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농민회 [한] ~農民會 [영] Catholic Farmer’s Movement [관련] 한국가톨릭농민회

농민 스스로의 단격과 협력으로 농민의 권익을 위하고 인간적 발전을 도모하며, 사회정의의 실현을 통한 농촌사회의 복음화와 인류공동체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여 1954년 유럽의 8개국 18개 운동단체들이 가톨릭농민회 국제연맹(Mouvement International de la Jenesse Agricole et Rural Catholiques)을 창설하였다. 1958년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고, 유엔의 주요 기구들에 의해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는 정회원국이 5대륙에 걸쳐 있으며 4년마다 국제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륙별로는 대륙회의를 개최하며 벨리에 루벵에 국제본부를 갖고 있다.

한국 가톨릭농민회는 1964년 10월 가톨릭노동청년회의 ‘노동 청년부’로 시작하여 1966년 10월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J.A.C.) 창립총회를 가진 뒤 1970년 9월 제7차 가톨릭농민회 국제연맹(MIJARC) 총회에 대표자를 파견, 정회원국으로 가입함과 아울러 1972년 3월 제3차 전국 대의원 총회를 개최함으로써 ‘한국 가톨릭농민회’로 정식 출범하였다. 그 뒤 같은해 10월 바티칸에 소재한 국제 가톨릭농촌단체협의회(I.C.R.A.)에 가입하는 한편, 1973년 2월 한국 가톨릭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에 가입하여 농촌에 있어서 새로운 평신도사도직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리하여 각 지역별 연합회가 창립되기 시작했고, 1973년 7월 경기연합회가 창립된 이래 1978년 12월에 안동교구연합회가 창립됨으로써 모두 10개의 지역별 연합회의 창립을 보았다. 1975년 9월 전국 지도신부단이 구성되었으며, 1976년 3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준을 받았다.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민문제의 기본문제인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실태조사를 실시하여 그 해결을 촉구하는 한편, 농민의 토지상실, 농촌오염, 투기자본의 농토 잠식, 부실경지 정리로 인한 문제 등으로부터 농민보호활동을 추진하며 영세한 농업구조가 안고 있는 불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각종 협동활동을 추진하여 협동의식을 높인다. 둘째, 농산물에 대한 정당한 값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활동한다. 셋째, 농업관계 조합장 선거제 실시 등 실제적인 조합운영의 활동을 제시한다. 넷째, 민주적인 농업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법적인 보장을 위한 농림 관계법의 공청회를 유관 단체와 함께 개최하여 자주적인 농민의사와 법이 잘 화합할 수 있도록 활동한다. 다섯째, 농민들의 진정한 생산문화를 찾을 수 있도록 농민문화 부활을 위한 활동을 한다. (⇒) 한국가톨릭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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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노인학교 [한] ~老人學校

노인의 사회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가톨릭교회가 설립, 운영하는 학교,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한국의 가족제도도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제로 변화되었다. 이에 따라 노인들의 정신적 경제적 소외가 심화되어 각종 노인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불어닥친 근대화 바람은 노인문제를 더욱 심각한 것으로 만들었다. 가톨릭교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으로 문제화 된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각 본당별로 노인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하였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1980년 ‘천주교 서울 대교구 노인학교연합회’를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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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노동청년회 [한] ~勞動靑年會 [영] Young Christian Workers [프] Jeunesse Quvriere Chretienne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청년노동자로 구성되어 청년노동자들과 함께, 청년노동자의 손으로, 청년노동자를 위하여 노동계를 그리스도적인 생활양식을 만들고자 하는 회(會)로서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세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첫째, 일상생활을 통하여 활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하루하루의 생활환경 속에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수련을 쌓아야만 한다. 세째, 청년노동자들에게 고동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일치되어야 할 상황속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청년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벨기에의 카르딘(Joseph Cardijn) 신부에 의해 이 회가 시작되었는데, 카르딘 신부는 브뤼셀에서 가까운 마을의 노동자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진학을 못하고 노동을 하다가 노동자를 위한 사제가 될 것을 결심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뒤 1906년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았다. 오늘날과 같은 운영 형태는 1차 세계대전 중 옥중생활 속에서 착상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곧 ‘Jeunesse Syndicalist’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이 모임의 이름으로 정기간행물까지 발간하였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빠른 속도로 벨기에 전역에 확산되었으나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않았다. 마침내 1925년 벨기에 주교단과 교황 비오 11세로부터 인정을 받아 1925년 4월 18일 가톨릭노동청년회(Jeunesse Ouvriere Chretienne)의 창립 총회를 갖고 국가적인 조직체로 육성할 것이라는 정관도 채택하였다. 1927년부터는 세계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이 운동은 중단되지 않았다. 한편, 확고한 기반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견지에서 국제적인 정관을 채택하지 않다가 1957년에 가서야 이를 채택하게 되었으며, 1981년 현재 125개국에 약 700만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1958년 11월 14일 창설자 카르딘 추기경의 내한을 계기로 1958년 11월 16일 간호원 9명과 박성종(朴成鍾) 지도신부가 함께 모여 결성되었다. (⇒)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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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노동여자청년회 [한] ~勞動女子靑年會 [관련]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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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기도서 [한] ~祈禱書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도서로 1968년 주교회의 전국전례위원회의 기도서 개편(案)안에 따라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에서 편찬하여 주교회의 인준을 거쳐 1972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초간하였다. 종래의 기도서인 《성교공과》(聖敎功課)에 비해 문체는 아름답지 못하지만, 한문투의 문장과 옛 용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현대문법에 맞는 쉬운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고소 중심의 기도문을 가정 위주의 기도문으로 개편했다는 점에서 《성교공과》에 비해 한층 발전한 형태로 받아들여진 것이 일반교우들에게 《가톨릭기도서》가 호응을 얻은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판형은 포켓판과 국판의 2종으로 인쇄되었는데, 국판은 노인과 어린이를 위해 큰 활자로 인쇄되어 있다. 내용은 전체 6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편 ‘일상기도’ 편에서는 주요 기도문들과 아침기도, 저녁기도 등을, 제2편 ‘특수기도’ 편에서는 각 성월기도, 호칭기도와 십자가의 길, 연도 등을, 제3편 ‘여러 기도’ 편에서는 46개의 갖가지 기도문들을, 제4편 ‘공소예절’ 편에서는 공소예절 전반을, 제5편‘미사 통상문’에서는 미사 통상문과 미사의 4가지 양식과 감사송을, 제6편 ‘주일미사 및 축일미사’ 편에서는 전례력에 따른 연중 주일과 축일의 미사 중 신자들의 합송부분을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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