적이고 전통적 삼위일체론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라는 성서적 진리를 자신의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는 모상이 원형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모상의 본질을 구명해서 원형이신 하느님의 내적 신비를 일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하느님 본질의 단일성과 세 위격들의 구별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비(類比)를 인간영혼(anima)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기억(mens), 인식(notitia), 사랑(amor)이 영혼의 세 가지 속성으로 파악되고, 이들이 삼위일체의 내재성을 특정하게 이해토록 하는 유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억하고 인식하고 사랑하는 영혼의 유비속에서 본질적으로 하나인 실재의 세 현실적 요소들로서의 위격들을 본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기억이 성부에, 인식이 성자에, 사랑이 성령에 해당된다고 설명된 것이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실제로 구별되면서 하나의 하느님 본질과 하나가 되는 자립적 관계(自立的 關係)라고 규정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아우구스티노를 따라 인간 정신생활의 성취 속에서 하나의 하느님 안에서의 세 위격의 현존을 파악하는 유비를 보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발출(發出, processus)의 성격을 순수정신의 내재적 행위로 규정한다. 이 발출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의 두 기능, 인식(認識, cognitio)과 의지(意志, voluntas)가 하느님의 발출에 상응하는 유비로 등장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 안에서 말씀[知性]과 사랑[愛志]의 두 발출 이외에 다른 발출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발출의 성격을 지성과 의지의 성취양식을 분석하는 가운데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는 지성의 발출이 유사성(類似性, similitudo)의 근거에 입각하여 발생하기에 출생(出生, generatio)이라고 규정한다. 출산자는 자신과 유사한 것을 출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지의 발출은 유사성의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원하는 상대자에로 이끌리는 성향(inclinatio in rem volitam)에 입각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 있어서 말씀을 산출하는 지성작용은 유사성의 산출과 같아서 ‘출생’이라고 지칭할 수 있고, 하느님에게서의 의지작용은 유사성의 출산행위가 아니라 성향적 발출행위이기에 ‘기출’로 표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내적 신비를 구명하는데 기여하였다. 이 신학의 기본 통찰들은 학설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공적 가르침을 부연해서 해설한다고 볼 수 있다.

② 현대 신학적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내적 본질 구명에 역점을 두는 전통적 삼위일체론과는 달리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계시되는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일방성이 지양되고,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동일성이 강조되면서 인간과 조물 일반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행업이 바로 내재적 삼위일체의 본질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이 인간 역사로부터 분리된 신적 실재에 대한 사변적 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 하느님의 역사에 관한 실천적이고 생동적 사유가 된다. 전통적 삼위일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양자택일적 입장을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와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의 삼위일체론적 기점은 범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라너는 삼위일체를 구원신비로 이해하려는 취지로써 삼위일체론을 전개한다. 그는 구원이 하느님의 자기전달(Selbst-mitteilung Gottes)인 은총 안에서 성취되는데, 이 은총이 삼위일체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로서 당신을 자신 안에 폐쇄시키지 않고 외부로 건네준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외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 수취자(受取者)가 요청된다. 이 수취자가 바로 정신과 육신의 합일체인 인간이다. 라너에 따르면,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참으로 인간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에 상응해서 초월적(정신)이고 역사적(육신) 양식으로 발생한다. 인간의 역사성에서 비롯하는 전 인류사는 하느님의 계시사(啓示史)와 구세사와 공존한다고 그는 보고 있다. 하느님이 자기전달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근원으로 작용하면, 구체적 인간 역사가 바로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현현이자 인간에 의한 수용의 역사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제공이 인간에 의해 전적으로 수용될 경우에 신인(神人)그리스도의 출현이 발생한다고 라너는 본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육화를 ‘행해진 진리’라고도 라너는 부른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지전달이 초월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다가온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수용하도록 하는 힘이 바로 성령이라고 규정된다. 여기서 성령의 고유성이 사랑(Liebe)이라는 통찰이 생겨난다. 또한 라너는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진리로 발생하는 한, 역사를 지니며 역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자기전달이 사랑으로 발생하는 한, 이는 절대 미래를 지향하는 초월 안에서의 역사의 재현이라고 본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역전시킬 수 없이 나타나는 구체적 역사로서의 역사와 완성된 최후 미래를 지향하는 초월은 구별되면서 나름대로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한 분 하느님이 자기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운데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 머무르는 한, 그 분을 성부라고 부른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인간의 초월성을 주도하는 원리로 전달하는 한, 그 하느님을 성령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의 이 자기전달은 역사 안에서 현현되는데 이 분이 곧 성부의 육화된 말씀, 성자라고 불린다.” 한 분 하느님의 자기 전달의 세 측면이 동일시되거나 온전히 분리되지 않으면서 온전히 주어진다고 라너는 보고 있다. 그리고 말씀(진리)과 성령(사랑)의 두 파견은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하느님의 자기전달 속에서 상호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두 소인(素因, Moment)들로 파악된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은 초월적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성자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너는 이 이중 파견이 바로 하느님 자체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느님 성부가 자기전달을 통해서 당신을 전달하고, 다른 편으로는 ‘진술된 것’과 ‘수용된 것’과의 실질적인 구별을 이룩한다. 그리고 전달된 것이 ‘전달자’로서의 하느님과 ‘전달된 것’으로서의 하느님 사이에 실제적 구별을 지양하지 않는 한에서, 바로 하느님의 ‘본질’로 표시될 수 있다고 라너는 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내재적 삼위일체가 인간의 충만으로서 전달됨으로써 구원이 성취된다고 보고 있다. 라너는 성자와 성령의 파견과 발출을 하느님의 (내재적이고 구세경륜적) 자기 전달의 발생으로 규정함으로써 삼위일체 신학을 구원의 신비로 이해한 것이다.

몰트만 역시 라너처럼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동일성을 강조하면서 삼위일체를 정관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이해하려고 한다. 그는 삼위일체를 궁지에 처한 조물들의 자유를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역사의 압축으로 보면서 십자가의 신학이 삼위일체론이며, 삼위일체론은 십자가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하느님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것을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한다. 아들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죽음에로 건네지면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서 그의 아버지되심의 죽음을 고통당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아들의 버림받은 상태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가장 깊이 분리되어 있으며, 동시에 아들의 양도 속에서 가장 깊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진술된다. 이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희생의 성령으로서 버림받은 인간들에게 와서 새 생명의 가능성과 힘을 선사하는 절대적이고 무제한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을 종말론적 삼위일체 사건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사랑의 현재적 성령 가운데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사랑받는 아들 사이에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몰트만은 하느님의 역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절정에 이르렀으며, 인간의 모든 역사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어서 역사의 역사라고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죄와 죽음의 성격을 지니는 인간의 모든 역사가 하느님의 역사인 삼위일체안에 통합된다는 통찰이 파생된다. 그래서 인간고난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고통이 아닌 고통이 없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에로 통합되지 않는 삶이나 기쁨도 없다는 것이다. 몰트만에게서 삼위일체가 고통에 찬 조물의 역사와 관련된 실재임이 적나라하게 기술되고 있다. 몰트만이 삼위일체론을 하느님과 조물 일반, 특히 자유로운 조물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의 원리’로 제시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하느님 이해뿐만 아니라 신앙의 쇄신 자체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창조 이래의 역사과정은 성령 안에서 부활한 성자를 통하여 조물, 특히 인간을 향하는 하느님 성부로부터의 구원역사이자, 성령에 의해 이끌린 인간과 세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로 인도되는 귀환역사로 이해될 수 있다. 구체적 경위는 신비로 머무르지만, 인간과 세계의 완성된 구원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될 삼위일체적 하느님의 완성된 역사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삼위일체 신비는 내포하고 있다. (沈相泰)

[참고문헌] J. Felderer, Dreifaltigkeit, in: LThK III, pp.543-560, Freiburg 1959 / M. Schmaus, Trinitat, in HthG II, pp. 697-714 Munchen 1963 / R.L. Richard, Holy Trinity, in: New Catholic Encyclopedia XIV, pp. 295-306, New York 1967 / K. Rahner, Trinitat, in SM IV, pp.1005-1021, Freiburg 1969 / R. Garrigou-Lagrange, De Deo trino et creatore. Commentarius in Summam Theologiae S. Thomae(I, 27-119), Turin 1951 / B. Lonergan, De Deo Trino, Rome 1961 / J.M. Dalma, De Deo uno et trino, Madrid 1964 / E.J. Fortman, The Triune God, London 1972 / J. Auer, Gott der Eine und Dreieine, Regensburg 1978/ J. Moltmann, Trinitat und Reich Gottes. Zur Gotteslehre, Munchen 1980 / R. Schulte, Die Vorbereitung der Trinitatsoffenbarung, in: Mysal II, pp.49-82, Einsiedelin 1967 / F.J. Schierse, Die neutestamentliche Trinitatsoffinbarung in 같은 책 pp.85-129 / L. Scheffczyk Lehramtliche Formulierungen und Dogmengeschichte der Trinitat, in: 같은 책 pp.146-217 / K. Rahner, Der dreifaltige Gott als transzendenter Urgrund der Heilsgeschichte in: 같은 책 pp.317-401 / M. Schmaus, Die psychologische Trinitatslehre des hl. Augustinus, Munster 1927 / K. Barth, The Doctrine of the Word of God, tr. by G.T. Thompson. Edinburgh 1960 / J.E. Sullivan, The Image of God. The Doctrine of St. Augustine and its influence, Dubuque 1963 / Y. Congar, Je crois en l’Esprit Saint I-III, Paris 1979-1980 / 요셉 라싱어 著, 장익 역, 그리스도 信仰 어제와 오늘, pp.122-146, 분도출판사, 왜관, 1974 / P. 네메셰기, 부산 까르멜수도원 옮김, 성부와 성자와 성령, 분도출판사, 왜관 1978 / 심상태, 三位一體論의 어제와 오늘, 司牧, 75호 (1981. 5), pp.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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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봉본당 [한] 三元峰本堂

1909년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수호천사. 영암촌(英岩村)본당으로도 불린다. 창설 당시 소재지는 만주 간도성 화룡현 삼원봉(滿洲 間島省 和龍縣 三元峰)이었으나 1931년 화룡현 대랍자시(大拉子市)로 이전되었고 이때 본당명도 대랍자본당으로 개칭되었다. 삼원봉은 간도의 첫 교우인 김영렬(金英烈, 요한)의 전교로 1890년대 말에 복음이 전해진 후, 유패룡(劉覇龍, 라우렌시오), 김성준(金成俊, 안토니오) 등이 원산에서 브레(A. Bret, 白) 신부에게 영세하고 삼원봉에 정착, 교우촌을 건설하였다. 1904년 덕흥서숙(德興書塾)[1911년 德興學校로 발전됨]이 개설되었고 차츰 주민이 늘고 교세가 신장되어 1909년 초대 주임으로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신부가 부임했을 때 교세는 공소 17개소에 교우수 1,279명이었다. 1912년 성당과 사제관이 건축되었고, 1914년 라리보 신부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어 5년간 본당은 폐쇄되었다가 1919년 페랭(P. Perrin, 白文弼)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재출발하였다. 1920년 간도와 함경도가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포교지가 되자 1922년 베네딕토회의 차일라이스(V. Zeileis, 徐)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했고, 이어 1925년 에베를(H. Eberl, 吳)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였다. 1931년 본당이 화룡현 대랍지시로 이전되면서 본당명도 대랍자본당으로 개칭되었다. 본당내에는 7개의 신심단체가 있었고 그외에 해성학교, 야학, 유치원 등의 사업체가 있었다. 1936년의 교세는 교우수 727명, 공소 5개소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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