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가르멜회 [한] ∼會 [라] Discalceati [영] Discalced

16세기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St. Teresa of Avila)와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에 의해 구(舊) 가르멜회에서 개혁되어 나온 수도회. 그 전 2세기 동안 약화되어 온 가르멜 원시회칙을 고수하여 관상과 봉쇄생활을 한다. 맨발에 샌들만을 신기 때문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역사는 데레사 성녀가 원시회칙을 따르는 정주수도원을 총장의 인가를 얻어 두루엘로(Duruelo)에 세웠던 15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발의 회에 대한 호응도는 높았으나 새 개혁 수도원의 설립은 스페인의 카스틸랴(Castilla) 관구로 한정되고 개혁운동은 구 가르멜회 내에서만 이루어지게 한 교회규정 때문에 그 전파는 크게 통제되었다. 1593년 개혁 가르멜회를 자체의 총장과 경영권을 갖는 독립적 수도회로 발족시킨 글레멘스(Clemens) 8세에 의해 맨발의 가르멜회는 비약적 성장을 약속받게 되었다. 1582년부터 스페인의 가르멜회는 아시아 · 아메리카 선교활동에 나선다.

엄격한 봉쇄를 지키며 관상생활을 하는 맨발의 가르멜회는 사도적 활동도 수도회의 관상적 이상에 부합되는 선에서만 허용한다. 또한 데레사 성녀와 요한의 영성신학의 관리자로서, 이에 대한 많은 서적과 정기간행물들을 내고 있다. 1983년 현재 전세계에 약 3,300명의 종신 서원자가 있다. 한국에 진출한 남녀 가르멜회는 모두 ‘맨발의 가르멜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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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폴린 [원] McPolin, Owen [관련] 광주대교구

McPolin, Owen(1889-1963). 아일랜드 출신 골룸바노 회원으로 광주교구 초대 교구장. 한국성은 임(林). 1933년 10월, 성 골룸바노 신부들 10명이 입국할 때 함께 내한하여 1934년 전남 감목대리구가 설치되면서 감목대리로 임명되었고, 목포 · 제주 · 나주 · 광주 · 순천 등 본당의 2,844명의 교우들을 사목하였다. 1937년 전남 감목대리구가 교황청으로부터 광주지목구로 설정되면서 맥폴린 신부는 초대 지목(知牧)에 피임되었다. 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맥폴린 신부는 당시 거주지인 목포에서 광주부(光州府)에 교구시설을 갖추기 위해 광주와 목포를 내왕하면서 전교사업에 전념하였다.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적대국인 아일랜드의 성직자들을 스파이로 몰아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맥폴린 신부를 비롯한 11명의 아일랜드 신부들은 목포 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1942년 4월 맥폴린 신부는 지목교구장직을 사임하여 본국으로 귀국했다가 8월 15일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다시 광주교구장직을 맡아보면서 일제의 독소에 파괴된 교구의 재건에 힘쓰다 1948년 교구장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3년 미국에서 선종하였다. (⇒) 광주대교구

[참고문헌] 김구정 · 김영구, 천주교 호남발전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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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튼 [원] McNaughton, William J.

McNaughton, William J.(1926~ ).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원. 주교. 초대 인천(仁川) 교구장. 한국명 나길모(羅吉模).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로렌스(Lawrence)에서 출생. 1944년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53년 동(同)회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았고, 이어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예일(Yale) 대학에서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후 1954년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충북 장호원 본당 보좌신부, 1955년 청주 북문로 본당 주임신부, 1957년 청주 내덕동 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59년 청주(淸州) 대목구 부감목으로 임명되었고, 1961년 인천(仁川) 대목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대목으로 임명되어 이해 8월 24일 자신의 고향인 미국 로렌스에서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1962년 3월 10일 교계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인천교구장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인천교구장으로서 인천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고 있고 이외에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상임위원회 위원, 주교회의 전국위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 : 인천교구 초대 교구장인 나길모 굴리에모 주교는 2002년 4월 24일 교구장직을 은퇴하였고, 동년 4월 25일 제2대 교구장으로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가 착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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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동본당 [한] 玫花洞本堂

1896년 7월 안악군 용문면 매화리(安岳郡 龍門面 玫花里)에 설립된 본당. 르장드르(Le Gendre, 崔昌根) 신부에 의해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 함께 관할되다가 1896년 성직자 연례 피정 때 분할되어, 빌렘(Wilhelm, 洪錫九) 신부가 황해도 지역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다. 몇 개의 공소(公所) 중 마렴(安岳郡 文山面 麻簾) 공소를 본당으로 설정한 후 1897년 마렴과 머레[遠川] 사이에 있는 언덕으로 이전함에 따라 매화동(玫花洞)이라는 새로운 동네 이름과 함께 매화동 본당이 시작되었다. 이 동명(洞名)은 본당주보인 ‘로사리오’를 한자(漢字)로 표기한 것이었다. 또한 이 본당은 황해도 내에서 제일 처음 설립된 본당이기도 하다.

1898년 4월에는 청계동(淸溪洞) 본당이 분할됨과 아울러 빌렘 신부가 청계동 본당신부로 부임되고, 우도(Oudot, 吳保祿) 신부가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해왔다. 우도 신부는 1899년 9월 조선식 기와집 성당을 준공하는 한편 봉삼학교(奉三學校)를 설립하여 황해도 내에서는 최초로 사학(私學)을 시작하였다. 1909년 10월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의 수녀가 파견되어 본당 내 수녀원이 개설되어 본당 사목활동을 도울 뿐만 아니라 교육활동도 전개하였고, 소화시약소(小花施藥所)도 운영하였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당시 본당신부인 샤보(Chabot, 車麗松) 신부가 본국으로 소환되어 1914년부터 1919년까지 재령(載寧) 본당 멜리장(Melizan, 梅覆霜) 신부가 매화동 본당을 같이 관장하였다. 한국인 신부에 의한 본당 사목은 1931년 신인균(申麟均) 신부가 부임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가, 1950년 7월 17일 이여구(李汝球) 신부가 납치되어 매화동 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고 말았다. 한편, 봉삼학교는 4년제에서 6년제로 연장되고, 1934년 8월 15일에는 보통학교로 승격되었는데 1945년 8월 15일 공산당의 인민학교로 흡수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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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축일표 [한] 每日祝日表

교회력(敎會曆)에 따른 축일과 주일 및 연중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월일(月日)별로 표시한 소책자. 1924년 서울교구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 이전부터 간행되어 온 한 장짜리 축일표인 <첨례표>(瞻禮表)와 함께 사용되었다. 처음 간행 당시의 서명(書名)은 <매일첨례표>였고 그 뒤 매년 같은 서명으로 간행되어 오다가 1966년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에서 ‘첨례’라는 용어를 ‘축일’로 개정하자 <매일축일표>라는 서명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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