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본당 [한] 馬山本堂

① 1901년에 창설된 마산 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요셉. 현 명칭은 완월동(玩月洞) 본당이다. 마산 본당은 타케(Taquet, 嚴宅基)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타케 신부는 1896년에 입국하여 2년간 강원도 원주 일대에서 전교하였으며, 그 뒤 경상도의 남부 지역 최초의 주임신부로 진주에 부임하였었다. 그는 1901년 현 마산시 오동동의 이 지방 첫 신자인 김 달시시오 집에 거처하면서 범골(현 마산시 완월동)에 대지를 구입하여 초가 3간의 임시 성당을 세워 마산 본당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창립 당시 초대 본당 회장으로 최계영(요셉)이 임명되었다. 당시 완월동 근처는 몇 채의 가옥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을 뿐 황무지나 다를 바 없었다. 2대 마산 본당 주임신부는 무세(Mousset, 文濟萬) 신부였는데 그는 1902년 마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이후 10년간 서부 경남지방을 전교하면서 현 수녀원 뒷터에 초가 5간의 성당을 새로 지어 교세 확장에 노력하는 한편 교회의 인재 양성을 위하여 1910년에 사립 성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가 발전하여 1947년 성지여자중고등학교가 되었으며, 다시 1954년에는 성지 유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또한 1931년에는 교구의 사제와 수녀들을 위한 휴양소가 될 사제관, 수녀원 신축공사가 시작되었고 샤르트르 수녀회가 초청되었다. 1952년에는 마산시내 남성동(南城洞)에 새로운 본당을 분리 신설시킨 후 본당명을 신마산 본당으로 바꾸고, 그 뒤 다시 현재의 명칭인 완월동 본당으로 개칭하였다. 이 본당이 창설된 후 80여년, 현재 본당 주임신부는 20대에 이르고 있다. 그중 제4대 베르몽(Bermond, 睦世英) 신부는 1914년에 부임하여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 일제에 의해서 연금될 때까지 성당을 석조로 신축하고(1932년) 수녀원을 세우는 한편 교육에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베르몽 신부는 다시 이 본당에 부임하여 3년간 전교에 힘썼다. 1966년 마산교구의 설정으로 이 본당은 임시 주교좌 성당이 되었는데 1975년 12월 14일 완월동 246의 16번지에 현 성당을 준공,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날이 신자수가 격증하여 지금까지 함안, 진영, 진해, 남성, 월남 본당을 분리 독립시켰으며 현재 임상엽(林常葉, 마르코)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다. 1983년말의 신자총수는 3,300명에 1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② 1929년 평남 강서군 성태면 원당리(元塘里)의 마산시장(馬山市場)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녀 안나. 마산지역은 1895년 평양에서 성세성사를 받고 귀향한 현승구(玄昇九, 시메온)에 의해 처음으로 전교되어 1901년 공소(公所)로 설정되었고, 그 후 1923년 메리놀회가 평안도 지방을 담당하게 되자 1926년 본당으로 승격되어 강서군(江西郡), 대동군(大同郡), 평원군(平原郡)의 일부 지역을 관할하며 12개의 공소를 두었다.

부드(Booth, 夫)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하고 1928년까지 사목했고,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 성당과 공소강당들을 개축하고 전교와 교세확장에 주력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1934년 성당이 신축되었고 이어 1935년에는 강서(江西) 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일제에 체포 구금되고 평양교구가 한국인 성직자들로 재조직되자 이듬해 2월 강현홍(康賢洪) 신부가 7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1944년까지 일제말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당의 자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광복이 되고 북한지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전 교회가 박해를 받게 되어 1950년 6월 24일 8대 주임신부 강영걸(康永杰)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마산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마산본당의 신심단체로는 공소시절 조직된 인애회(仁愛會), 부인단체인 안나회, 가톨릭청년회, 가톨릭운동연맹의 지회와 분회, 본당 자치기구인 교무위원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1932년 3대 주임 코너스(Conners, 權) 신부가 세운 성요셉 학원, 1933년 4대 주임 캐롤(Carroll, 安) 신부가 세운 양로원과 시약소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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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한] 馬山敎區

마산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일부 지역을 관할하는 교구. 1957년에 대목구(代牧區)로 승격된 부산 교구(釜山敎區)에 속해 있던 마산(馬山) 지방은, 날로 그 교세가 늘어남에 따라 1966년 2월 15일에 부산 교구의 일부 지방을 떼어, 마산 교구로 독립하였다. 이 때 <가톨릭시보(時報)>의 편집인이던 김수환(金壽煥) 신부가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었고, 김 교구장은 그 해 5월 31일에 주교 성성식을 갖고, 새로 설정된 교구의 기반을 닦는 일에 전심하였다.

그러나 1967년 3월 27일에 서울 대교구의 노기남(盧基南) 대주교가 사임하고 수원 교구장이던 윤공희(尹恭熙) 주교가 서리로 서울 교구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1968년 4월 27일에 마산 교구장인 김수환 주교가 서울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에 공석이 된 마산 교구장에는 1968년 8월 3일에 장병화(張炳華) 신부가 임명되어, 그 해 10월 7일 성성식을 갖고, 정식으로 교구장에 취임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산 교구의 관할지역은 마산(馬山), 창원(昌原), 진주(晉州), 진해(鎭海), 충무(忠武), 삼천포(三千浦) 등의 6개 시(市)와 거창(居昌), 함양(咸陽), 합천(陜川), 진양(晉陽), 사천(泗川), 고성(固城), 남해(南海), 의령(宜寧), 산청(山淸), 하동(河東), 통영(統營), 함안(咸安), 의창(宜昌), 거제(巨濟), 창녕(昌寧), 김해(金海)군 일부, 밀양(密陽)군 일부에 걸쳐 있는데, 1982년 말 현재 교세를 살펴보면 신자수 6만 7,514명, 본당 41개소, 공소 101개소, 한국인 신부 58명, 외국인 신부 6명, 외국인 수사 9명, 한국인 수녀 141명, 외국인 수녀 10명, 남자 수도단체 3개, 여자 수도단체 16개, 병원 1개소, 양로원 1개소, 나병 수용소 1개소, 유치원 19개소,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 주일학교 39개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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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치오 [원] Masaccio

Masaccio(1401-1428). 이탈리아의 피렌체파 화가. 원명은 Tommaso Guidi.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산 조반니 발다르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죽었다. 마소리노(Masolino da Panicale, 1383?-1447)의 제자로서 로마의 산 클레멘테 성당 및 피렌체의 Santa Maria del Carmine 대성당에 있는 브란카치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작업에서 스승을 도왔으며, 이후 스승의 화업(畵業)을 계승하였다. 특히 브란카치 성당의 <낙원추방>, <희사금>(喜捨金) 등 벽화와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의 벽화 <성 삼위일체> 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치마부에(Giovanni Cimabue), 지오토(Giotto de Bondone)가 이룩한 극적 정신의 조형화(造型化) 전통을, 새로운 르네상스적 합리주의적인 공간표현 속에 회복 · 통일시킨 기념비적인 구성, 빛과 명암(明暗)의 표현에 대한 뛰어난 감수력, 독립된 실재(實在)로서의 물상(物象)의 재파악과 같은 조형적 집성(集成)에 의해 15세기 사실주의 확립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의 성전인물(聖傳人物)의 의지(意志)나 정념(情念)의 박진적 표현은 뒤이어지는 르네상스 회화의 인간적인 전개방향을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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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탱 [원] Maritain, Jacques

Maritain, Jacques(1882-1973).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톨릭 철학자. 블르와(Leon Marie Bloy)의 감화로 1906년에 가톨릭에 귀의하였고, 1940년 이후에는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1945년부터 1948년까지는 프랑스의 바티칸 주재 대사를 역임하였고 그 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형이상학 서론≫(Elements de philosophie), ≪인권과 자연법≫(The Rights of Man and Natural Law) 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자연법과 인권≫(김창수 역), ≪인간과 국가≫(한용희 역) 등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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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수녀회 [영] Franciscan Missionaries of Mary [한] ∼傳敎者∼修女會 [라] Congregat

1877년 1월 6일 마리 드 라 파시옹(Marie de la Passion) 즉 샤포탱(H l ne Chappotin)에 의해 인도 오타카문드(Otacamund)에서 창설된 수도회. 1958년 6월 27일 한국에 진출하였다. 관상(觀想)과 사도직을 통해 전교에 헌신하기 위한 본회의 명칭은 1882년 12월 8일 성 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가입할 때 마리아의 전교자 수녀회에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로 개칭하였고, 1885년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았다. 1954년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초청으로 내한하려 했으나 중국에서의 수녀원 추방운동으로 1958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진출하였다.

1960년 5월 부산 양정동(楊亭洞)에 정착하여 성모의원과 함께 수예실을 운영하였다. 1975년 2월에는 부산 성보의원을 폐쇄하고, 의료 혜택이 더욱 필요한 강원도 정선(旌善)으로 이전하여 1976년 5월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개원하였다. 한편 부산에서는 1961년 3월 성모여자중학교, 1964년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했으나 1974년 성모여중을 폐교하고, 1979년 6월 성모여고를 부산교구에 이관하였다. 1966년 서울 가리봉동에 수녀원과 의원건물을 완공함으로써 모두 이전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고, 1974년에는 부산에 있던 수련원도 서울로 이전하였다. 1972년 일본관구 소속에서 준관구(準管區)로, 1978년 정식 관구로 승격되었다. 1979년에는 원래 학교부지로 매입했던 곳에 선화기숙사(善花寄宿舍)가 완공되어 5월 1일 첫 기숙생을 입사시켰다. 현재 한국 관구 본부가 있는 서울 가리봉동 수녀원을 비롯하여 부산 양정동 수녀원, 강원도 정선 수녀원에서는 관구장 수녀를 비롯한 65명(1983년말 현재)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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