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뇌 [원] Berneux, Simeon Francois

Berneux, Simeon Francois(1814-1866). 성인. 축일은 9월 20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제4대 조선(朝鮮) 교구장. 한국명 장경일(張敬一). 프랑스 르망(Le Mans)교구 소속 샤토 뒤 르와르(Chateau-de-Loir)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르망 교구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수학했고 1837년 5월 20일 사제서품을 받은 후 르망 대신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던 중 1839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1년 베트남의 통킹에 도착하여 전교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2년간의 옥살이 끝에 구조되었고,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滿洲) 교구에서 12년 동안 전교하였다. 1854넌 만주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해 12월 27일 주교로 성성되었고, 이듬해 다시 제4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 후 순교하기까지 10년 동안을 조선 교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 배론[舟論] 신학교를 세우고, 서울에 2개의 인쇄소를 차리는 외에 교세를 확장하는 등 조선 교회의 발전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러나 1866 2월 23일 체포되어 3월 7일 새남터에서 브르트니에르(de Bretenieres, 白) 신부, 도리(Dorie, 金) 신부, 볼리외(Beaulieu, 徐沒禮) 신부 등과 함께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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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디노 [라] Bernardinus, Senensis

Bernardinus, Senensis(1380-1444). 성인. 축일은 5월 20일. 프란치스코회 회원. 이탈리아 시에나 부근의 마사 마리티마(Massa Marittima)에서 태어나 아퀼라(Aquila)에서 별세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부친쪽 친척에게서 자라나 시에나 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였다. 1404년 사제로 서품, 이듬해부터 평생 동안 설교자로 일관하였다. 1417년경부터는 명성있는 민중설교가로서 예수의 성명(聖名)에 대한 신앙심을 강조하며 이탈리아 각 지방에 포교, 때로는 3만 명의 청중을 상대로 옥외 설교를 했다고 한다. 1438년부터 1442년까지는 프란치스코회 총장대리로 있었다. 1444년 나폴리 왕국 포교를 위해 아퀼라라를 출발, 얼마 못 가서 열병에 걸려 눕게 되자, 아퀼라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모셔져, 거기서 영면(永眠)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적이 있었으며 1450년 교황 니콜라오 5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1471년 성 프란치스코 성당 근처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로 유해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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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라] Bernardus, Claravallensis

Bernardus, Claravallensis(1090-1153). 클레르보(Clairvaux)의 성인. 축일은 8월 20일. 대수도원장. 신학자. 교회학자. 프랑스 디종(Dijon)의 귀족 출신. 1112년 부르군드의 30명의 젊은 귀족들과 함께 시토(Citeaux)회에 입회, 탁월성을 인정받고 3년 뒤 클레르보에 새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는데, 이곳이 시토회의 주요 수도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1128년 트로예(Troye) 시노드에 간사로 참가하였으며 1130년 교황 선거에서 뒤에 인노첸시오 2세가 된 인물을 지지하여 대립교황을 물리쳤으며 대신에 교황으로부터 시토회는 특전을 받았다. 상스(Sens) 공의회(1140년)에서 아벨라르(Abelard)를 단죄, 또한 랭스(Reims) 공의회(1148년)에서 신학적 문제로 포레(Gilbert dela Porree)를 공박하였다. 2차 십자군운동을 일으키는데 공헌하였으나 원정의 실패는 그에게 비탄을 안겨 주었다. 1174년 시성 1830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지성뿐만 아니라 그의 성성(聖性)과 인격 때문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은 논문 <은총과 자유의지에 대하여>(De gratia et libero arbitrio)는 자신의 시대에 보내는 중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자유의지를 버리면 구원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은총을 버리면 구원의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작업은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De Diligendo Deo≫는 중세의 가장 탁월한, 신비주의에 대한 저서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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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타 [프] Bernadette, Soubirous

Bernadette, Soubirous(1844-1879). 성녀. 프랑스 루르드의 출생. 세례명이 ‘마리 베르나르드’(Marie Bernarde)였으나 베르나데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4세가 되던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타는 루르드 근방의 마사비엘(Massabielle) 동굴 가까이서 흰옷을 입고 로사리오를 손에 든 젊은 여인을 보았다. 이 성모발현(聖母發顯)의 사건을, 그 곳 사제였던 페이라멜(M. Peyramale) 신부는 믿지 않았고 베르나데타는 많은 오해를 받았다. 성모영보 대축일에 있은 16번째 발현 때 그 여인은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된 자’(Immaculate Conception)임을 밝혔다. 이 사건 직전인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Pius) 9세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에 물듦 없이 잉태되었음을 믿을 교리로 반포하였다. 또한 성모는 기적의 샘물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과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가르멜산의 성모 마리아 축일’(7월 16일)에 18번째의 마지막 발현이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1866년 니베르(Nevers)의 노트르담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 1933년 시성되었다. 프랑스에서는 2월 18일이 축일이지만 일반적으로는 4월 16일이 축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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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노스 [원] Bernanos, Georges

Bernanos, Georges(1888-1948) 프랑스의 가톨릭 작가. 작품의 주제는 주로 신(神)과 인간과 악마 사이의 상극(相剋)이며, 특히 인간 악의 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다루면서 인간의 고투(苦鬪)와 고뇌를 극명하게 묘사하여 현대인의 정신적 용모를 부조(浮彫)시키고 있다. ≪시골 사제의 일기≫, ≪악마의 태양 아래서≫ 등의 소설 외에 르 포르(Gertrud von le Fort)의 소설에서 취재한 각본 ≪가르멜회 수녀의 대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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