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편지 [라] Epistola Catholica Beati Petri Apostoli [영] Epistle of Peter

1. 베드로의 첫째 편지 ① 필자 문제와 수신인 : 오늘날 신약 학계에서는 대체로 이 서간의 베드로 친서설(親書說)을 부정하고 있다. 그 논거로,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인 베드로가 과연 이 편지의 문장처럼 세련된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베드로의 모국어는 아람어인데, 구약의 성구를 줄곧 70인역에서 인용한 점, 예수의 말씀을 직제자 곧 목격자로서 전하지 않고 정형화된 전승에서 인용하고 있는 점, 갈라디아서 2장에 의하면 베드로는 별로 바울로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은데, 바울로 계열의 전승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 자기 본명인 시몬 대신 예수께 받은 별명(베드로)으로 자기소개를 한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바빌론’이라는 로마의 별명이 서기 70년 이후에 사용되었다는 점도 고려하면 아무래도 사도 베드로를 이 서간의 필자로 보기는 어렵다. 5장 12절을 근거로 실바노를 필자로 보는 학자들도 더러 있지만 확실한 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요컨대, 필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로마 교회의 신도로서 바울로 계열의 전승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있었던 성명 미상의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소아시아 교회들을 고무, 격려하기 위해 이 서간을 썼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바울로의 선교 무대보다 좀 더 넓은 소아시아 지역 여러 교회의 이방계 신도들이 수신인이다(1:1, 2:9 · 10, 4:3참조)[가명 작품에 관해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 둘째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 항 참조].

② 집필 연대와 장소 : 이 서간에 묘사된 역사적 상황은 서기 65년부터 90년까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90년 이후에 야기된 신앙문제, 예컨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로마를 가리키는 ‘바빌론’이란 별명은 70년 이후에 사용되었으니, 본서의 집필 연대는 70년부터 9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집필 장소는 물론 로마로 짐작된다.

③ 주제와 내용 : 이 서간은 고난을 겪고 있는 신도들을 격려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관해 증언하려고 한 일종의 회람서한이다. 필자는 역경의 신도들을 지켜 주는 은총에 대해서 말할 뿐 아니라(5:10), 심지어 고난 자체를 은총이라고도 한다(2:19-20, 참조 4:14 ‘행복하다!’). 신도들이 사회생활에서 소외되고 백안시되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일반 사람들과 다른 새로운 규범의 생활을 하기 때문이니 그 어려움을 경건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한다(1:6, 2:18-20, 3:1-6, 3:13-5:11). 그 구체적인 예로 국가 권력자들에 대한 충성문제(2:13-17), 노예생존의 역경(2:18-25), 신자와 비신자의 혼종결혼으로 인한 갈등(3:1-7), 그리고 교직자들이 그 직분 때문에 부닥치게 되는 유혹(5:2-7) 등에 대해서 말한다. 요컨대, 이 서간은 신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신도들로 하여금 확고한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려고 한다.

2. 베드로의 둘째 편지 ① 필자 문제와 집필 연대 : 베드로의 둘째 편지 역시 필자가 자신을 명백히 사도 베드로로 소개하고(1:1) 첫째 편지도 자기가 쓴 것처럼 시사하고 있으나(3:1) 일찍부터 베드로 친서설에 이론이 제기되어 왔고, 오늘에 와서는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본서를 가명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사도 아닌 사람이 쓴 유다의 편지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 썼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말이 나오는데(3:4), 베드로 생존시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로, 바울로의 서간들을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3:15-16), 바울로의 서간들이 모든 교회에서 그런 인정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서간은 베드로가 쓴 것이 아니라, 후대의 어느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잘 아는 교회들의 어려움을 좌시할 수 없어 도와주려고 쓴 것이며, 이 때 수신인들이 자기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이용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유다의 편지 집필 연대를 100년경으로 추정한다면, 본서의 집필 연대는 125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② 내용과 목적 : 먼저 신도들에게, 덧없는 속사를 멀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어 그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쓸 것을 권고하고(1:12-21), 죽음을 앞둔 베드로의 ‘유언’ 형식으로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실현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림의 영광을 미리 보여 준 그분의 거룩한 변모(현성용)를 자신이 목격했다고 한다(1:12-21). 그리고 이단자들이 나타나서 날뛰겠지만 틀림없이 심판을 받으리라고 예고하면서 구약의 예화 세 가지를 든다(2:1-10). 이어서 이단자들의 가르침을 공박하고 그들의 퇴폐적인 생활을 규탄한다(2:11-22), (2장의 내용과 표현은 유다서와 거의 일치한다). 3장 1-4절에서 필자는, 신도들에게 예언자들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박아 주기 위해 본서를 썼다면서 집필 목적을 밝힌다. 그리고 이단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됨을 비웃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미루고 계시니(3:5-9), 신도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그날에 대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한다(3:10-13). 또한 바울로의 서간에 언급하면서 그 내용을 곡해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찬송으로 서간을 끝맺는다.

[참고문헌] 200주년 신약성서 12 / 장 엘마로 역주, 베드로 전후서, 분도출판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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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바울로 사도 대축일 [한] ∼使徒大祝日 [라] sollemnitas SS. Petri et Pauli, Apostolorum [영] S

예수의 12사도의 으뜸인 베드로와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 두 사도는 로마 교회의 창설자로 간주된다. 축일은 6월 29일. 이 날은 치명 기념일 혹은 유해가 옮겨진 날로 여겨진다. 3세기에 이미 로마에서 축일이 언급된 문헌이 발견된다. 이 축일은 4세기에 보편적으로 전파되었다. 성 베드로와 바울로의 이름은 미사 때 고백의 기도(현재는 언급되지 않음), 제1 성찬기도 등에 언급된다. (⇒) 베드로, 바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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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세습령 [한] ∼世襲領 [라] Patrimonium Petri [영] Patrimony of St. Peter

교황에게 소속된 토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313년) 이전까지는 교회가 합법적으로 재산을 취득할 수 없었으나, 그 후부터 황제와 귀족들에게 기부받거나 위탁받은 교회의 재산은 상당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600년경에 교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토지의 소유자가 되었다. 광대한 농장과 삼림 등을 자유민들에게 경작시켜 하나의 장원(massa)을 형성시켰고, 이것은 로마의 한 주(州)에 해당하는 것으로 로마 교황에게 세습되었다. 이 세습령은 시칠리아, 갈리아, 코르시카, 아프리카 북부 등지에 산재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이탈리아에 있었다. 세습령은 교황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레고리오는 베드로 세습령을 가난한 사람들의 세습령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베드로 세습령은 자주 세속권력들의 침탈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몇몇 교황들은 이 영지를 자신의 개인소유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중세시대가 끝나면서 베드로 세습령은 로마 근교의 지방으로 축소되었고, 지금의 바티칸 시국만으로 확정된 것은 1929년 교황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에 맺은 라테란조약에 의한 것이다. 이 조약에 따라 교황청은 바티칸 시국에 대해 배타적 주권을 갖게 되었고, 바티칸 시국은 불가침적 중립지대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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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사도회 [한] ∼使徒會 [영] Pontifical Society of St. Peter Apostle(P.S.A.) [관련] 교황청전교원조

교황청 전교원 조회 산하 상설단체의 하나. 성소를 계발하고, 기도와 성금으로 성소를 후원하며, 전교지방의 방인사제 양성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베드로사도회의 한국지부는 1965년 주교회의(6월 29일-7월 3일)에서 발족되었고, 초대 지부장에는 윤공희 대주교, 2대 지부장에는 최재선 주교가 역임했고, 3대 지부장은 정은규 신부가 맡고 있다. (⇒) 교황청전교원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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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대성전 [한] ∼大聖殿 [영] St. Peter’s Basilica

로마의 5대 바실리카의 하나로 교황청에 인접해 있는 총대주교좌 성당이다.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클레토(St. Anacletus)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작은 기념당이었다. 그 뒤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베드로가 처형된 원형 경기장을 헐고 기념당과 무덤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 성전은 1100년경까지 존속하였고, 몇 번의 개보수(改補修)를 거쳐 낡아진 대성전을 헐고 더욱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립하려 한 사람은 교황 니콜라오(Nicolaus) 5세였다. 교황의 명을 받은 르네상스기의 대미술가 브라만테(D. Bramante),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등이 설계하여 176년간에 걸친 대역사를 통해 완공되었고, 1626년 11월 18일 교황 우르바노(Urbanus) 8세에 의해 성대한 헌당식이 거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대성전은 최대길이 221m, 최대높이 141m로 세계 최대의 성당일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그 독창적인 구상과 중앙의 거대한 돔(dome) 양식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성전 앞 대광장(plazza)의 중앙에는 베드로의 처형대로 사용되었다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세워져 있고, 대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랑(柱廊)에는 높이 약 3.6m에 이르는 126성인의 입상이 늘어서 있다. 성전의 정면에는 입구 위로 길게 내뻗은 난간(Loggia della Benedizione)이 있어 교황이 이곳에서 축복을 내린다. 이곳을 지나면 5개의 입구를 거쳐 성당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년에만 열리는 성년(聖年)의 문(porta santa)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수도회 창립자들의 거대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중앙 통로를 지나 중앙의 대제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대제단은 1633년 베르니니가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는 95개의 등불이 밤낮 없이 계속 타올라 아래층의 청동관을 비추고 있다. 대제단에서 조금 들어가면 바로크 양식으로 된 베드로의 교좌(敎座)가 놓여 있다. 한편 지하성당에는 베드로의 무덤과 수많은 교황들의 무덤이 있고, 지하성당에서 올라오는 계단 위에는 베드로의 청동상이 놓여 있는데 수많은 순례자들이 청동상 오른쪽 발끝을 어루만지고 입맞추었기 때문에 닳아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밖에 성당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피에타>(pieta)가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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