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한] ∼姉妹會 [영] Little Company of Mary

1877년 7월 2일 메리 포터(Mary Poter) 수녀에 의하여 영국 노팅검(Nottingham)에서 창설된 수녀회. 1963년 11월 23일에 한국에 진출하였다. 낡은 공장 터에서 시작된 초창기에는 주로 임종 중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시작하여 가난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고통을 몸소 나누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하여 1886년 5월 교황청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1963년 당시 춘천교구장 퀸란(Thomas Quinlan) 주교의 요청으로 호주관구 소속 마크 메이어(St. Mark Maher) 수녀 외 2명의 수녀가 내한하여 강원도 지방에 정착,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 3월 15일 강릉(江陵) 갈바리 의원을 개원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고, 1973년 11월 20일에는 포천(抱川) 평화의 모친 의원을 개원한 뒤 1980년에는 치과를, 1981년에는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물리치료시설을 개설하였다. 1974년 11월 15일에는 서울분원을 신설하고, 1975년 현 서울 후암동으로 이전하였다. 현재 서울 · 강릉 · 포천에 분원이 있으며, 원장 마리 데레사 나일론(Marie Therese Nilon) 수녀를 중심으로 9명(1983년말 현재)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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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예술 [한] ∼藝術 [영] Marian art

성모 마리아를 소재로 하여 구성한 예술을 일반적으로 마리아 예술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것으로 마리아 예술중 가장 오래된 것은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에 있는 프리실라(Priscilia) 카타콤바 속의 벽화이다. 1세기말 혹은 2세기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아기 예수를 안고 앉아 있는 마리아 옆에 예언자로 생각되어지는 인물이 책을 들고 마리아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형상을 프레스코(fresco) 화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카타콤바에는 이 그림 이외에도 2-3세기경에 그려진 3개의 그림이 있다. 첫째 것은 그리스도교 신자인 처녀의 무덤 위에 그려진 벽화로 처녀의 모범인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것은 베들레헴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셋째 것은 마리아를 방문한 천사의 이야기를 각각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이것과 흡사한 그림이 로마의 도미틸라(Domitilla), 갈리스토(Gallistus), 성 베드로와 마르첼로(Marcellus), 성녀 아녜스(St. Agnes)의 묘지에서도 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5세기 이전의 것들로, 아녜스의 묘지에 있는 마리아의 그림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문자가 그림의 양측에서 아기 예수를 향해 씌어져 있다. 이상과 같이 고대의 마리아에 대한 조각과 회화는 처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인 마리아와 그의 아들 예수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네스토리우스파에 반대하여 마리아의 모성을 정의 내린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마리아에 대한 예술은 동방에서 새로운 표현양식을 가지고 등장하게 된다. 즉 복음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던 이전의 양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마리아가 천상의 여왕으로 묘사되어 황금빛 옷을 입고 천상의 왕좌(王座)에 앉아 있게 된다. 이러한 표현양식은 곧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이들 국가의 마리아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마리아 예술은 비잔틴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비잔틴양식에서는 마리아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비해 로마의 예술가들은 마리아를 ‘상지의 좌’(上智∼座)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적인 차이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마리아에 대한 교리의 발전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마리아 예술과 종교사상의 관계를 추출해 내기도 하였다.

고딕양식에 있어서 마리아는 예수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협력자인 성모의 자애를 나타내는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이것은 교회가 내적 쇄신에 전념하던 시대의 반영이었다. 한편 문예부흥기에 이르면 마리아 예술은 성모자(聖母子)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탈리아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파라 안젤리코, 리피, 보티첼리, 코레지오, 티티안, 베로치오 등과 플랑드르의 반 에이크, 메믈링, 루벤스 및 독일의 홀바인, 뒤러 등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마리아 예술가였다. 바로크양식에서의 마리아 예술은 마리아를 악마의 정복자로 묘사하는 데 주력하였고 근대에 이르면 은혜의 중개로서의 마리아를 묘사하는 것이 커다란 흐름을 이룬다. 이것은 라사레트, 루르드, 파티마에서 공현한 마리아의 계시와 이에 대한 마가레트 마리아, 가타린 라보레, 돈 보스코 등의 가르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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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수도회 [영] Society of Mary(Marianists) [한] ∼修道會

남자 수도회의 하나로 1817년 프랑스 보르도(Bordeau)에서 샤미나드(Chaminade) 신부에 의해 창설되었다. 샤미나드 신부는 1년 전인 1816년 여자 수도회인 마리아니스트 수녀회도 세운 바 있다. 마리아 수도회는 특별히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수도단체로서 세계 30개국에서 수도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회원수는 2,044명(신부 610명, 수사 1,434명)에 달하고 있다. 마리아 수도회는 1960년 미국 태평양관구 소속 회원들이 광주(光州)에 첫 진출하여 목포(木浦)에 자리 잡았으며 그 후 1968년 서울에서도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들은 서울에서는 효성중등 야간학원을, 목표에서는 마리아회 고등학교를 각각 설립 운영함으로써 교육을 통한 사목활동에 힘쓰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수도회의 회원들은 모두 17명이며 진출 초기에는 미국인이 지부장으로 10여년간 회를 이끌어왔으나 1980년부터는 운영권을 한국인이 이양받아 방인 자치 수도회로 새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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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문학 [한] ∼文學 [영] Marian literature

성모 마리아를 소재, 혹은 주제로 한 문학작품 일반을 가리킨다. 성모 마리아의 품성과 그에 대한 신심은 여러 세기 동안 많은 국가의 문학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마리아의 문학이 특히 번성했던 국가는 라틴권 여러 나라와 프랑스이지만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도 발전하였다. 영국의 시인 초서(Chaucer)는 성모 마리아의 착한 종으로서 마리아에 관한 시를 많이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Troilus and Cressida),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ks) 등 온통 마리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영국의 시인 크래쇼(R. Crashow), 톰프슨(F. Thompson), 페트모어(C. Patmore), 홉킨스(G.M. Hopkins) 등과 뉴먼(J.H. Newman), 체스터튼(G.K. Chesterton), 벨록(H. Belloc) 등의 수필가들도 마리아에 대한 감명 깊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들 시인의 시는 많은 부분이 노래로 불려졌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크래쇼의 ‘영광의 성모’로 이 시는 “지극히 높으시고 겸손하신 마리아여 당신의 세상의 위에 계시며, 또한 주님 아래 계시도다”라고 시작되어 “오! 한없이 친절하신 마리아여 세상의 모든 향연이 당신 위에서 펼쳐지나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한편 수필가 뉴먼은 푸지(Pusey)에게 보낸 한 수필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십자가(crux)”라고 묘사하였다.

유럽의 많은 작가들은 마리아의 위대함에 대한 신앙이 서양인 생활과 문학의 품위를 높여 왔다고 평가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것은 역시 마리아에 대한 존경심이 여성의 존중심으로 발현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즉 여성의 이상형인 마리아에 대한 존경과 찬미는 어떤 다른 요소보다도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러스킨(J. Ruskin)은 “성모에 대한 존경을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은혜의 하나”라고 하면서 성모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참으로 성스럽게 되었고, 또한 순결한 인간상을 창조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영국의 워즈워드(Wordsworth)와 미국의 롱펠로(Longfellow)도 성모 신심의 감명을 받아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워즈워드는 그의 작품 ‘성모’(Virgin)를 통하여 성모를 “모든 여성 중에 가장 위대한 여성이며, 우리 병든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여”라고 표현하였으며, 롱펠로는 그의 시 ‘그리스도’(Christus)에서 그리스도교가 전인류에게 ‘모든 여성의 모범’인 마리아를 선사한 것만 보더라도 그리스도교는 모든 다른 종교보다도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된다고 하였다. 성모에 대한 신심은 거의 1,000년 동안 창작활동에 종사한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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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니스트수녀회 [한] ∼修女會 [영] Marianist Sisters

1816년 5월 프랑스의 아장(Agen)에서 샤미나드(William Joseph Chaminade) 신부가 트랑클레옹(Trenquell on)의 협조 아래 창설한 수녀회. 샤미나드 신부는 다음해인 1817년 남자수도회인 마리아 수도회(Society of Mary)도 창설하였다. 이 두 수도회는 모두 특별히 마리아께 봉헌된 수도회이다. 이 수녀회의 정신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마리아와 함께 일치하여 이룩한 믿음의 공동체를 모범삼아 마리아의 말씀을 따라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도록 자신을 성화시키고 사도직을 통해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있다. 이 수녀회는 이미 진출한 동계의 마리아 수도회 초청에 따라 1979년 한국에 진출하였다. 현재는 서울 강서구 목동에 한국 본원이 있으며 외국인 수녀 3명과 한국인 청원자 7명이 공동생활을 하며 장래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 첫 진출한 회원들은 동회 일본관구 소속 수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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