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바르전례 [한] ∼典禮 [영] Malabar rites

말라바르 그리스도 교도들의 관습과 관행을 말라바르 전례라 하며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례로 인정하였지만 교황청으로부터 공인받지는 못하였다. 이 전례를 사용한 선교사는 로베르토 데 노빌리(Robert de Nobili)로 그는 개종을 희망하는 바라문(Brahmin, 婆羅門)의 개종을 쉽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전례를 사용하였다. 말라바르 전례를 지킨 사람 중에는 성 요한 드 브리토(St. John de Britto)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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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바르 그리스도교 [한] ∼敎 [영] Malabar Christians

토마스 그리스도 교도(Thomas Christians)라고도 부른다. 인도의 남서부 해안지방에 분포하고 있으며 사도 토마에 의해 전도되었다고 전하여 진다. 오늘날에는 칼체돈 공의회의 결정을 부정하는 단성론자인 야곱파(Jacobites), 네스토리우스파였다가 1599년 이후 포르투갈인에 의해 개종한 그룹, 1930년 로마와 일치를 이룬 말라카레제(Malakarese) 교회 등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이들 3개 그룹은 각각 독자적인 전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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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서 [한] ∼書 [라] Prophetia Malachiae [영] Prophecy of Malachias

1. 구조와 내용 : 말라기서는 열 두 소예언서 중 맨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표제는 ‘선포’ 혹은 ‘신탁’(massa’)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말라기라는 서명(書名)을 많은 성서학자들이 ‘나의 사자’(∼使者, male’aki)라는 3장 1절에서 따온 것으로 보나 후나커(Van Hoonacker), 융커(Junker), 다이슬러(Deissler), 샤리(Chary) 등은 실존 인물로 보고 있으니, 모음 ‘이’로 끝나는 이름은 ‘우리’(Uri, 출애 31:2), ‘애트니’(Etni, 1역대 6:26), ‘부시’(Buzi, 에제 1:3) 등 성서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대 유다전승은 말라기를 에즈라와 동일 인물로 보았으니 그 제시하는 종교적 이상, 시대적인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라기서의 구조는 여섯 개의 설교와 하나의 발문으로 짜여져 있는데 논쟁언사(論爭言辭, Disputation sworte)로 무질서하게 나열하고 있다. 논쟁은 예언자의 질책, 청중의 항변, 예언자의 응답 순으로 이어지는데 아마도 아모 5:18-20, 에제 12:21-28, 이사 40:27-31 등에서 그 수사법을 빌어온 듯싶다. 그 짜임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도입부(1:1-5) :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순전히 거저 사랑하신다. 반대로 ‘에사오-에돔’은 미워하신다. 당시 에돔은 유배 후부터 차지하고 있던 유다의 영토에서 쫓겨나게 되었었다(예레 49:17-19, 오바 1-15; 요엘 4:19), ② 사제들에게 한 경고(1:6-2:9) : 하느님께 합당하게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제들이 예배를 더럽히며 백성을 타락시키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엄벌을 받을 것이다(2:1-9). 한편 하느님은 깨끗하고 거룩한 제사를 바치도록 해 주실 것이다. ‘깨끗한 제물’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전인류가 바치게 된다(1:11). ③ 잡혼과 이혼(2:10-16) : 이방인들과 잡혼(2:11-12)과 쉽게 하는 이혼(2:13-16)으로 신성한 결혼을 욕되게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④ 야훼의 날에 대한 예고(2:17-3:5) :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에 실망하는 ‘야훼의 가난한 자들’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날’과 사자(使者)의 도래를 예고함으로써 응답한다. 3장 3b에 언급된 레위는 사제직과 하느님이 서두르시는 정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후대에 첨가시킨 구절인 것 같다. 3장 1c의 ‘계약의 천사’라는 표현도 에즈라의 사명을 재강조하기 위해 첨가시킨 구절인 것 같다. ⑤ 종교세(3:6-12) : 예언자는 십일조 헌납이 백성이 당하고 있는 재앙을 면해 주리라 강조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3:6-12를 1:5뒤로 옮겨야 논리적인 전개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두 단락이 제시하는 설교의 대상이 서로 다르다고 본다. ⑥ 인과응보의 문제(3:13-21) : 2:17에서도 인과응보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이 단락은 2:17보다 좀 더 후대에 씌어진 것 같다. 이 구절은 의인과 악인을 뚜렷하게 구별하고 사후의 인과응보 사상을 준비시키고 있다. ⑦ 발문(3:22-24) : 이 단락은 신명기의 용어를 고스란히 빌어 왔는데 에즈라의 사명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첨가시킨 것으로 본다. 22절은 모세의 율법준수를 강조하고 있으며, 23-24절은 3:1에서 무명의 사자로 나타난 인물을 엘리야와 동일시한다. 엘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시키기 위해 사회질서를 사로잡은 예언자이다.

2. 말라기서의 연대 : 타락한 예배행위와 사제들에 대한 보도(1:7-10, 1:14, 2:3, 3:6-12)를 보면 하깨와 즈가리야 두 예언자의 설교로 열성이 불붙은 때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는 것 같다. 느헤 10:32과 13:10에도 종교세를 바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느헤미야의 시대에 사회정의와 결혼에 대한 질책이 언급되고 있다(말라 3:5와 에즈 9-10, 느헤 5:1-13과 비교). 말라기의 비판을 보면 아직 느헤미야의 개혁(기원전 445년, 느헤 2:1)이 시작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불메링크(A. von Bulmerincq)나 절랭(A. Gelin)의 주장처럼 말라기가 느헤미야의 개혁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는 볼 수 없다. 말라기서에 신명기의 문학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집필연대를 에즈라의 ‘제관계 법전’ 공포 이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에즈라가 활약하던 시대에 대해 아직 논란이 거듭되고 있으므로 어림잡아 기원전 460년경으로 말라기서의 집필연대를 말한다.

3. 메시지 : 말라기는 예언자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이상은 하느님의 선민답게 생활하는 것이니(1:1-5, 3:17) 하느님의 경외하고 섬기며(1:6, 2:1-2) 이웃사랑의 척도인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데 있었다(2:10, 3:5). 말라기가 특히 강조하는 종교심은 거룩한 하느님께 사랑의 예배를 합당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1:6-2:9, 3:6-12). 이스라엘과 전인류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새롭게 해야 한다(1:11). 그리고 사제란 전능하신 주님의 사자이므로 제사를 바치는 직무 못지않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무가 있다고 말한다(2:5-9). 이교도들과의 결혼은 언제나 순수한 야훼 신앙을 파괴할 위험이 있으므로(2:11-12) 신도들끼리의 결혼은 신앙의 보호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말라기는 창세기 2장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신약성서가 말하는 결혼의 불가해소성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가르침을 준비시켰다(말라 2:13-16). 따라서 그는 결혼에 대한 신학을 기초 놓았다고 하겠다.

말라기의 메시아 대망은 신약성서의 메시아 대망을 준비시킨다(마태 17:1-8 참조). 다윗의 후예 즈루파벨 이후 하깨와 즈가리야 시대에 나타난 메시아에 대한 열망은 말리 시대에 와서 다소 힘을 잃는다. 제2 즈가리야는 다시 이 메시아 대망을 치솟게 하고 승화시켰다(즈가 9:9-10, 12:9-13:1). 말라기는 메시아라는 인물보다는 ‘야훼의 날’, 갑자기 다가오는 이 종말의 날을 열심히 기다리라고 설파한다. 야훼의 날은 기대치 않은 때에 갑자기 오므로(3:1-5, 3:19-21, ‘그날의 징표’ 3:23-24) 언제나 깨어 기다려야 한다. 그의 메시지는 오늘의 그리스도교 신도들에게 참된 공동체를 이룩하여 야훼와 이웃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감을 가질 것을 호소한다. 예배를 쇄신하고 개인생활의 윤리를 새롭게 하며 생명을 존중하고(2:15) 엘리야의 모세처럼 선(善)의 연대성을 확대시켜 구체적인 노력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徐仁錫)

[참고문헌] {주해서} A. von Bulmerincq, Kommentar zum Buche des propheten Maleachi, Dorpat, 1932 / J.M.P. Smith,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Malachi, ICC, Edinburgh 1961. {연구논문} T. Chary, Les prophetes et le culte a partir de l’exil, Paris 1955 / A. Pautrel, Malachie, SDB, t. V / E. Tobac, Malachie, DTC, t. IX / B. Mariani, De Sacrificio a Malachia Praedicto, Antonianum, 9, 1934/ M. Rehm, Das Opfer der V lker nach Mal, I, II, in: Lex tua Veritas (Festschrift H. Junker), Trier 1961 / G.J. Botteweck, Schelt und Mahnreden gegen Mischehen und Ehescheidungen, Bul I, 1960 / M.J. Stiassny, Le prophete Elie dans le Judaisme, Etudes Carmelitaines, 3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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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구유 [영] manger [라] praesepe

성서는 예수의 탄생 장면을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루가 2:12)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말구유에서의 예수의 탄생은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다가 2세기초에서 3세기에 걸친 박해시대에 이르러 그림이나 모자이크에서 표현되었다. 오늘날 카타콤바의 여러 곳에서 박해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구유의 모습이 발견된다.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교황 테오도로(Theodorus) 1세(재위 : 642-649)는 그리스도가 탄생한 구유를 성모 대성당으로 옮겨왔다. 말구유를 만드는 풍속은 1223년, 이탈리아의 그레치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가 성탄시기에 그레치오 성당에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의 예수 탄생 사건을 재현시킴으로써 당시 신자들이 좀 더 실감나게 성탄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예수가 탄생한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되었고,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오늘날 전 세계의 그리스도 교인들은 그들 특유의 풍습과 민족의상을 동원하여 갖가지 모양의 구유를 꾸미고 있는데, 그 재료와 방법 또한 다양하여 성탄구유를 위한 조각이 하나의 예술로까지 발전하였다. 각국은 이러한 토착화된 구유를 통하여 자기 민족과 그리스도 강생(降生)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구간에는 예수 아기가 모셔진 구유와 마리아와 요셉의 상(像), 동물들과 목동들의 상이 놓여진다. 일반적으로 동방박사들의 상은 예수공현축일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까지 놓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12월 성탄이 가까워지면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각 본당을 중심으로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성탄 전야에 아기 예수의 상을 모시는 구유 안치식과 구유 예절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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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구복음 [한] ∼福音 [관련] 마르코의 복음서

⇒ 마르코의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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